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김종관의 <부운> 사라질 샤미센 소리를 기억하다
2016-09-28
글 : 김종관 (영화감독)

밑둥이 잘린 고목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오래된 벽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 땅에 떨어진 꽃 한 송이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 영화에서는 더이상 기억과 작은 감정의 이야기들이 없다. 영화 속 역사와 뜨거운 감정은 여전히 넘쳐나면서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영화는 점점 드물어져 간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고 마치 그처럼 영화도 소비한다. 재미, 장르를 소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모순과 분노도 소비한다. 요즘의 상당한 영화들은 적의를 이용한다. 사람들은 영화에 드러나는 사회적인 모순에 쾌감을 느끼지만 그 모순은 스스로의 내부를 향하지 않고 적의 안에 머문다. 영화는 또 그처럼 곧잘 역사를 이용하지만 열등감을 벗어버리려는 보상 심리를 넘어서지 않는다. 역사에 관심이 많지만 기억은 하잘것없이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싼 세계가 그렇고 많은 영화가 그렇다.

은유는 사소함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사소함에 대한 시선을 잃어버린 영화들은 온통 직설화법으로 넘쳐난다. 온갖 직설화법이 대단한 은유인 양낯 간지러운 해석이 등장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요즘, 그리고 주류의 영화들 이야기다. 영화에 대한 글을 읽는 것도 점점 재미가 없다.

시기와 나라를 넘나들며 다양한 영화를 찾다보면 썩어가는 나무와 부서진 벽과 꽃 한 송이의 사연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 나는 때때로 지나간 일본영화를 보는 것에서 낙을 찾는다.

전쟁을 지난 당시 일본의 몇몇 감독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기억하고 삶을 애착하고 관계를 관찰했다. 아마도 메마르고 잔인했고 비인간적이었던 전쟁의 시대를 지난 창작자들은 전쟁이 지난 후 떨어지고 문드러져가는 꽃 한 송이에도 삶의 쓸쓸함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중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의 영화는 나의 가장 좋은 위안거리다. 어두컴컴한 극장의 한켠에서 만날 일은 드물지만 언제든 한편씩 돌아볼 수 있다. 한명의 영화에서는 노인의 우화가 떠오르고 또 한명의 영화에서는 세속의 틈에서 견디는 여인의 내면이 떠오른다. 난 그들의 히로인을 좋아하는데, 그들중 대표적인 여배우 하라 세쓰코와 다카미네 히데코가 나왔던 영화들을 가장 아낀다. 하라 세쓰코는 애처러운 웃음을 짓고 다카미네 히데코는 가슴 아픈 눈물을 흘릴 줄 안다.

자주 볼 만큼 편안한 영화는 아니지만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은 가장 아끼는 영화이며 다카미네 히데코의 눈물이 가장 아프게 배어 있는 영화다. 사람이 죽고 사는 전쟁 중 남자와 여자는 인도네시아의 어느 섬을 낙원 삼아 사랑에 빠진다. 전쟁이 끝난 황폐한 고국에 돌아온 남녀는 고달프고 남루한 행세로 연애를 이어나가게 된다. 영화는 여자주인공 유키코(다카미네 히데코)의 심리를 좇고 그녀의 몰락의 과정을 보여준다. 남녀는 세상을 다시 비껴 외딴섬을 낙원 삼아 보지만 비가 멈추지 않는 고립된 곳에서 유키코가 죽으며 비극적인 엔딩을 맞는다. 그 비극에는 잘못된 판단을 저지른 개개인의 인간이 있을 뿐이다. 삶 앞에 비겁했던 남자와 기억에 연연했던 여자의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는 그만큼 비극적이었던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방황하는 인간들의 내부에서 질문을 찾고, 가장 약한 것의 죽음과 사소한 기억을 버리지 못하는 연유와 인간이 가진 본연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의 극장에서 보기 힘든 심리의 드라마와 영화적인 화법이 있던 시절의 영화다. 사소함과 사소함에 빗댈 은유가 없어져가는 지금, 사라질 샤미센의 소리를 기억하고자 했던 그때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의 중요한 시간이 이미 지난 것이 아닐까 염려가 든다.

김종관 영화감독.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낙원>(2005), <기다린다>(2007), 장편 <조금만 더 가까이>(2010), <최악의 하루>(2015)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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