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는 홀로 손자 챔피온을 키운다. 유명한 TV쇼 <벨빌의 세 쌍둥이>를 봐도 챔피온은 웃는 법이 없다. 그런 손자가 자전거에 관심을 보이자 수자는 챔피온에게 자전거를 선물한다. 성인이 된 챔피온은 투르 드 푸랑스에 출전하게 되지만 경기 도중 프랑스 마피아에 납치된다. 수자는 강아지 브루노와 함께 챔피온을 찾아 바다 건너 거대 항구 도시 벨빌로 간다. 그곳에서 수자는 재즈 트리오 벨빌의 세 쌍둥이 자매를 만난다. 나이를 잊고 음악에 취해 사는 쌍둥이 자매들과 함께 수자는 챔피온 찾기에 나선다.
감독들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꼽히는 프랑스 애니메이터 실뱅 쇼메의 첫 장편애니메이션이다. 단편 <노부인과 비둘기>(1997)를 발전시켜 2003년 장편으로 완성됐다.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니콜라 드 크레시와의 협업으로 단순하면서도 왜곡된 캐릭터 작화를 보여준다. 연주와 작곡에도 재능이 있는 감독답게 영화의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벨빌의 세 쌍둥이가 들려주는 음악 등에는 스톰프 뮤직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실생활 속 물건들에서 나는 소리, 이를테면 신문지를 비비거나 발을 구를 때, 냉장고와 청소기에서 나는 소리를 모아 음악으로 빚어내는 방식이다. 이 작품은 영화와 영화사에 대한 실벵 쇼메의 애정 어린 헌사로도 읽힌다. 자크 타티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해온 감독은 쌍둥이 자매의 집에 <윌로씨의 휴가>(1953) 포스터를 붙여놨고, 침대에 누운 쌍둥이 자매는 자크 타티의 <축제>(1949)를 보며 웃는다. 그뿐인가. 휘황찬란한 벨빌은 화려한 할리우드로 보이는가 하면 챔피온에게 강제로 자전거를 타게 해 그 동력으로 영사기를 돌리는 등 실내 내기 경주판을 짠 마피아는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충실한 복무자를 상징하는 듯하다. 챔피온을 구한 수자와 무리가 마피아와 대결할 땐 할리우드를 누비는 시네마 트래블러들 같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TV영화를 보던 수자가 챔피온에게 “이 영화가 끝난 거니?”라고 묻는다. 말이 없던 챔피온이 <벨빌의 세 쌍둥이>가 끝나갈 무렵 할머니의 질문에 처음으로 답할 때, 그 말의 중의적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여운은 길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