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말미,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 지역에서 독일군과 핀란드군 사이 전쟁이 한창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산파로 일하던 핀란드인 헬레나(크리스타 코소넨)는 야만적인 마을 사람들의 생활상에 환멸을 느낀다. 우연히 마주친 독일군 장교 요하네스(로리 틸카넨)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낀 그녀는, 마을을 떠나 무작정 그가 있는 전선으로 향한다. 경력을 위장해 독일군 진영의 간호사가 된 헬레나는 전쟁 트라우마로 매일 밤 악몽을 꾸는 요하네스를 정성껏 돌본다. 둘은 어느새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어느 날, 출전 명령을 받은 요하네스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자 헬레나는 둘만의 약속대로 전선을 탈출한다.
전쟁의 참상에 대한 묘사와 국적이 다른 남녀의 로맨스가 영화의 두축을 이룬다. 나치 독일의 만행과 민간인, 포로들이 겪은 고통을 재현하는 방식은 전형적이며 새로운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사랑에 대한 본능적인 이끌림에 따라 생명을 인도하는 산파에서 나치 독일에 부역하는 간호사가 되기를 ‘선택’한 인물이다. “죽음의 사자(使者)”라는 자조나 사후(事後)적인 회의에 가까운 주인공의 고뇌는 그래서 더 기만적으로 여겨진다. 우연한 만남과 찰나의 행복, 이별과 재회로 이어지는 로맨스 또한 익숙한 전개와 묘사로 일관한다. 유난히 대담하고 적극적인 성격 하나만큼은 인상적인 주인공 헬레나는 사랑 앞에서 모든 고난을 꼭꼭 씹어넘긴다. 그런 태도 때문에 아비규환의 전쟁터를 지나 이뤄진 두 사람의 재회에는 해방감이 따른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 내내 맴도는 짙은 기시감으로부터의 해방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