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본능이 깨어나는 순간 <랑데부>
2016-10-05
글 : 윤혜지
<랑데부>

네덜란드인 시몬(루에스 하버코트)과 그의 가족은 어머니의 유산 덕에 한번도 가본 일이 없는 프랑스 시골 마을로 이사한다. 남편 에릭(마르크 판 에이우언)은 새집에 도착하자마자 리모델링에 흠뻑 빠져 가족을 나 몰라라 하고 두 아이는 새 학교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의 냉대와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답답함 사이에서 시몬도 점점 지쳐간다. 그러던 중 곤경에 처한 시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피터(피터 폴 뮐러)는 오래전 이 마을에 살았던 시몬의 어머니를 알고 있었다며 시몬 가족과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리고 시몬에게는 집의 인부로 일하던 청년 미쉘(피에르 보랭거)이 남다른 감정을 품고 접근해온다.

낯선 곳에서 우연하게 시작된 시몬과 미쉘의 밀회가 <랑데부>의 주된 내용이다. 영화는 남편의 무관심, 이웃들의 냉대, 독박 육아의 고충, 언어의 불통 등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몬이 심적으로 지치고 고립되어가는 상황을 만들지만 시몬의 불륜이 충분히 그럴 만했다는 지지를 얻게 하지는 못한다. 곤란한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몬이 상황을 뒤집어보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피터와 미쉘은 의붓 부자 관계로, 아마도 시몬 이전에 두 사람의 먹잇감이 되었으리라 짐작되는 다른 여성도 등장하지만 사실 두 남자가 놓은 덫의 코가 그리 촘촘해 보이지는 않기에 시몬과 미쉘의 감정에 더더욱 동의하기 힘들어진다.

또 <실락원>(1997), <안나 카레니나>(2012), <어떤 만남>(2014) 등 일련의 영화들이 그리는 기혼 여성의 불륜이 대개 정서적 무료함과 고독에 기인하는 데 반해 <랑데부>의 시몬은 현실적으로 훨씬 불쌍한 인물이다. 샤워 중 불쑥 욕실을 침범한 미쉘에게 말하지 못할 떨림을 느끼는 와중에도 시몬은 엄마를 찾아 칭얼대는 아이를 살펴야 하는 여자다. <랑데부>의 불륜을 보며 성적 긴장감을 느끼는 대신 혀를 찰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시몬 가족이 낯선 문화권에서 새 삶을 꾸리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외로움을 느끼고 고충을 겪는 장면들만은 퍽 현실적이기에 공감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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