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노오력’은 됐고, 나는 걸을란다.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뚝심 <걷기왕>
2016-10-19
글 : 이예지

강화도에 사는 무사태평한 소녀 만복(심은경)은 선천성 멀미증후군으로 어떤 교통수단도 탈 수 없다. 대신 걷기에 통달한 그녀는 고등학교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걸어서 통학한다. 걷는 것 외에 딱히 잘하는 것도, 별다른 꿈도 없는 그녀는 수업시간마다 침 흘리며 졸고 쉬는 시간에는 떡볶이를 먹으며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만복이 먼 거리를 걸어서 통학한다는 것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은 그녀에게 육상부에 들 것을 권한다. 얼떨결에 육상부에 들어간 만복은 경보를 시작하게 되고, 육상 에이스였으나 부상으로 경보를 하게 된 선배 수지(박주희)의 열정과 노력을 보며 자극을 받는다. 만복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죽어라 노력해 전국체전에 나갈 기회를 얻지만, 인정을 받기란 산 넘어 산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고,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꿈과 열정, 도전과 역경, 극복의 서사를 강조하지만 과연 현 사회에서 목숨 걸고 뛴다고 누구나 보상받을 수 있긴 한 걸까. <걷기왕>은 현 세대 청춘들에게 강요되는 ‘노오력’의 테제에 합리적 의심과 회의를 제기한다. 잘난 것 하나 없던 만복이 갱생하여 코피를 쏟고 발톱이 나갈 때까지 노력하는 모습에서, 핸디캡이 있던 인물이 모든 걸 극복하는 스포츠영화 특유의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도 하지만 깜빡 속지는 말자. 영화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한다. <걷기왕>은 평범한 소녀가 모든 어려움과 역경을 극복해내는 성공담이 아니다. 대신, 전력투구해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넨다. <걷기왕>은 현 사회의 청춘들이 직면한 문제를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톤 앤드 매너로 풀어낸다. 매 장면의 연출은 만화적이고 경쾌하고, 가지각색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도 매력적이다. 만복을 맡은 심은경은 여느 때보다 씩씩하고 사랑스럽고, 김새벽은 열정 신봉자인 담임선생님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영화 속 내레이션을 담당한 ‘소순이’, 안재홍의 목소리 연기도 쏠쏠한 재미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인디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다큐멘터리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연출한 백승화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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