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았다는 표현보다 영화 같은 꿈을 보았다는 표현이 이 영화에는 더 어울릴 것 같다. 장률 감독의 신작 <춘몽>은 꿈의 구조와 형식을 닮은 영화다. 수색동을 배경으로 하릴없이 소일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네 남녀의 일상을 다룬 이 작품은 꿈처럼 파편화되어 있으며 종종 엉뚱하지만 강렬한 여진을 남긴다. 특히 이번 영화는 장률 감독이 충무로의 촉망받는 세 감독- 윤종빈, 양익준, 박정범- 을 직접 주연배우로 영입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불러모았다. <무산일기>와 <똥파리> <용서받지 못한 자>의 감독 겸 배우들이 장률 감독 특유의 정서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지켜보는 건 이 영화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감독으로 부산행을 앞둔 장률 감독을 그의 자택이 위치한 서울 상암동에서 미리 만났다. 모든 건물과 가로수길이 자로 잰 듯 정갈해 보이는 이 첨단의 도심 속에 서 있는 장률 감독을 보면서, 왜 그가 <춘몽>이라는 꿈을 꾸었는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에는 언제 내려가나.
=개막식날 간다. 이번에는 여유가 좀 없을 것 같다.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을 맡아서 하루에 영화를 세편씩 봐야 한다. 올해는 술을 적게 먹고 영화를 열심히 볼 예정이다. (웃음)
-<춘몽>의 출발지점이 궁금하다. 이야기였나, 배우였나, 공간이었나, 혹은 어떤 이미지였나.
=맨 처음에는 ‘농담’이 있었다. 평소에 박정범, 윤종빈, 양익준 감독과 자주 보는 편이다. 몇년 전부터 세 사람이 배우로 출연하는 영화를 찍어보면 재밌겠다고 서로 농담처럼 말했었다. 그러다가 술자리에서 세 사람이 그러더라. 자신들이 나오는 영화를 찍을지 안 찍을지 결정해달라고. 자기들도 바쁜 사람이라 스케줄을 미리 빼놓아야 한다는 거다. (웃음)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3, 4월쯤 영화를 찍자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정말로 이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3, 4월이면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라 먼 데를 갈 수는 없고, 서울에서 찍되 세 사람이 어떤 공간과 질감이 맞을지를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공간이 정해졌고, <필름시대사랑>에서 짧게 작업했지만 좋은 인상을 받았던 한예리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처음에는 농담으로부터 시작한 영화다.
-선후배 영화인이 친분을 맺을 순 있지만 막역하게 지내기란 쉽지 않은데, 어쩌다가 세 감독과 친해지게 됐나.
=내가 중국 출신이잖나. 중국에는 학교에서부터 선후배란 개념이 전혀 없다. 그래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는 선배에게 실수를 하거나 대들면 큰일나는 분위기더라. 중국에서는 힘이 세면 된다. (좌중 폭소) 그냥 만나서 재미있으면 친구하고 그런 분위기다. 윤종빈과 박정범은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망종>으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받았었는데 윤종빈도 같은 부문에 <용서받지 못한 자>로 초청돼 왔었고, 박정범은 부산의 술자리에서 어쩌다 만나 친해지게 됐다. 양익준은 몇년 전에 오가다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된 사이다. 이 세 사람이 외모는 좀 거칠게 생겼지만 따뜻한 친구들이다. 영화 속 캐릭터처럼 다들 여리고 따뜻하고 정이 많은 친구들이랄까.
-<춘몽>의 정범, 종빈, 익준은 실제로 세 감독이 연출과 출연을 겸한 그들의 영화 속 등장인물(<무산일기>의 승철, <용서받지 못한 자>의 지훈, <똥파리>의 상훈)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다. 의도했던 설정인가.
=맞다. 처음부터 세 사람이 연출한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인물의 어떤 질감을 끌어오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아주 생소하지 않은 인물이면서도 전작에서 직접 맡았던 캐릭터를 이어서 연기한다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현장에 감독 출신 배우가 세명이다보니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을 법하다. 혹시 디렉션을 하는 과정에서 핀잔을 주지는 않았나. (웃음)
=나는 칭찬밖에 안 했다고 생각한다. 세명 다 ‘끼’가 있는 친구들이라 캐릭터에 맞게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세 배우가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있다. 다른 감독의 현장에 배우로 참여해보니 그동안 각자의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너무나 생각나고 반성하게 된다고 얘기하더라. 그렇게 말하기에 나 한국말 알아듣는다고, 지금 날 흉보는 거냐고 말한 적이 있다. (좌중 폭소) 아마 촬영기간도 촉박하고 워낙 타이트하게 돌아가는 현장이라 내가 신경을 못 써준 부분이 있었나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카메라 위치를 바꾸는 도중에 헤드폰으로 세 사람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는지 위층에 올라가서 감독님을 설득해보자고 하더라. 양익준이 총대를 메고 올라오겠다고 말하는 순간 무전기로 올라오지 말라고 했다. (좌중 폭소) 다들 깜짝 놀라더라. 감독을 한다는 친구들이 헤드폰으로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었나보다. 하하하.
-배우 한예리가 연기하는 예리라는 인물은 <춘몽>의 세 남자를 비롯해 모든 등장인물의 연결고리 같은 느낌이다. 더불어 이 인물이 굉장히 묘하다. 낯선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늘 죽음을 갈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캐릭터를 구상하며 어떤 생각을 했나.
=단순한 사람은 아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가정이 무너졌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전신이 마비된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따뜻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친구들을 생각하면, 남들 앞에서는 늘 웃고 있지만 홀로 남았을 때는 굉장히 복잡하고 생각이 많은 인물일 거다. 보통 타지 (중국)에서 온 사람은 좀더 예민하고 생각도 많다. 그런데 마주한 상황까지 고되다면 그런 환경에서 죽음을 생각하기란 그렇게 생소한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세 남자배우가 같은 얘기를 했다. “우리 영화인가 했는데 <춘몽>은 예리의 영화구먼요”라고. (웃음) 어떻게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의 제목을 <삼인행>으로 구상했다가 <춘몽>으로 바꾼 건 한예리라는 중심축이 있었기에 이 영화를 온전한 세 남자의 이야기라고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30여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춘몽>의 타이틀롤이 뜬다. 타이틀롤 이전과 이후를 구분짓는 어떤 기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렇잖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춘몽> 속 예리와 세 남자의 관계를 관객에게 보여줌에 있어서 우리가 평소에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의 방식을 따르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 남자가 예리를 원하는 만큼 예리 역시 세 남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카메라가 360도 회전하면 세 남자가 있던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잖나.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예리 역시 그들을 갈망하고 그들의 부재에 불안감을 느낀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수색동이라는 공간이 중요하다. 이 공간적 배경은 어떤 연유에서 선택하게 되었나.
=상암에 살고 있지만 수색동에 자주 가는 편이다.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재래시장을 둘러보거나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보기도 한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지하 통로를 지나 상암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수색동이 나온다. 그곳은 이곳(상암)과 전혀 다르다. 수색에 가면 나는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상암에는 편한게 없다. 사람들의 표정부터 다르다고 할까. 상암의 길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준비된 표정을 하고 있다. 수색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표정들이 보인다. 그리고 <춘몽>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닮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거칠지만 따뜻하고, 시끌벅적하고, 잘 웃고…. 그래서 자주 그곳으로 향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상암에서 수색으로 가는 길이 참 비현실적이고 꿈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하통로를 지나가면 정서적으로 완전히 다른 공간이 갑자기 나타나니 말이다. 이 꿈을 닮은 감각이 내게는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공간으로부터 받은 인상이 흑백영화라는 형식을 선택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나.
=그렇게 자주 찾는 공간인데도 다녀와서 수색을 떠올릴 때에는 도무지 그 공간이 컬러로 생각나지 않더라. 늘 수색동은 내게 흑백으로 기억된다. 왜 그럴까 생각 해봤다. 그건 아마 내가 수색동이라는 공간의 따뜻함 뒤에 적막과 슬픔이 흐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 상암은 내게 아무리 시간이 지난 뒤에도 컬러로 기억될 것 같다.
-실제로 자주 방문하는 수색동의 특정 장소도 영화에 나오나.
=예리의 집으로 등장하는 건물이 실제로 수색에 위치한 박정범 감독의 작업실이다. 그 건물 앞에 <춘몽>의 주요 공간적 배경인 고향주막도 지었다. 박정범이 많이 희생했다. (웃음)
-그런데 건물주 역할로 등장하는 건 박정범 감독이 아니라 윤종빈 감독이다. (웃음)
=셋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했으니까? (웃음)
-<두만강>(2009) 이후 한국에서 촬영한 영화들은 이전보다 훨씬 유연해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두만강> 이전의 영화들에 어떤 엄정함이 존재했다면, 이후에 만든 영화에서는 유머와 위트가 엿보인다. 개인적으로 체감하는 변화가 있나.
=개인적으로 처한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이 나를 변화 시키는 것 같다. 시간을 많이 들여서 찍는 영화는 지금도 어렵다. 중국에서는 심의 문제도 있고 오랜 시간을 들여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이 영화의 공간을 결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고 촬영기간에 있어서도 더 짧은 시간 내에 완성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단기간에 영화를 완성하려면 내용도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중국에 가서 영화를 만든다면 다시 날카롭고 분노에 찬 영화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웃음) 하여간 어느 쪽이든 장단점은 있는 것 같다.
-보다 대중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은 없나.
=어떤 감독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나. 영화 만들기 전, 그리고 영화를 만든 뒤에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이번 영화는 관객이 많이 들었으면 한다고. 하지만 현장에 가는 순간부터 그 생각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그게 문제인 것 같다, 나는. (웃음) 하지만 딜레마는 있다. 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개런티를 좀 넉넉하게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춘몽>이 잘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춘몽>은 엉뚱하고 귀여운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정서는 애상적이고 슬프다. 이러한 외로움과 슬픔의 감정은 비단 수색이라는 공간에 대한 당신의 인상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 머무른 지 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느끼는 이방인으로서의 고독이 <춘몽>에도 투영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바탕을 바꿀 순 없다고 생각한다. 5년간 한국 사회에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관계를 맺는 사람은 영화인들뿐이기도 하고. 그 바탕 안에서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그 정도지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