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광화문에서 만납시다!
2016-11-25
글 : 주성철

“대통령이 하면 불법적인 일도, 불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1974년 8월,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큰 스캔들이었던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으로 사임했던 닉슨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면서 아무런 진실을 밝히지 않았고, 자신의 잘못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 사임 이후를 그린 론 하워드 감독의 <프로스트 VS 닉슨>(2008)은 뉴욕 방송국으로 복귀하고 싶은 토크쇼 MC 프로스트(마이클 신)와 역시 정계 복귀를 꿈꾸는 전직 대통령 닉슨(프랭크 랑겔라)의 인터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예정된 네번의 인터뷰 중 처음부터 세 번째까지 프로스트는 닉슨에게 끌려다니기만 한다. 그러던 중 마지막 인터뷰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통해 닉슨으로 하여금 잘못을 시인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었던 닉슨은, 대통령의 불법은 불법이 아니라는 말을 내뱉고서야 무너지고 만다. 그렇게 그는 진상 은폐에 가담했고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독백이 이어진다. “임기 중 나는 실수가 아니라 잘못을, 범죄를 저질렀다. 나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대통령 권한을 남용했고, 국민에게 고통을 주었다. 내 정치생명은 끝났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얘기다.

수세에 몰리다 기어이 진실을 털어놓고야 마는 인물로는, 에런 소킨의 할리우드 각본 데뷔작이기도 한 로브 라이너의 <어 퓨 굿맨>(1992)의 제셉 대령(잭 니콜슨)도 떠오른다.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서 산티아고 사병이 2명의 해병에게 폭행당해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캐피 중위(톰 크루즈)와 겔로웨이 소령(데미 무어)이 투입되어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간다. 하지만 관련자들의 부인 속에 유일한 증인의 권총 자살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리고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결국 ‘몸통’ 제셉대령을 증언대에 세워야 함을 깨닫게 된다. ‘진실을 원한다’는 캐피 중위에게 “넌 진실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는 그 유명한 대사, 그리고 이어지는 공방 속에 분노한 제셉 대령은 결국 진실을 토해낸다. “내가 덮어준 자유의 이불로 자네는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당당하게 “나 대신 누가 그 일을 해줄 텐가!” <프로스트 VS 닉슨>이 논픽션이라면 <어 퓨 굿맨>은 픽션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지금의 우리 현실과 겹쳐 보인다. 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목격했던 진실의 고백, 이곳의 우리에게는 과연 머나먼 풍경인 것인가. 간절히 바라는데도 온 우주는 끝까지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 것인가.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청와대에 있었다던데 그렇게 찾기가 어렵습니까”, “헬조선인 줄 알았더니 고조선”, “청와대를 비우그라” 등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패러디와 유행어가 만들어진 시간일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그랬나’는 마치 ‘지구를 떠나거라’처럼 수십년 전 유행어로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시국 얘기에 분개하던 친구가 무심결에 “여기 차움처럼 한병 더요”라고 주문하질 않나, 또 다른 친구는 부산에서는 너무나 멋진 이름의 하야리아 공원을 놔두고 왜 서면 주디스 태화 앞에서 집회를 하는 것이냐고 흥분하질 않나, 하여간 요즘 국민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참다 참다 <씨네21> 정훈이 만화의 주인공 남기남씨도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11월26일(토) 집회에 나가기로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씨네21> 직원들이 노사연합으로 특별판을 제작해 광화문에 나가기로 했다. 현장에서 현 시국을 풍자하는 정훈이 만화 여러 편을 묶은 특별판을 배포할 예정이다. 오다가다 남기남씨 표지 만나거든 반갑게 맞아주시길, 승리!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