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의 야간재생]
[김현수의 야간재생] “당신이 살고 싶은 대로” <레이디 인 더 밴>
2016-11-17
글 : 김현수

영국의 한 유명 극작가가 밴에서 노숙하던 할머니를 자신의 집 안마당에 불러들여 머물게 한다. 두 사람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이상한 동거 생활을 유지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대뜸 이유부터 묻게 되는 ‘세상에 이런 일이’류의 이 이야기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조지 3세의 광기> <히스토리 보이스> 등의 유명 극본을 쓴 극작가 앨런 베넷의 실화다. 이를 영화화한 <레이디 인 더 밴>은 두 사람이 ‘왜’ 같이 살았는지보다 두 사람이 ‘어떻게’ 15년을 같이 살았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일러주는 영화다.

01 셰퍼드 부인에게는 집이 없다. 6인승 밴을 몰고 다니면서 한적한 주택가를 골라 어느 집 앞에 차를 세운 뒤 거기서 몇년을 지낸다. 주변 민원이 심해지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 안 쓴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본인이 지겨워졌을 때에야 비로소 다른 곳을 찾아 이동한다. 시에서도 그녀의 ‘자차거주’를 막을 방도가 없다. 가끔 불법주차 딱지를 떼는 게 전부다. 딱지도 쉽게 뗄 수가 없다. 그녀의 차에 다가가 청구서를 무사히 전달해줄 대범한 단속 요원은 거의 없을 테니까 말이다.

02 1968년 베넷이 캠든 타운으로 이사하자 마침 셰퍼드 부인도 근방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처음엔 누구나 그러하듯 서로 경계를 늦추지 않다가 셰퍼드 부인이 조금씩 베넷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둘의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 성격과 냄새가 모두 고약하고 아이들이 노래하거나 음악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그녀를 베넷만은 다른 이웃과 똑같이 대한다. 적어도 그는 노력한다. 다만 이성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건 그녀의 냄새다. 그는 책상 앞에서 타자기에 “사람의 귓속 같은 냄새”라고 쓴다. 그리고 밖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03 그녀가 베넷의 앞마당에 머물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자연스레 그녀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된다. 그 뒤로 그의 눈에 보이는 건 그녀가 숨기고 있던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과 과거 행적, 그리고 자신은 손도 못 대는 그녀를 살갑게 대해주는 복지과 직원들의 손이다. 베넷에게는 타자기를 치는 손으로 그녀의 더럽고 냄새 나는 외투를 만질 수 있는지 없는지가 아주 중요했을 것이다. 셰퍼드 부인에게도 물론 베넷의 손은 아주 중요했을 테다. 원작자는 이에 대해 부가영상에 실린 인터뷰에서 “런던 사람들이 얼마나 예의 바르면 아무도 내게 15년 동안 같이 살 수 있었던 이유를 묻지 않았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04 베넷은 본의 아니게 그녀를 15년이나 들여다보며 살았다. 그 삶 속에서 그가 보고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걸 영화는 베넷의 두명의 자아를 등장시켜 보여준다. 영화 내내 글을 쓰는 베넷과 생활을 하는 베넷 두 사람이 화면에 동시에 등장하는 것. 이 영화적 설정 덕분에 베넷이 매 순간 노숙자와 동거하는 물리적 괴로움을 스스로에게 전시하듯 살지는 않았다는 걸 차근차근 증명해 보인다. 그는 셰퍼드 부인이 살아 있을 때는 결코 그녀의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든 활자화하는 걸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 전시되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

05 앨런 베넷이 쓴 극본으로 1999년 런던 퀸스 극장에서 초연했을 당시, 주연과 극연출을 맡았던 배우와 극작가가 다시 뭉쳐 영화로 탄생했다. 다른 연극에서 앨런 베넷을 연기했던 알렉스 제닝스가 이번에도 베넷을 연기했다. 영화와 연극의 묘한 동거다. 이 세기의 동거 속에는 “자신이 원하는 방법대로 살기를 결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던 감독과 “그녀에 대해 쓰면서 나에 대해 발견했다”는 베넷, “연극은 고립, 영화는 모두 함께하는 작업”의 차이를 말하는 매기 스미스(셰퍼드 부인 역)의 마음이 모두 들어 있다. 그녀의 밴은 비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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