[씨네21 리뷰]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들의 삶 <연인과 독재자>
2016-09-21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연인과 독재자>

1978년 배우 최은희가 홍콩에 머물던 중 실종된다. 그로부터 얼마 뒤, 최은희의 전남편 신상옥 감독 역시 최은희를 찾아나섰다가 홍콩에서 실종된다. 얼마 뒤 이들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란히 찍힌 사진이 포착되면서 이들의 생사가 확인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북한의 전폭적인 지원과 적극적인 요구 속에 영화를 찍는다. 이때 만든 <소금>(1985) 등은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는다. 실종 후 8년이 지난 1986년, 이들은 오스트리아의 미 대사관을 통해 북한을 탈출한다. 그로부터 30년 뒤 이 이야기는 로스 애덤과 로버트 캐넌에 의해 영화화됐다.

이 작품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김정일과 신상옥의 대화가 담긴 녹음테이프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달리 말해 이 영화에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힘이 세다. 최은희와 가족들의 증언보다 세상을 떠난 신상옥과 김정일이 다큐멘터리에서 더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연히 최은희와 신상옥의 관계의 세부적인 내막과 탈출을 결심하기까지 내밀한 갈등은 대부분 생략된다. 영화는 신상옥 감독이 최은희와 이혼 후 배우 오수미와 혼인관계에 있으면서도 왜 최은희를 찾아 홍콩으로 갔는지, 외도로 헤어진 전남편과 북한에서 재결합하기까지 최은희의 복잡한 심경 같은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반면 인간 김정일의 얼굴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다.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의 다큐멘터리 <히틀러>와 비슷한 전략으로 예술 애호가라는 독재자의 이면을 조명한다. 녹음테이프에 따르면 김정일은 신상옥에게 북한에서 세계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당부하고, 신상옥은 이런 요구에 자신감으로 화답한다. 최은희는 신상옥이 돈 걱정 없이 영화를 마음껏 만들 수 있다는 데에 꽤 만족했음을 회고한다. 이렇듯 ‘예술’에 초점을 맞추면서 영화는 비교적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온건한 자세를 유지한다. 영화의 중간중간 삽입되는 <탈출기> <성춘향> 등 최은희와 신상옥이 함께 만든 영화 이미지는 단지 영화적 기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들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 이미지로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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