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감독은 정두홍 무술감독과 함께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를 함께하며 한국 액션영화의 새로운 길을 닦았다. <아수라>에선 정두홍 감독의 애제자 허명행 무술감독이 악질들의 진흙탕 싸움을 처절하게 그려냈다. 부패한 경찰, 부패한 시장, 부패한 검찰이 주인공인 <아수라>의 무술은 화려한 액션이 아닌 잔인한 폭력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신세계> <남자가 사랑할 때> <무뢰한> <대호> 등 사나이픽처스의 전속 무술감독도 아닌데 사나이픽처스가 제작하는 거의 모든 작품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한 허명행, 최봉록 공동 무술감독은 이번에도 폭력의 세계를 밀도 높게 구현한다. 서울액션스쿨의 넘버원 카 스턴트맨인 권귀덕 무술감독과 <아수라>에서 정우성 배우의 대역을 맡은 김선웅씨 또한 김성수 감독이 구상한 액션 비전을 구체화한 조력자들이다. 가을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던 9월의 어느 날, 파주 서울액션스쿨에서 <아수라>의 무술팀을 만났다.
허명행
<아수라> 무술감독. 서울액션스쿨 대표. <부산행> <검사외전> <대호> <무뢰한> <감시자들>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악마를 보았다> <전우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수많은 영화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다. 신체적 특징은 잘 발달된 상체 근육. 성격은 거침없다.
“최고의 능력자.” _권귀덕
“정두홍 감독님하고 비슷하게 어려운 대선배다. 현장에 함께 일하러 가면 후배들이 편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끔 해준다.” _김선웅
최봉록
<아수라> 공동 무술감독. <검은 사제들> <대호> <차이나타운> <무뢰한> <신의 한 수> <남자가 사랑할 때>의 무술감독. 서울액션스쿨에 들어오기 전에는 복싱을 했다. 매사 진지하고 공사 구분 뚜렷한 상남자 스타일.
“일을 꼼꼼하게 잘한다. 그런데 성격이 불같다. 가끔은 나도 봉록이가 무섭다. 완벽주의자여서 현장에서 조금의 실수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실수하면 혼난다.” _허명행
“함께 일하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카리스마에 대해 많이 배웠다.” _김선웅
권귀덕
<아수라>에서 조선족 귀덕 역으로 출연. <곡성> <내가 살인범이다> <무산일기> 등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했고, <우린 액션배우다>의 주연배우이자 <베테랑> <황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등에서 인상적인 카 스턴트 장면을 소화한 국내에서 알아주는 카 스턴트맨.
“서울액션스쿨의 분위기 메이커.” _김선웅
“ 웃기려고 노력은 하는데 나보다 웃기진 않는다. 서울액션스쿨에서 운전은 제일 잘한다.” _허명행
김선웅
<아수라> 정우성 대역. <밀정> <부산행> <검사외전> <대호> <베테랑> <암살> <무뢰한> <감시자들> 등에 무술팀으로 참여. 서울액션스쿨 14기. 이제 6년차. 187cm의 큰 키 덕에 정우성, 공유, 김우빈 등 비슷한 신체 조건을 가진 배우들의 대역을 자주 맡았다. “운동보다 공부를 더 많이 했다”는 서울액션스쿨의 희귀 케이스. 법대에 진학해 1년간 다니다 진로를 바꿨다.
“키만 크고 잘생기기만 했지….” _권귀덕
“독보적인 신체조건을 가진, 서울액션스쿨에서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 _허명행
영화 <아수라>의 액션
=최봉록_ <남자가 사랑할 때>(2013)로 무술감독 데뷔를 했고 <무뢰한>(2014), <차이나타운>(2014), <대호>(2015), <아수라> 등에서 허명행 감독과 공동 무술감독 체제로 작업했다. 허명행 감독은 나에게 형이자 스승이다. 그래서 쉽게 장난도 안 친다. 10년 넘게 함께 갈 수 있었던 건 일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잘 맞기 때문이다.
=허명행_ 나도, 봉록이도 정두홍 무술감독님을 모시고 일할 때가 있었는데 우리 둘이 일하는 스타일이 비슷하다. 사소한 것까지 모두 윗선에 전달하는 타입이다. 봉록이랑 일하면 귀찮을 정도로 전화를 많이 한다. 사소한 것까지 나에게 컨펌을 받는다. 성격이 느슨한 사람은 아무리 배워도 그렇게 하기 힘들다. 성격이다, 성격.
=권귀덕_ <아수라>엔 배우로 참여했다. 조선족 귀덕 역으로 출연한다. 맞다, 본명 출연이다. 한국인 역할은 잘 안 들어오고 동남아인 역할이 많다. 멕시코인 역할까지 해봤다. (웃음) <아수라>에선 민평동 상가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원래는 이 캐릭터를 연기할 배우가 따로 있었다. 나는 그 배우의 스턴트 대역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대역을 쓰기엔 역할이 크지 않아서 효율성을 고려해 대신 출연하게 됐다. 영화에서 정우성 형과 자동차 추격 신을 벌일 때 우성이 형이 추격하는 차량의 운전자가 나다.
=김선웅_ 정우성 선배 대역을 맡았다. 처음 우성 선배 대역을 맡은 건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2011)에서였고, 그 후로 <신의 한 수>(2014) 때도 우성 선배 대역을 했다. 키가 187cm인데 정우성, 김우빈, 공유 배우의 대역을 주로 맡았다.
허명행_ <아수라>의 액션은 테크닉을 배제하고 리얼하게 가려 했다. 영화의 정서가 기본적으로 어두운 데다 잔인한 상황이 많아서 합을 짤 때도 좀더 폭력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기본적인 액션 컨셉은 시나리오에 나와 있었다. 특히 <아수라>는 시나리오가 얘기하려는 것, 보여주려는 것을 넘어서서 과하게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수라>는 감정의 진폭이 큰 영화이지 액션으로 해결하는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술감독 입장에선 그 부분이 어려웠다. 무언가 더하면 안 됐으니까. 단번에 “와~” 하게 되는 화려한 액션을 넣었다간 영화를 망칠 수 있었다. 설정이 들어간 과한 액션은 최대한 자제하고 단순하게 폭력 자체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최봉록_ 영화 속 액션은 꽤 잔인할 거다. 정글도로 난도질을 하고 손가락도 잘리니까. 하지만 디테일하게 잔인한 장면을 카메라로 따고 들어가진 않는다. 마지막 장례식장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흘러가듯 찍었다. 세밀하게 보여줘서 잔인한 게 아니라 폭력 그 자체로 잔인한 느낌을 주는 게 목표였다. 액션에 있어선 베거나 찌르는 것보다 찍어 죽이는 느낌을 많이 가져갔다. 기본적으로 총도 있고 칼도 있고 다양한 무기가 나오지만, 둔탁한 게 박히면 더 아프고 잔인한 느낌이 들어서 내리치는 무기를 택했다.
허명행_ 주요 액션 시퀀스 중에 민평동 상가에서 시작되는 한도경(정우성)의 자동차 추격 신이 있는데, 이 액션 시퀀스 역시 기본 설계는 김성수 감독님이 하셨다. 우리는 그 설계를 현장에서 충실히 구현했다. 영화 내내 스트레스를 받던 한도경이 결국 폭발하게 되는 장면인데, 한도경의 피로감을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
권귀덕_ 자신의 총을 빼앗아 도망간 나와 동료를 한도경이 추격하는 장면인데, 한도경의 차가 우리 차를 뒤에서 박는 상황이 한컷으로 보여진다. 컷을 나눠 찍지 않았다. 정우성 선배가 직접 차를 몰았기에 나올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 정도 고난도의 추격 신은 보통 배우들에게 직접 연기를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우성 형님이 워낙 액션에 관심도 많고 열정이 남달라서 직접 운전대를 잡으셨다.
허명행_ 실제로 전날 그 시퀀스를 무술팀 대역이 찍었다. 그러고 다음날 다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우성이 형이 내 표정을 보더니 “얘는 실제로 (배우가) 박았으면 하는 눈치야” 그러더라. 나는 우성이 형의 실력을 알고 있으니까 넌지시 “괜찮겠어요? 해보실래요?”라고 말했는데 선뜻 해보겠다고 하더라. 김성수 감독님도 원컷으로 추돌 장면을 찍을 수 있어 굉장히 흡족해하셨다.
김선웅_ 참고로 운전 대역은 내가 한 게 아니다.
허명행_ 선수 보호 차원에서 선웅이는 안 시켰다.
권귀덕_ 정우성, 김우빈, 공유 같은 배우와 싱크로율이 잘 맞는 존재가 서울액션스쿨에 몇 없다. 이런 사이즈는 보호해줘야 한다. (웃음)
김선웅_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촬영은 한도경이 검찰 아지트에서 모포를 덮어 쓰고 맞는 장면이다.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검찰 직원들이 한도경의 얼굴에 모포를 덮어씌운 상태에서 무자비하게 얼굴을 때리는 장면인데, 그 어떤 스턴트맨이라 하더라도 무방비 상태에서 맞으면 다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한도경의 상반신만 더미를 만드는 거였다. 내가 의자에 기역자로 누운 상태에서 손으로는 더미를 조종하고 하반신만 연기했다. 재밌으면서도 은근히 힘들었다.
허명행_ 라스트 장례식장 장면은 모든 게 결판이 나는 장면, 아수라판이 되는 장면이었다. 영화 내내 피로감을 받던 한도경이 머리를 굴려 역전을 꾀하는 부분에선 일말의 통쾌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피로감을 해소시켜주는, 확 터뜨려주는 액션은 없다. 관객이 좋아할 만한 액션, 액션을 위한 액션은 만들지 않았다.
최봉록_ 나 역시 이번 작업이 어려웠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아수라>가 인물의 감정이 중요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현장에서 배우들의 감정 상태나 연기 톤을 보고 액션을 맞추는 편인데, <아수라>의 경우 슛 들어가면 배우들의 감정이 심하게 격해졌다. 그 감정을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굳이 합을 맞춘 액션이 필요 없겠다 싶어서 액션 신을 빼거나 수정한 경우도 있다. 어느 작품이건 현장에 갈 땐 늘 플랜B를 생각하지만 이번엔 특히 번외 상황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현장에 갔다. 캐릭터에 몰입한 배우들의 감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
김성수 감독의 작품들
권귀덕_ 김성수 감독 작품 중 최고는 <비트>(1997)라고 생각한다.
김선웅_ 나도 <비트>! 사실 난 초등학생 때 봤다.
권귀덕_ 남자라면 <비트>다. 오토바이 탈 줄 아는 남자라면. 그땐 어렸으니까 입소문 듣고 비디오가게에서 비디오로 빌려봤는데 ‘와, 오토바이를 두손 놓고도 탈 수 있구나’ 하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최봉록_ <비트>보다는 <태양은 없다>(1998)를 좋아한다. <비트>의 인물들은 너무 만화 주인공 같지 않나. 판타지영화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다. 가짜라는 게 뻔히 보이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건 사실적인 액션영화들. 그런데 <신의 한 수> 이후였나, 내 인터뷰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까 ‘최봉록 당신의 영화는 너무 잔인하다’고 돼있더라. 왠지 이번에도 (잔인하다고) 욕먹을 것 같다. (웃음)
허명행_ 최고의 액션영화 중 하나로 <무사>(2001)를 꼽은 적이 있다. <무사>는 정두홍 무술감독님의 파워풀한 스타일이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이다. <무사>의 액션에서 유일하게 없는 건 부드러움인데, 중국 무협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칼 쓰는 것처럼 선이 부드러운 액션을 선보였다면 영화의 톤과 맞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사>에 스턴트팀으로 참여해서 영화가 어떻게 완성됐는지 가까이서 지켜본 입장에서, 섣불리 <무사> 같은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영화를 보면 현장의 고생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나. 배우와 스턴트맨들이 죽기 살기로 찍었다. 그 에너지가 영화에 반영된 거다. 그렇기 때문에 <무사> 같은 액션영화가 욕심은 나지만 결코 하고 싶지는 않다. (웃음)
권귀덕_ 중국에 그렇게 오래 있을 자신도 없다. (일동 웃음)
허명행_ 그땐 정말 바보처럼 일했다. 아침에 눈뜨면 밥 먹고 차 타고 현장에 가서 옷 갈아입고 칼 들고 으아악 하다가 밥 먹고 해가 지면 숙소 돌아와서 형들 심부름을 하다가 잠들었다.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지금이야 후배들한테 스케줄도 물어보고 페이도 미리 말해주지만 예전엔 그런 게 어디 있었나.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야, 타” 해서 공항 가면 그제야 “그런데 어디 가는 거예요?” “그런데 무슨 현장이에요?” 물어봤던 시절도 있었다. (웃음)
정우성이라는 배우
최봉록_ 정우성 선배는 액션을 워낙 좋아한다. 액션할 생각을 하면 몸속에 엔도르핀이 도는 것처럼 보인다. 무술감독으로선 너무 좋지. 액션은 못하는데 열정만 많으면 오히려 힘들 수 있는데 우성 선배는 실력이 뒷받침되니까. 타고난 신체조건이나 운동신경이 좋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습량이 많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정해진 날짜, 정해진 기간에만 와서 연습을 한다. 그런데 우성 선배는 개인적으로 따로 연락해서 추가 연습을 한다. 다른 배우들보다 연습량이 3배는 될 거다. <신의 한 수> 때도 한달 동안 서울액션스쿨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김선웅_ 국내에서 활동하는 배우 중 액션에 있어선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액션의 합을 짤 때 대역이 소화할 것과 배우가 직접 소화할 것은 미리 구분한다. 그런데 우성 선배는 워낙 실력이 좋아서 본인에게 많은 장면을 줄 수가 있다. 액션을 많이 해보지 않은 배우들에 비해 제약이 적은 거다. 카메라 리허설 때도 일반적으로 배우가 아니라 대역이 리허설을 하는데, 우성이 형은 직접 카메라 리허설을 할 때가 많다. 같은 동선, 같은 동작이라도 미세한 차이가 나기 마련이라서 슛 들어가기 전에 본인이 완벽하게 맞추려고 하는 거다. 이번 자동차 추격 신처럼 심지어 대역이 소화할 장면이라고 미리 설정해둔 부분까지도 “이건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우성 선배 대역인 나로선 현장에서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웃음)
귄귀덕_ 10년쯤 전, 무술팀 막내로 <중천>(2006)에 참여했을 때 우성 형님이 술자리에서 한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니들 일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반하겠다. 남자인 내가 봐도 반할 것 같다.” 그 얘기를 듣는데, 어렵고 힘든 이 일에 자부심이 생기더라. 큰 힘이 되는 말이었다.
김선웅_ 스턴트맨을 정말 잘 챙겨주는 배우다.
권귀덕_ 서울액션스쿨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왕래가 잦다. 가끔 서울액션스쿨 사람들의 경조사까지 챙겨주는 것을 보면 인간적으로 정말 멋져 보인다.
허명행_ 언제가 제일 멋있냐면, 항상 멋있다. 다만 항상 멋있다는 걸 본인이 너무 잘 알고 있다. (웃음) 성품도 좋고 그냥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차기작 이야기
귄귀덕_ 정병길 감독의 <악녀>, 원신연 감독의 <제5열>에 무술감독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허명행_ 김형주 감독이 연출하고 이성민, 조진웅, 김성균이 캐스팅된 <보안관>은 곧 마무리될 것 같고,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이원태 감독의 <대장 김창수> 등에 참여한다.
최봉록_ 허명행 감독님과 조의석 감독의 <마스터>를 끝냈고, <보안관>과 <불한당>을 같이하고 있고, <불한당> 끝날 때쯤엔 박훈정 감독의 <VIP> 작업에 들어간다. <VIP>는 (공동 무술감독이 아니라) 혼자서 맡게 됐는데, 10월쯤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김선웅_ 드라마 <도깨비>(tvN에서 12월 방송 예정)에서 공유 선배 대역을 맡고 있다. <부산행> <밀정>에서도 공유 선배의 대역을 했다. 아직은 경력이 많지 않지만 최종 꿈은 무술감독 데뷔다. 멋있는 액션 말고 코믹하고 바보 같은 액션을 해보고 싶다.
허명행_ 네가 10년에 한 작품을 하고 싶은 거로구나. (웃음)
최봉록_ 궁극적으로 해보고 싶은 건 엽위신의 홍콩영화 <살파랑>(2005) 같은 작품이다. 사람끼리 부딪쳐 땀냄새 날 때가 제일 재밌다. 차가 폭발해서 날아가는 장면들이 볼거리로는 멋질 수 있어도 사람끼리 부딪치는 게 나는 좋더라.
허명행_ 개인적으로는 나를 믿어주는 감독, 함께 만들어간다는 마인드를 가진 감독들과 잘 맞는 편이다. ‘이렇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 ‘이것이것만 해주세요’ 하는 스타일과는 잘 맞지 않는다. 사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도 그런면에서 액션 작업 자체가 크게 재밌지는 않았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님은 인정하는 분이니까 그렇게 하셔도 된다. 봉준호 감독이 짱이다. (웃음)
권귀덕_ 최근작이 <곡성>인데, <황해>(2010)에 이어 나홍진 감독과 두 번째로 작업했다. <곡성>은 힘든 만큼 재밌었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나홍진 감독님이 그런 얘길 해주시더라. “귀덕아, 너는 총책임자가 있을 땐 대차게 일을 잘하는데, 책임자 없이 네가 리더가 돼서 동생들 일 시킬 땐 그만큼의 대찬 느낌이 안 든다”고. <황해>는 총책임자인 유상섭 무술감독님에게 의지하며 내 역할을 수행한 반면, <곡성>은 유상섭 감독님과 공동으로 무술감독을 맡으며 그때보다 후배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 얘기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한명의 독립적인 무술감독으로서 어떻게 능력을 키워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김선웅_ 아직 무술감독이 되려면 10년은 더 있어야겠지만 언젠가 봉준호 감독과 작업해보고 싶다.
허명행_ <옥자>에 참여했잖아.
김선웅_ 별로 한 게 없어서.
허명행_ 하긴 무술감독인 나도 별로 한 게 없으니…. (웃음)
권귀덕_ 나는 <옥자>에서 미란도(틸다 스윈튼)의 트럭을 몰았다.
허명행_ 무술감독의 메인 역할은 액션을 ‘디자인’하는 거다. 디자인을 제대로 해놓으면 현장 진행은 서브 무술감독이나 베테랑 스턴트팀이 충분히 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무술감독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무술감독이 액션의 합만 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액션을 잘 디자인하기 위해선 시나리오를 꼼꼼히 분석하는 게 필수다. 그 의견을 감독과 충분히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모니터 보면서 배우의 얼굴이 제대로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오른쪽 주먹으로 때리는 게 좋은지 왼쪽 주먹으로 때리는 게 좋은지, 무술감독이 그런 판단만 내리는 사람은 아니다. <아수라>의 경우도 영화의 엔딩에 대해 김성수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김성수 감독님이 열린 마음으로 영화에 대한 의견을 들어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