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영화, 마음이 산란해질 때면 어김없이 우리를 품어주는 넉넉함을 함께 누려보자. 한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국제산악영화제,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개최된다. 2015년 열린 파일럿 영화제인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프레페스티벌에 이어, 2016년 국제경쟁부문을 도입한 정식 영화제로 출범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총 21개국에서 온 78편의 작품들이 준비돼 있다. 개막작은 히말라야 메루를 등정하는 산악인들의 불굴의 의지와 유쾌한 마음가짐을 담아낸 <메루>다. 세계 각국의 산악영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제경쟁’ 섹션에서는 2015년 밴프국제산악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고독한 승리>, 2015 밴쿠버국제산악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유렉> 등 쟁쟁한 산악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알피니즘’ 섹션에서는 전문 산악인의 등반을 다룬 영화들이, ‘클라이밍’ 섹션에서는 실내 클라이밍 및 암벽등반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소개된다. ‘모험과 탐험’, ‘자연과 사람’ 섹션에서는 산과 삶을 아우르는 폭넓은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제작지원 프로그램도 탄탄하다. 국내 산악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해 총 9천만원 규모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울주서밋 2016은 2015년 선정돼 제작된 정지우 감독, 천운영 작가가 공동 연출한 <남극의 여름>, 이송희일 감독의 <미행>, 임일진•김민철 감독의 <알피니스트>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한다. 일반인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다. 일반인 대상의 영상공모전 울주플랫폼은 극영화, UCC를 비롯한 다양한 영상물을 공모했으며, 수상작 7편을 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한다. 또한 지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UMFF 미디어교실에서는 3기생을 배출한 청소년 영상제작교육 UMFF 영화교실과 더불어, 찾아가는 미디어교육 ‘마을, 카메라에 담다’와 장애청소년 사진교육 ‘꿈꾸는 카메라’를 증설해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화려한 부대행사도 이번 영화제의 강점이다. 1978년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한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내한해 강연을 펼치며, 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라인홀트 메스너전>을 진행한다. 산악영화제답게 액티비티의 즐거움도 쏠쏠하다. 스토리텔러와 함께하는 힐링산악트레킹, 트리클라이밍, 짚라인 등을 즐길 수 있는 ‘나무노리’ 등의 행사가 관객을 기다리는 중이다. 산과 삶을 담아낸 영화를 감상하고, 다양한 행사를 즐길 수 있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9월30일부터 10월4일까지 울산시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일원에서 5일간 진행된다.
<메루>
지미 친, 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 / 미국 / 2015년 / 90분 / 다큐멘터리 / 개막작
메루는 히말라야 중에서도 등정이 까다롭고 위험한 산이다. 그중에서도 상부에 자리한 깎아지른 듯한 직벽 샥스핀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등산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난도의 루트. 노련한 산악인 콘래드 앵커, <메루>를 연출 및 제작한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산악인인 지미 친, 레넌 오즈터크는 팀을 이뤄 2008년 첫 등정을 시도하지만, 정상을 100m 앞두고 기상 악화로 하산하고 만다. 재도전을 결의하며 심기일전하던 중, 막내 레넌은 산악스키를 타다가 큰 부상을 입는다. 그러나 레넌은 재활치료를 받으며 등반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첫 등정 실패 3년 후 셋은 다시 메루 등반에 도전한다. <메루>는 극한의 인내와 비장미만이 넘치는 산악영화는 아니다. 그들은 재기 넘치는 입담을 과시하며 어떤 위기의 순간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꿈을 좇는 삶의 방식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보여주는 <메루>는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2015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 관객상을 수상했다.
<유렉>
파벨 비소크잔스키 / 폴란드 / 2015년 / 73분 / 다큐멘터리 / 국제경쟁
유렉은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두 번째로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한 폴란드 산악인 예지 쿠쿠츠카의 애칭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자라난 유렉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산악을 해온 강인한 인물이었다. 다큐멘터리 <유렉>은 그의 과거 모습을 담아낸 푸티지 영상과 그를 기억하는 산악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유렉>을 재구성한다. 영화는 1987년 로체 남벽 도전 중 추락사한 순간까지, 유렉의 치열했던 일대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폴란드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맥락까지 짚어내며 개인의 삶과 시대의 공기를 복원해낸다. 2015 밴쿠버국제산악영화제 대상, 2015카트만두국제산악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메아리 마을>
알린느 슈터, 셀린느 카히드루아 / 스위스 / 2014년 / 50분 / 다큐멘터리 / 국제경쟁
<메아리 마을>은 스위스의 알프스 깊은 산속에 자리한 작은 시골 마을, 베울덴에서 사용하는 로만슈어에 대한 기록이다. 이누이트족에게 눈을 표현하는 10개의 단어가 있듯, 목축업을 하는 베울덴의 로만슈어는 종을 의미하는 12개의 단어를 지니고 있다. 베울덴에서 나고 자란 초등학생과 노인, 교사, 도시에서 이주해온 중년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들은 로만슈어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그들에게 로만슈어라는 언어는 옷이자 정체성이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자 생활양식이다. 다큐멘터리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정경과 ‘슈’ 발음이 두드러지는 로만슈어의 속삭임은 한편의 시처럼 유려하게 교차한다. 사라져가는 언어의 의미를 사려 깊게 포착해내는 작품.
<남극의 여름>
정지우, 천운영 / 한국 / 2016년 / 45분 / 다큐멘터리 / 울주서밋 2016
남극 세종기지의 월동대원으로 선발된 18명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지만, 남극에 도착하자 영하 40도를 넘는 강추위와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고립된 생활을 맞닥뜨린다. 고독 속에서도 그들은 곧 남극의 동식물을 관찰하며 즐거움을 찾는다. 1년에 0.2mm씩 자라는 극지식물의 성장을 지켜보고, 인식표를 채워줬던 남극의 조류 스쿠아와 반갑게 재회하고, 길 잃은 바다표범을 바다로 돌려보내며 남극과의 간격을 좁혀가는 대원들. 다큐멘터리는 남극의 자연만을 좇지는 않는다. 카메라는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거나, 바비큐 파티에 기뻐하는 대원들의 희로애락도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울주서밋 2016에 선정된 작품으로, 정지우 감독과 천운영 작가가 공동 연출했다.
<드날리>
벤 나이트 / 미국 / 2015년 / 8분 / 다큐멘터리 / 국제경쟁
반려견 드날리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긴 여행기다. 자유로운 영혼의 사진 모델 벤은 어디에나 드날리를 대동하고 여행을 다닌다. 영화는 드날리의 내레이션과 함께, 벤과 드날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로 전개된다. 언제나 주인을 염려하고 사랑하며 재치를 잃지 않는 드날리의 내레이션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거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드날리의 해맑고 사랑스러운 스냅들에는 입꼬리가 내려갈 틈이 없다. 마침내 드날리는 벤을 떠나야 하는 순간을 맞지만, 그들의 추억은 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살아 있게 됐다. 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의 소품이지만,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고야마는 따듯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