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폭발의 굉음보다 거대한 상실의 소리 <라우더 댄 밤즈>
2016-10-26
글 : 이예지

종군 사진기자 이자벨(이자벨 위페르)이 불의의 차 사고로 세상을 뜨자, 남겨진 그의 남편 진(가브리엘 번)과 두 아들, 조나와 콘래드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진은 아내에 대한 기억들이 산발적으로 떠오르고, 사춘기 무렵의 십대인 콘래드는 아버지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반항한다. 장남인 조나는 이자벨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 이자벨의 부재 속에서 세 사람의 관계는 어색하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한편 아내의 오랜 파트너였던 기자 리처드는 진에게 아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음을 알리고 그에 대한 회고 기사를 쓰겠다는 뜻을 전한다. 진은 아직 진실을 모르는 막내아들 콘래드에게 어떻게 사실을 알려야 할지 고민한다.

상실의 아픔은 재앙에 가깝다. 물리적인 재난이 아닐지라도, 가까운 이를 잃은 마음의 소란은 어떤 폭발의 굉음보다도 거대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라우더 댄 밤즈>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 구성원들이 겪는 아픔의 궤적을 내밀히 좇는다. 영화는 뚜렷한 서사 없이 느리고 고요한 호흡과 정제된 미장센으로 아내이자 엄마를 잃은 남편과 두 아들의 일상을 각각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가족은 일견 크게 동요하지 않는 듯 건조하게 일상을 유지하지만 부재하는 아내와 어머니, 이자벨은 그들의 침묵 속에서 더욱 명징하게 재현된다. 종군기자로 위태로운 전시 상황에서 활약했지만 가정에 돌아오면 가족이 낯설게 느껴지는 괴리감에 고통스러워했던 이자벨. 가족들은 어쩌면 자신들이 놓쳤을, 그리고 미처 보지 못했을 이자벨의 일면과 순간들을 끊임없이 재구성해낸다. 망자에의 추억과 현실을 오가는 리듬감 있는 숏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카메라를 응시하는 이자벨,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존재감은 스크린 밖으로 팽창한다. ‘너드미’를 벗고, 너드 동생 콘래드에 조언을 해주는 조나 역의 제시 아이젠버그도 여유롭다. 세계에서 자신을 괴리시키고 어머니의 부재 속으로 침잠하는 콘래드를 연기한 신예 데빈 드루이드의 조용하고 내성적인 얼굴은 새로운 발견이다. <리프라이즈> <오슬로, 8월31일>을 연출한 노르웨이 감독 요아킴 트리에의 첫 영어 연출작으로, 제68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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