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영화제] 2016 서울프라이드영화제
2016-10-19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꿈의 제인>

퀴어영화 축제의 장 서울프라이드영화제가 16회를 맞아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개최된다(10월20일부터 10월26일까지). 그동안 서울LGBT영화제로 알려져왔으나,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Questioner), 남녀한몸(Intersexual), 무성애자(Asexual)를 덧붙인 LGBTQIA로 확장되어가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지난해부터 서울프라이드영화제로 개명하고 그 시기도 5월에서 10월로 바꾸었다. 프라이드란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단어로 2010년대부터 성소수자운동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올해의 서울프라이드영화제는 “다양한 가족 형태와 이를 뒷받침할 사회 제도화”를 캐치프레이즈로 삼아 세계 26개국 65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스테잉 버티컬>

개막작 <스테잉 버티컬>은 극우주의와 혐오로 가득한 동시대 유럽의 분위기를 모호한 우화적 배경으로 삼은 채 출생, 양육, 죽음이라는 주제를 파고든다. 그 자신이 동성애자면서 영화마다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알랭 기로디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동시대 유럽의 현대성이 처한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 시나리오를 위해 늑대를 찾아나선 영화감독 레오는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를 얻으며 얻은 아이를 데리고 다시 길 위를 방랑한다. 논쟁적 퀴어영화를 만들어온 알랭 기로디의 가장 정치적이고 미스터리한 작품으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화제작이었다. 현실과 환상의 분할선을 두지 않는 낯설고 예측 불가능한 흐름은 여전하다. 늑대와 대면할 때 굴복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화 제목처럼) 꼿꼿이 서서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그렇게 기로디는 야만의 시대정신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의 처세술을 보여준다.

<어바웃 레이>

핫핑크 섹션은 올해의 이슈인 다양한 성소수자 가족 및 결혼 제도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을 다룬다. 게비 델랄 감독의 <어바웃 레이>는 소년이 되고 싶은 레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성확정수술을 결정한 10대의 레이(엘르 패닝)는 싱글맘(나오미 와츠) 및 레즈비언인 외할머니(수잔 서랜던) 커플과 함께 산다. 영화는 10대의 성적 결정권, 레즈비언 커플과 싱글맘으로 구성된 가족, 비생물학적 연관으로 얽힌 관계성을 건강하고 유쾌한 터치로 그려낸다. 소준문 감독의 <연지>는 노인의 하루 여행길을 고요하고 서늘하게 따라가는 단편이다. 끝내 아련한 기억에 다다르게 되는 서정적 여정이 대사 한마디 없이 묵묵히 진행되지만, 우리 사회의 가족과 결혼의 의미를 되묻는 엔딩의 여운이 꽤 길게 남을 것이다.

스페셜 프라이드 섹션에서는 불온하고 매혹적인 퀴어 에로티시즘 걸작 및 동시대 화제작이 소개된다. 퀴어시네마의 기수 데릭 저먼의 시적 영화 <천사의 대화>, 사드의 원작을 각색하여 파시즘과 권력의 핵심을 외설적으로 파고든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이 대표적이다. 라스 폰 트리에의 <님포매니악>도 무삭제 감독판으로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 인민군 출신 탈북 동성애자라는, 한국 사회에서 성적/정치적으로 다중의 금기를 넘나드는 작품 <어느 여름날 밤에>의 오프닝 장면은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호숫가 게이 데이팅 장소에서 벌어지는 반복적 일상을 기묘한 스릴러로 엮어낸 알랭 기로디의 <호수의 이방인>도 함께 소개된다.

<연지>

코리아 프라이드 섹션에서는 한국 독립 퀴어영화를 발굴해 소개한다. 이들이 소그룹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 점차 세련화되고 있음은 총 29편에 이르는 작품 수 및 완성도 높은 장편 퀴어영화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유 테이크 디스 캣?>은 고양이 모모를 매개로 세 여성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연출, 각본, 주연을 담당한 남연우 감독의 <분장>과 남고생이 겪는 첫사랑의 열병을 감정의 진정성을 담아 전달한 원창성 감독의 <꿈>은 주목할 장편이다. <꿈>은 2016인디포럼 폐막작이자 올해의 돌파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두 이야기를 다룬 <꿈의 제인>은 트랜스젠더가 있는 가출팸에서의 색다른 경험을 다루며 가족의 의미를 탐문한다. 독립영화계 스타배우인 이민지와 감독 겸 배우 구교환이 출연해 더욱 주목을 끈다.

월드 프라이드 섹션에서는 동시대 퀴어영화들이 소개된다. LGBTAIQ로 점차 넓어지는 성소수자 정체성의 확장과 더불어 퀴어영화의 범주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출산, 양육, 노후, 죽음 등 오늘날 성소수자들의 경험은 삶의 보편적 영역으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퀴어부문 수상작 <톰캣>은 고양이를 키우는 게이 커플을 통해 완곡하게 동성애 가족의 양육과 입양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중산층 게이와 빈민가 청년의 만남을 통해 계층 문제와 사회문제를 감수성 있게 파고든 2015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먼 곳으로부터>도 필견의 작품이다. 베네수엘라의 신예 로렌조 비가스의 이 작품은 제목처럼 이들이 겪는 비극적 경험을 지그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그 해석을 관객에게 맡긴다. 댄스 배틀 및 게이 백댄서를 다루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키키>, <마돈나의 댄서들>과 퀴어 액티비즘을 다룬 <씨드머니: 처크 홈즈 스토리>, <아웃 런>과 같은 유쾌한 다큐멘터리도 놓칠 수 없다.

아시아 프라이드 섹션에서는 아시아-태평양 프라이드영화제 연맹 회원국 프로그래머들의 추천작이 선별되었다. 전 카라 출신 강지영이 주연한 일본 퀴어영화 <짝사랑 스파이럴>은 성적 정체성이 남성인 소연이 일본의 셰어하우스에서 겪게 되는 뒤얽힌 애정관계를 다룬다. 인도네시아 작품 <호가호위>는 군사기지촌의 낙후된 마을에 사는 소수민족 소년들이 권력과 성의 혼탁한 결합을 발견해가는 영화로, 칸국제영화제 퀴어종려상 후보작이자 2015년 싱가포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단편이다.

<호가호위>

다양하게 변화하는 생존방식과 관계성에 대한 경험

성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넘어 삶의 보편적 경험으로 확장되는 이슈들을 담아낸 올해의 프라이드영화제는 질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그 바운더리를 한층 넓혀가고 있다. 정주하지 않고 길 위에서 아이를 키우는 싱글 파더를 제시한 <스테잉 버티컬>을 보라. 왜 육아를 가정이라는 고정되고 폐쇄된, 성차적인 공간에서 해야 하는가? 동성애 커플의 출산과 양육의 문제는 요즈음 가장 핫한 쟁점이다. <두 유 테이크 디스 캣?>이나 <톰캣>에서처럼 반려동물과의 공생 문제는 동성애 커플의 양육 문제와 맞물려 차후 퀴어영화의 중요한 소재가 될 것임을 예견케 한다. 비혼, 비결혼적 동거, 반려동물과의 공생, 대안적 거주방식 등 우리 시대에 다양하게 변화하는 생존방식과 관계성에 대한 경험은 LGBTAIQ 영화의 관심사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당면한 문제임을 실감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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