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풍미한 다큐멘터리 PD이자 영화감독 겸 제작자 김태영은 40대 중반에 뇌출혈로 쓰러진다. 수술과 오랜 치료는 막대한 빚과 장애를 남긴다. 지팡이를 짚고 종로 일대를 오가며 소일거리를 하던 김태영 감독은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영화를 찍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과 잘 아는 곳을 찍으며 되는 대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감독. 월세가 밀려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작업실 곳곳에 압류딱지가 붙어도 영화 만들기는 계속된다.
딜쿠샤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돕던 외신기자 앨버트 테일러가 지은 지상 2층 규모의 서양식 주택이다. 힌디어로 ‘행복한 마음, 희망의 궁전’을 뜻한다. 이곳은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거주지로, 오랜 무명 생활에도 가수의 꿈을 놓지 않는 인물이나 집요한 의지로 영화를 찍어가는 주인공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
김태영 감독이 연출과 각본, 주연까지 맡은 이 작품은 감독의 생각대로 자유롭게 흐른다. 일제강점기와 현대를 오가는 픽션, 여러 인물들의 일상과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담긴 논픽션이 한데 섞여 있다. 전개가 산만하지만 고유한 리듬이 있고, 이야기 전달 방식이 세련되진 않지만 감독의 집념과 경계 없는 상상력에서 나오는 울림이 있다. 안성기 주연의 미완성 뮤지컬 영화 <미스터 레이디>의 필름 일부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카메오로 출연한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1) 촬영현장 영상, 감독이 연출한 다큐 <세계영화기행> 속 걸출한 영화인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