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수입배급사협회가 지난 10월8일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출범식을 가졌다. 등록된 수입•배급사 수는 300여개에 달하지만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회사는 그중 1/10인 30여개 안팎. 그 가운데 20여개 영화 수입•배급사가 뜻을 모아 함께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들은 출범 기자회견 자리에서 불필요한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극장 및 디지털 유통 환경의 합리적 개선에 힘쓰고, 불법 콘텐츠 유통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 밝혔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이들을 한데 뭉치도록 했다. 극장 사업자 및 부가판권 사업자들을 상대하는 ‘을’의 목소리를 대변할 하나의 창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필름마켓에서, 극장에서 직접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관계라 수입•배급사들이 한배에 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대담에 참석한 김난숙 영화사 진진 대표, 서정원 더쿱 대표,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 김상윤 씨네룩스 대표도 그 점을 강조했다. “함께 모여 신뢰를 회복하고 머리를 맞대는 게 중요하다”고. 이들은 협회의 대표 자격이 아니라 현재의 영화산업에 문제의식을 가진 영화인으로서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수입•배급사들의 당면 문제를 통해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한 단면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
김난숙
영화사 진진 대표. 1990년대엔 대우영상사업단, 동숭아트센터에 몸담았고, 2000년대엔 예술영화전용관 하이퍼텍 나다와 씨네코드 선재를 운영했다. 2006년 11월 영화사 진진을 설립했으며,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원스>(2006) 등의 외화 수입과 <똥파리>(2008), <지슬: 끝나지 않는 세월2>(2012) 같은 한국영화 배급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12월 개봉예정작으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이 있다.
서정원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및 더쿱 대표. 30여년 전 한미영화사의 기획실장으로 일했고 2004년 VOD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를 설립, 2013년 수입•배급사 더쿱을 설립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 <그녀>(2013), <캐롤>(2015), <스포트라이트>(2015) 등 최근의 예술영화 흥행작이 모두 더쿱의 수입작이다. <캡틴 판타스틱>의 11월 개봉을 준비 중이다.
정상진
엣나인필름 및 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 대표. 1996년 엣나인필름을 세웠고, <남영동1985>(2012), <만신>(2013), <우리들>(2015) 등 한국영화 투자•배급에도 힘써오고 있다. 2009년부터 외화 수입을 시작했고, 특히 자비에 돌란의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09), <마미>(2014) 등 데뷔작부터 신작까지 그의 모든 영화를 수입해 국내에 소개했다.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도 12월 개봉예정이다.
김상윤
씨네룩스 대표.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사업국, 광고국 등에서 일했으며 한겨레문화센터 설립을 기획했다. <씨네21>과 씨네21i의 대표이사를 지냈고, 2014년 수입•배급사 씨네룩스를 설립해 <이민자>(2013), <택시>(2015),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2015), <크로닉>(2015) 등의 영화를 소개했다. 오아시스 다큐멘터리 <슈퍼소닉>(2016)이 11월24일 개봉한다.
예술영화 시장의 변화와 수입배급사협회의 필요성
=김난숙_ 처음엔 이 모임에 회의적이었다. 현장에선 경쟁자로 만나는 플레이어들이라서 함께 모여 공동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씨네룩스 김상윤 대표처럼 비교적 근래에 수입업을 시작한 분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오히려 그들이 이 현장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입사들의 단체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전에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 시점에 그 이야기가 더 귀에 들어왔다.
=김상윤_ 그간 영화잡지도 발행하고 부가 콘텐츠 사업을 했기 때문에 수입•배급업의 기본 프로세스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오니 당황스러웠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경쟁이 치열했다. 결정적으로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다이빙벨>(2014) 상영으로 촉발된 부산국제영화제 사태 때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영화인 단체들이 성명서를 내는 와중에 수입사들은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없더라.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한국영화 결산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소개되는 개봉작 989편 중에서 해외 직배사를 제외한 국내 인디펜던트 수입사의 작품이 868편이나 된다. 한국 영화시장에서 외화가 차지하는 비중, 외화 수입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만큼 큰데도 수입배급사협회조차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더라.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여기 계신 분들과 단체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서정원_ 7∼8년 전에도 협동조합이나 협회의 형태를 갖춰보자는 얘기는 있었다. 하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수입•배급사 사람들은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다보니 결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다. 아직 출발 단계이고 갈 길이 멀지만 10년, 20년 뒤 후배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될 만한 길을 닦아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상진_ 영화 수입업을 한 지는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극장(아트나인)을 운영하고 있는 터라, 개인적으로는 영화 수입하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컸다. 그러다 나의 자리에서의 역할을 고민하게 됐다. 수입업은 하지 않고 극장만 운영하는 일본의 영화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영화를 사지도 않으면서 늘 해외 필름마켓에 출장을 가더라. 마켓에서 자국 수입사들이 어떤 영화를 샀는지 미리 정보를 얻고 그 영화들을 언제쯤 자기 영화관에서 상영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 위해 마켓에 참석한다고 했다. 베를린 필름마켓에서도, 마켓 마지막날 일본 바이어들이 20명씩 함께 모여 식사하면서 ‘네가 그 딜에 성공했구나’ 하며 축하해주고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을 봤는데 거기에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그런 자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더라.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마켓 끝나는 날 함께 식사도 하고 어울리는 자리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 그것이 각 사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어느 누구도 그런 자리를 나서서 만들려 하지 않았다. 또한 해외 바이어들이 ‘한국 바이어들의 뜨거운 비딩(bidding, 입찰)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걸 종종 들었다. 언젠가는 이 과열 경쟁이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협회 차원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수입사들이 영화로 경쟁하는 건 맞지만 함께 연대하면 불이익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칸 필름마켓이나 베를린 필름마켓, 아메리칸 필름마켓 등에서 영진위가 주최하는 영화인 파티가 아니라 수입사들이 주최가 되고 영진위가 후원하는 파티를 열 수도 있지 않을까.
김난숙_ 개인적으로는 영화시장의 변화 속에서 더이상 설 곳이 없다, 더이상 혼자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컸다. 유통 플랫폼이 다양해졌지만 그에 대한 스스로의 긴장감도 많이 부족했던 것 같고. 사실 플랫폼이 다양해졌다 한들 아직까지는 매출의 80%를 극장에 의존하고 있다. 멀티플렉스 중심의 구조 안에서 수입사들이 운신의 폭을 가져가야 하는데, 점점 극장에선 수익을 내기가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더불어 콘텐츠 제공자로서 나는 새로운 유통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지? 혹은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공급하면서 이 산업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지?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막막했다. 협회가 당장에 대단한 성과를 내긴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덕을 보려면 약간의 헌신은 해야 하니까 이렇게 모임에도 나오고 하는 거다. (웃음) 아직은 막연한 마음이 크지만 오히려 부정적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것 같다. ‘잘 안 될지도 몰라’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물이 나올 때마다 성과라 생각하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협회를 꾸리고 나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더라. 예를 들면 누군가가 사전 유료시사를 제안했을 때, A라는 협회사의 영화가 그주에 개봉작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꼭 유료시사를 해야 하나’ 하고 한번 더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예전엔 ‘A사엔 미안하지만, 이쪽 일이 다 그런 거지 뭐’ 하면서 사전 유료시사를 진행했을 텐데 지금은 ‘개봉의 형태를 띠는 유료시사는 하지 않겠다’ 혹은 하더라도 소규모 관에서만 하겠다고 말하게 되는 거다.
정상진_ 협회가 출범하기 전에 KT의 IPTV 수익 배분율 조정과 관련해 수입•배급사들의 뜻을 표명한 바 있다. 그것만으로도 작은 꿈틀거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작부터 욕심 부릴 생각은 없다. 천천히 나아가다보면 더 많은 수입사들이 마음을 열고 함께할 것이라 믿는다.
서정원_ KT의 부가요율 조정과 관련해 첨언하면, 지난 7월, 국내 최대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유료 방송사업자 KT가 콘텐츠 공급자와 플랫폼 사업자의 IPTV 수익 배분율을 6:4에서 5:5로 조정할 계획을 밝혔다. 우리는 ‘영화수입배급사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유통 플랫폼과의 대화 창구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 콘텐츠 제공자인 수입사를 배제한 채 일방적 통보만 하기는 힘들 것이다.
김상윤_ 대화의 창구를 연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수입•배급사의 경우 개별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정책 및 의사 결정 과정에서 우리의 의견이 반영되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업자’ 소리도 들었던 건데, 다들 그런 대우 받으며 일할 분들이 아니다. 그런 대우를 받았던 건 우리의 의사를 대표할 창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당경쟁 지양하고 상생의 해법 마련하기
김난숙_ 극장 및 유통망과의 마찰은 당장 우리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은 자력구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과당 경쟁이란 게 꼭 영화를 살 때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전 시사회를 많이 하는 영화들이 있는데, 시사회의 타깃층이 같으면 향후 개봉할 영화의 예고편을 앞뒤에 붙여서 틀어줄 수도 있다. 또 타깃층이 같은데 어떤 영화는 흥하고 어떤 영화는 망한다면, 그것을 통해서 지금의 관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시장의 큰 그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쟁자로서가 아니라 상생하는 조력자가 된다면 시장에서 서로 가져갈 수 있는 파이가 커질 수 있다고 본다. 혹은 파이가 줄어드는 걸 막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춘추전국시대처럼 영화들이 계급장을 다 떼고 만나는 느낌이 든다. 구작(재개봉 영화)과 신작이 치열하게 경쟁한다. 좋은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관객의 권리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신작이라고 해서 우대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극장에 너무 많은 수의 재개봉 영화들이 걸리면 신작 발견은 누가 하고 새로운 영화는 어떻게 접하나. 관객이 충분히 좋아할 만한 새로운 영화들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게 문제다.
정상진_ 마켓에서 쓰는 계약서만 놓고 봐도 한국 바이어들이 손해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면 해외 세일즈사에서 일본 바이어들에게는 배급 수수료를 인정하면서 한국 바이어들에게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차별을 담론화하거나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다.
김상윤_ 해외 세일즈사와의 문제, 국내 멀티극장과의 문제, 유통 플랫폼과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기 위해서는 서로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해외 세일즈사와 계약을 할 때 수입사마다 계약서가 다르다.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김난숙_ 이익을 챙겨가면서 경쟁해야 하는데, 불리한 조건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우리끼리 경쟁하는 건 말 그대로 출혈 경쟁이다.
정상진_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협회 출범 기자회견을 가지고 나서 외신에도 협회 출범 소식이 기사로 나갔다. 그 뒤 해외 세일즈사에서 연락이 왔다.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할 거야?’, ‘나랑 너랑 관계가 좋은데 이 계약 조건을 다른 사람들하고도 적용해야 해?’ 물어보더라. 역으로 생각하면 지금까지는 불이익을 감수한 계약을 많이 했다는 거다. 세일즈사의 애스킹 프라이스(거래 희망가) 이상을 주고 영화를 사는 건 문제가 있다. 그 이상의 돈을 내고 영화를 사서 과당 경쟁을 부추긴 바이어도 문제지만 그 가격을 받고 판 세일즈사의 책임도 존재한다. 계약서만 쓰고 돈을 지불하지 않는 회사들이 많아져서 우리나라 바이어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순 없지만 세일즈사와의 관계, 동종업계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정원_ 원치 않는 다른 작품을 끼워서 파는 패키지 딜(package deals)도 큰 문제다.
김난숙_ 패키지 딜의 최근 피해자가 나다. (웃음) 올해 칸 필름마켓에서 켄 로치 영화를 패키지 딜로 샀다. 10년 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을 우리가 샀고, 켄 로치의 두 번째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올해 우리가 수입했다. 예술영화를 패키지로 살 줄은 나도 몰랐다. 세일즈사에서 ‘너희가 아니어도 패키지 딜 오퍼를 한 회사가 있다. 결정해라’ 그러더라. 사실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칸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별점도 낮지 않았나. 수상 소식을 알기 전에 구매 결정을 했는데, 난 이 영화가 좋았다. 이게 예술영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의 이상한 불치병 같은 거다. (웃음) ‘이런 영화 안 할 거면 왜 비즈니스를 하나’ 싶은 이상한 고집이 다들 존재한다. 돈이 될 것 같은 영화를 사는 게 아니라 자기 취향을 버리지 못하고 영화를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실 비즈니스를 하면 안 되는데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엣나인필름에서도 자비에 돌란의 영화를 꾸준히 수입해서 소개하고 있지 않나. 그건 엣나인필름이 리스크를 안고서 꾸준히 물 주고 거름 주고 가꿔왔다는 얘기다. 그러니 우리는 자비에 돌란의 영화 구매 오퍼가 들어와도 거절한다. 아무튼 올해는 진진이 10주년 되는 해다. 10년 전 켄 로치 영화를 사서 켄 로치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 어렵게 켄 로치 영화 구매 결정을 내렸다. ‘10년 뒤 내가 예술영화를 패키지로 사고 있구나’ 자조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봤고 또 이 시장을 다시 보기도 했던 것 같다.
정상진_ 해외의 신인감독들과 좋은 영화를 발굴해서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이 수입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해외 마켓에 가면 절대 감독의 이름이나 얼굴을 보지 않는다. 영화만 본다. 감독의 이름이 인지되는 순간 이 영화에 얼마의 관객이 들지 계산하게 되니까.
김난숙_ 원하는 작품 하나를 사기 위해 원치 않는 작품 두편을 더 사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예술영화 시장에서까지 이제는 돈 놓고 돈 먹기를 하게 됐다. 그럼 누가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돈이 답이면 결론은 하나다. 대기업만 사업을 하면 된다. 그러면 대기업이 예술영화로 인정하는 영화를 예술영화로 알고 보면 되고. 실제로 미디어도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쓰고 있다.
김상윤_ 예술영화에서 패키지 딜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협회 차원에서 세일즈사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 우리가 한목소리를 낼 필요성이 있다. 시장을 바꾸기 위해 이렇게 협회를 꾸렸다. 아마도 처음엔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 영업 비밀일 수 있는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패키지 딜을 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면 그사이 누군가가 이득을 챙기려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동참해야 성과가 생기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먼저 체질을 바꿔가는 게 중요하다.
김난숙_ 우리가 해외 세일즈사의 유의미한 바이어라면 계약 조건을 바꿀 수 있다.
서정원_ 패키지 딜을 하는 게 약간은 쑥스럽고 창피한 일이라는 분위기를 만들면 전반적인 공기도 바뀔 거다. 사실 상도덕에 대한 얘기다. 도의적 규범이란 게 있다. 서로 예의를 지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적어도 뒤에서 칼 꽂는 행위는 못하지 않겠나. 그런 점 때문에라도 우리가 자주 만나서 대화해야 한다. 첫째가 서로 믿음을 가지고 대화하는 거다.
김난숙_ 그렇게 되면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 문제
서정원_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상영시간표가 잘 나오니 수입사 입장에선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점점 극장들의 이기심과 경쟁이 심해지면서 독이 돼버렸다.
정상진_ 멀티플렉스들이 점점 경영난을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콘텐츠를 독과점하려 한다. 오직 CGV, 오직 롯데시네마, 오직 메가박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선점하려는 거다. 독점 콘텐츠가 있으면 관객이 모일 테니까. 그런데 절대적 갑으로 불리는 멀티플렉스에서 지금처럼 계속 단독 개봉을 하게 되면 지역의 작은 예술영화관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는 구조, 작은 수입사와 배급사들이 계속해서 멀티플렉스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흥미로운 건, 대기업의 횡포가 싫어서 점점 대기업 극장을 이용하지 않는 관객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술영화를 즐겨보는 관객 중에는 멀티플렉스에 대한 피로도가 쌓여서 혹은 자신의 자아가 대기업에 종속되는 게 싫어서 차라리 뜻 맞는 사람들끼리 작은 영화관을 빌려 단체관람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김상윤_ 복잡한 문제다. 사실 멀티플렉스에서 단독 개봉을 요구하는 측면도 있지만 수입사가 원하는 경우도 있다. 멀티플렉스에서 단독 개봉을 해야 그나마 좋은 시간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의 요구가 결합돼서 발생한 복잡한 문제다.
서정원_ 수입사마다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협회가 필요하고, 협회가 저수지 역할을 해서 양쪽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김상윤_ 당장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을 반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멀티플렉스의 단독은 인정하더라도 지역의 작은 예술영화관에선 영화를 틀 수 있게 예외 조항을 두도록 멀티플렉스와 협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상진_ 재개봉 문제도,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 문제도 결국은 과잉이 가져온 결과다. 하나의 멀티플렉스에서 단독 개봉으로 가져가는 영화가 일주일에 3~4편씩 된다. 단독 개봉을 한다면 적어도 스크린 수는 보장해줘야 하는데, 단독개봉영화 수가 많아지니 영화를 걸 스크린이 줄어든다. 극장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되는 영화를 더 밀어주면 되니까. 반면 수입사들은 단독 개봉을 믿고 영화를 배급했다가 손해를 보기 시작하는 거다. 그런 병폐를 체감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수입사들이 멀티플렉스 단독 개봉으로 수익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문제점이 불거지자 서서히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건 협회의 의견이 아니라 개인의 의견이라는 것을 알아달라.
유통망의 변화
김난숙_ 장기적으로 유통망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향후의 대안적 유통망, 멀티플렉스와 상생할 수 있는 유통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모든 콘텐츠가 극장이라는 첫번째 윈도에서 소개되고 있지만, 지금의 영화 관람 환경을 확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하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만 봐도 극장 개봉을 할지 안 할지 궁금하지 않나. 현재로선 멀티플렉스와의 관계를 일차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프로바이더로서 어느 플랫폼에서 누구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게 근본적이고 중요한 과제다.
서정원_ 유통망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유통 과정에서의 분배 방식, 부의 나눔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1년에 한두편의 천만 영화가 나오고 있지만 영화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졌다고는 보기 힘들다. 영화시장의 양극화, 관객의 쏠림현상이 계속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쏠림현상을 부추기느냐 하는 거다. 관객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양치기들이 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다른 영화는 보지못하게) 길을 막아놓고 그것을 관객의 선택처럼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시장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만의 경쟁이 아니라 외국 회사와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넷플릭스나 아마존은 이미 전세계 콘텐츠의 판권을 다양하게 사들이고 또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 영화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플레이를 하게 되면 극장으로의 쏠림현상 또한 변화를 맞을 것이다. 소비자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는 플랫폼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러면 메이저 극장들도 위기를 느낄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당장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나가겠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시간을 들여서 방향성을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메이저 극장을 상대로, 세일즈사를 상대로, 플랫폼 사업자를 상대로, 또 다른 누군가를 상대로, 협회 회원들의 정당한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가 되는 게 우선이다.
또 다른 계획
김상윤_ 다양한 영화가 극장에 걸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힘쓸 것이다. 그 일환으로 협회가 연말 영화 상영회 같은 것을 기획하면 좋을 것 같다. 극장에서 제대로 된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한 영화들을 모아서 상영회를 여는 거다. 그런 자리를 통해 관객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일도 필요하고.
정상진_ 수입사가 뽑은 올해의 영화들을 상영하고 시상까지 하면 좋겠다. 마지막 프러포즈, 괜찮네.
김난숙_ 어차피 우리는 콘텐츠로 얘기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영화들, 의미 있는 영화들을 계속해서 수입하고 배급할 수 있게 관객의 응원을 받으면 좋을 것 같다. 관객 입장에서도 극장에서 금방 사라진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좋지 않을까.
정상진_ 오늘 우리의 계획을 너무 많이 공개한 것 같다.
일동_ 자, 여기까지만 하자.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