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영화계 내 성폭력 사태 네 번째 대담 - 심재명·전려경·제정주·최은화
2016-11-30
글 : 이예지
사진 : 오계옥

어느덧 네 번째 여성영화인 대담이다. <씨네21>은 지난 1079호에서 젊은 여성 영화인들과 함께한 #영화계_내_ 성폭력 대담을 시작으로 배우, 감독, 수입·배급·홍보·마케팅 등 다양한 직군의 여성 영화인들과 만나 영화계 속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추적해나갔다. 이번 자리에는 영화 제작 전반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제작자와 프로듀서를 한자리에 모았다. 영화사 명필름 대표이자 여성영화인모임 이사로 <카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영화들을 제작해온 심재명 대표, 영화 <황진이>를 프로듀싱 했으며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전 대표인 최은화 프로듀서, <더 테러 라이브>를 프로듀싱했고 <여고괴담> 리부트를 준비 중인 전려경 프로듀서 그리고 <우리들>을 제작한 영화사 아토의 제정주 대표가 그들이다. 영화계의 1세대 제작자부터 중견 제작자, 신생 제작사의 대표까지 한자리에 모인 이 자리에서는 영화계 내 성폭력과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대책을 의논하며, 현 시장 상황 속 여성영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폭넓은 논의가 이어졌다. 여성 영화인들의 네 번째 목소리를 전한다.

최은화 PD

<이웃집 좀비>(2009), <황진이>(2007), <꽃피는 봄이 오면>(2004)의 프로듀서로 2015년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대표를 역임했다. 박철수 필름에서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995)를 기획하고 <가족시네마>(1999) 등의 영화 홍보 마케팅을 진행했다. 현재 양종현 감독의 <죄와 벌>을 제작하고 있다.

전려경 PD

영화사 씨네2000의 기획실 출신으로 <미술관 옆 동물원>(1998) 홍보 마케팅으로 영화에 입문했으며 <더 테러 라이브>(2013)와 <여고괴담4: 목소리>(2005) 등의 영화를 프로듀싱했다. 현재 안국진 감독의 <여고괴담> 리부트와 정소영 감독의 <신구간>(가제)을 기획 중이다.

심재명 대표

여성영화인모임 이사이자 영화사 명필름 대표로, 창립작인 <코르셋>(1996)을 비롯해 <카트>(2012), <관능의 법칙>(2013), <마당을 나온 암탉>(2011),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등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다수 제작했다.

제정주 대표

<우리들>(2016)을 제작한 신생 영화사 아토의 대표로, <밀양>(2007)과 <오래된 정원>(2006) 제작실장을 거쳐 <환상속의 그대>(2013), <무서운 이야기>(2012) 등을 프로듀싱했다. <어른도감> 프로듀서로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으며, 아토에서는 퇴직한 60대 여성 교사가 주인공인 스릴러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최근 시국이 흉흉하지만 수면 위로 떠오른 문화계와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 역시 가라앉으면 안 될 문제다. 이 와중에도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아닌 여성성을 비하하거나 시위에 나선 여성들의 모습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등 여성 혐오의 모습들이 겹쳐지고 있다.

=심재명_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가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XX년’, ‘강남아줌마’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데, 우리가 언제 이명박 전 대통령한테 ‘강남아저씨’라고 한 적이 있었나.

=최은화_ 남자 대통령이었다면 들었을까 싶은 말들이다. 저번 촛불집회에서는 대통령을 ‘박양’으로 부른 남자에 대한 질타가 있었다. 잘못된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가야 하는데 엉뚱한 비판을 하고 있는 거다.

=전려경_ 참담한 일이다. 물론 그가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변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첫 여성 대통령이었다는 상징성 때문인지 대통령으로서의 업무 수행 능력이나 도덕성이 아닌 여성성을 가지고 희화화되는 부분이 있어 안타깝다.

심재명_ 사실 나는 진보를 표방하는 남자들도 페미니스트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젠더 문제는 이데올로기 문제보다 훨씬 편견이 깊은 영역이다. 그러니 이 와중에도 대통령의 여성성을 희화화하는 잘못된 비판들이 나오는 것이고. 한국은 성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후진국이고, 이곳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건 무서운 일이다. 밤에 혼자 밖을 돌아다닐 수도 없고, 올레길을 혼자 걸을 수도 없다.

전려경_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릴 적 집안에서부터 성역할을 배우기에 성차별이 더 뿌리 깊은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아빠와 엄마와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습득되니까.

심재명_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는데도 요즘 젊은 여성들의 의식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걷기왕> 작가인 남순아 감독이 성희롱 예방교육을 처음으로 실천한 것도 최근 젊은 여성들의 변화를 보여준 사례다. 올해처럼 한국의 근현대 역사에서 이렇게 페미니즘이 화두가 되고 이야기되는 해가 없었다. 여성들이 당해온 만큼 반사하는 ‘미러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여성 문제를 논하며 투쟁하고 쟁취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제정주_ 이슈를 넘어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 뜨고 있고, 서적들도 많이 팔리고 있다. 단순히 1, 2주 동안 반짝하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페미니즘은 단연 올해의 이슈다.

심재명_ <씨네21>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간 <씨네21>의 여성 영화인 대담 기획 기사를 지켜보면서 <씨네21>이 특정 사안을 이렇게 오래 다룬 적이 있었나 싶더라. 각별함이 느껴졌다. 영화계 선배이자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제작자로서 후배 여성 영화인들이 외면한다고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

전려경_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고발에만 멈추는 게 아니라 물꼬가 터져서 큰 담론이 형성되면 좋겠다.

대처방안을 진작에 마련하지 못한 데 미안함 크다

-얘기한 대로 이번 대담에서는 영화의 제작과정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제작자와 PD들을 모셨다. 현재 제작자와 PD라는 위치에서는 직접적인 체감이 어려울 수 있지만 네분 모두 제작자와 PD가 되기까지 마케터, 영화사 기획실, 제작팀 막내 등을 거쳤다. 과거부터 현 시점까지 영화계 내 성폭력이나 성희롱에 문제의식을 느낀 적이 있나.

심재명_ 마케터 ‘미스 심’으로 불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 성희롱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스스로의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다. (웃음) 10년 전, 지금도 활동 중인 한 영화제작자가 여성 영화인을 상대로 자행한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여성 영화인모임에서 사과를 받아내긴 했지만 제대로 공론화하지 못했던 게 지금도 후회된다. 우리가 느끼는 만큼 남성들은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당시 남성 영화인들은 ‘우리가 남이가’ 식의 남성적 질서의 ‘형님 네트워크’에 호소하며, ‘당신네들이 이 문제를 공론화하면 한국 사회에서 영화계를 어떻게 보겠나’ 하는 논리로 공론화를 막았다. 거기에 여성 영화인들도 약한 동조를 했던 게 아니었나 반성이 앞선다. 현재 여성영화인모임에서 성희롱 및 성폭력 대책 기구 마련을 준비 중이지만 더 빨리 움직여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 후배 여성 영화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제정주_ 나 역시 후회되는 점이 있다. 한국영화산업 임금단체협약(이하 임단협)에 성희롱 예방교육에 대한 조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20조 노조원 교육시간 조항으로 ‘위임사는 크랭크인 전에 근로시간중 4시간(산업안전보건교육, 성희롱예방교육 등)의 교육을 실시한다’는 내용이다.-편집자). 그런데 적극적으로 이행을 하지 못했고, <걷기왕>이 처음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한 영화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차기작 <어른도감>의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는데, 이번 영화부터는 꼭 해야겠다고다짐하고 있다.

심재명_ 4대 보험이나 근로시간 같은 것들만 지키려고 했지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다들 잘 몰랐다. <걷기왕>팀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앞으로 들어갈 모든 명필름 영화에서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할 것이다. 워크숍하는 날 고사를 지내고 상견례를 지내는 것 처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전려경_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곧 이 교육이 당연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최은화_ 돌이켜보면 이렇게 영화계에서 여성 문제가 쟁점이 된 적이 없었다. 임단협에 성희롱 예방교육 조항이 있었지만 사안들에 묻혀 있었고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다. 이제 첫 단추를 끼운 거다.

제정주_ 그런데 이렇게 이슈가 되어서 여성 영화인들이 대담도 계속 하고 있는데 남성 영화인들은 알고는 있는 걸까?

심재명_ 한 촬영감독에게 들었는데, 최근 촬영감독조합에서 이런 사태가 공유되고 조심하자는 의견이 공유됐다더라.

최은화_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대응했다. 지난해 내가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에 대표로 있을 때 사태에 대해 빨리 인지하고 움직였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현안들에 밀려 묻혀버렸던게 아쉽고 후회가 남는다.

전려경_ 다른 중요한 일이 있는데 성희롱 문제는 덜 중요한 일, 피곤한 일로 인식되어 밀려났던 게 문제인 것 같다.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최은화_ 문제의식이 생겼으니 이젠 신고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사건이 터진 후 뒷수습 하는 모양새가 아니라 성희롱에 대한 인식 수준을 넓혀 사건을 방지하는 게 필요하다. 현장뿐 아니라 기획개발, 마케팅 단계에서부터 성희롱에 대한 기준점을 세우고 처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심재명_ 당했다, 카더라라는 이야기들을 공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떤 것들을 간과해왔고 어떤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지 사태를 짚어보고 대안과 전망을 가져야 한다. 영화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신고센터가 있어야 하고, 여성영화인모임에서 준비 중인 기구가 그런 역할을 하길 바란다. 한쪽에선 교육을 통해 의식화를 시키는 한편, 한쪽에서는 신고를 접수하는 창구를 만드는 거다.

제정주_ 영화인 신문고가 있지만 익명으로 글을 올렸을 때 접수 및 수리과정이 너무 오래 걸린다더라.

최은화_ 신문고가 열심히 하긴 하는데 기준점이 모호해 논의과정이 길게 진행되고, 접수자가 지치는 경우가 많다.

심재명_ 그래서 상담사는 전문 교육을 받아야 한다. 신고자에 대한 전문적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전담을 해야 한다.

차별과 혐오 공고히 하는 ‘형님 네트워크’

-현재 문화예술계에 만연해 있는 성희롱과 성폭력 사태들은 대부분 갑의 지위에서 을에게 행한 것들이다. 영화계 내 성희롱 역시 권력과 위계를 이용한 사례가 대부분이었고, 피해자들도 막내급이 많았다.

심재명_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태의 가장 큰 문제다. 약자의 위치에 놓인 젊은 사람들의 꿈을 수단으로 삼아 짓밟는 악질적인 행위다.

전려경_ 그게 본질이다. 영화계 내 성폭력이 단순히 여성 혐오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힘이 개입한다는 것. 단순한 남녀의 대립구도가 아니다. 스탭들끼리 서로가 수직적 관계가 아닌 함께 영화를 만드는 동료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윗사람, 아랫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이다. 롤을 수평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키스탭들이 노력해야 한다.

제정주_ 나는 제작팀 막내 때 직접 그런 일들을 겪었다. 부산에서 갓 상경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지하기도 전이었다. 문제제기를 했지만 조감독이나 PD는 묵인하고 넘어가거나 다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말뿐이었다. 막내에서 벗어난 후 그런 일들이 있을 땐 센 농담으로 받아치거나 무시하는 식으로 상황을 넘겼다. 목격한 것도 적지 않은데, 대부분 피해자들이 힘없고 약한 포지션에 있는 경우였다. 팀원이 적은 경우면 더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예전에 동시녹음팀에 동시녹음기사와 여성 붐 오퍼레이터, 단 두명이 있었다. 지방 촬영이었는데 기사의 태도나 언행이 불안해서 촬영이 끝난 후에는 붐 오퍼레이터가 동시녹음 기사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여성 스탭들이 나서서 보호해준 적이 있다. 한편 을의 위치에 있는 남자가 피해자였던 사례도 있다. 여자 PD가 막내 조명팀 스탭을 예뻐한다는 명목으로 술자리마다 데리고 다니고 언어 성희롱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역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걸 본 후로 나도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심재명_ 성희롱과 성폭력은 대개 수직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니까.

최은화_ 도제 시스템이 없어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그 정서가 남아 있는 거다. 한밤중에 감독님이 술 마시자고 불러내면 안 나갈 수가 없다. 밤새 마시는 거다. ‘우리는 가족이니까’라고 말하지만 과연 거기에 앉아 있는 모든 스탭들이 그렇게 느낄까. (웃음)

제정주_ 언젠가 남성 스탭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지금도 여성 스탭들 모르게 성적인 평가나 희롱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더라. 영화현장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상황은 심각하다. 교수와 학생 관계도 일종의 권력 관계지 않나. 한 영화학과 체육대회 때 남자 교수들이 남학생들과 함께 여학생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신체를 이런저런 말에 빗대어 희롱한 적도 있다더라. 그에 대해 여학생들이 항의하자 가벼운 농담처럼 사과하고 넘기면서 무마됐다고 했다.

전려경_ 남자 교수에서 남학생까지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 혐오적 인식이 묵인되고 세습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심재명 대표님이 얘기했듯 여성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다. 내 현장에선 내 눈치를 보느라 그런 일이 없지만(웃음), 현장에서 세습되는 애티튜드도 있다. 감독님 중에서도 다양한 캐릭터가 있지만 많은 남자감독들이 남성성을 과시하는 태도를 소위 ‘간지’라고 멋있는 것처럼 생각하더라.

제정주_ 현장마다 분위기를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다르다. 어떤 감독님이 음담패설을 쉽게 하는 사람일 경우 같이 일하는 연출부, 제작부의 남자들이 동조해서 ‘감독님이 그렇게 이야기하시니까’ 한마디 덧댄다. ‘이런 얘길 해도 문제가 없구나’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거다. 남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을 거치기도 하고, 수직적 질서에 익숙하니 헤드의 태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최은화_ 마초처럼 강성으로 행동하는 게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는 거다. 남자들끼리의 문화에 여성이 틈입할 수 없는 지점도 있다. 현장뿐 아니라 비즈니스 자리에서도 그렇다. 남성 스탭 사이에서는 마초 문화, 형님 문화, 줄 세우기가 만연해 있고, 자기들끼리 군을 하나 더 만들어서 공유하는 ‘형님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다. 10년 전에는 배우나 투자사 사이에 서로의 의리를 확인하기 위해 룸살롱 가는 문화가 있었다. 여성은 이런 유흥의 네트워크에서 당연히 배제된다.

전려경_ 이야기 나누면서 느끼는 건 모든 게 시스템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들을 음지에서 묻어버리지 말고, 양지로 끌고 나와 시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이야기가 나온 대로 성희롱, 성폭력 문제들은 공론화가 쉽게 되지 않는다. <걷기왕> 각본을 쓴 남순아 감독은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영화 제작사가 문제를 덮어버리지 않고 제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명_ 당연히 제작사가 책임을 져야지. 이런 사고가 터지는 게 아니라 계약 기간 중 고용인이 병이 나도 제작사가 책임져야 한다. 공론화가 어려운 것은 피해자가 피해를 받게 되는 상황이니까. 오늘 자리에 나오기 전에 회사 단체 채팅방에서 이런 자리에 나오는데 어떤 의견들이 있는지 물으니, 한 여성 직원이 기명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라더라. 여성영화인모임에서 만들 기구에서는 피해자의 신변 보호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려고 한다.

전려경_ 제작사뿐 아니라 투자·배급사도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그전에, 피해자에게 ‘얘기해도 괜찮아’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개인은 약하지만 연대는 강하다. 자신이 괜한 이야기를 해서 촬영에 지장을 준다거나 하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먼저 형성되어야 하겠지. 정의로운 것이 불리할 때가 있다. 불편하거나 시간이 걸려도 함구하는 것보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솔루션을 찾는 게 우선이다.

영화계 여성 노동 재평가받아야

-성희롱과 성폭력의 기저에 자리한 여성 혐오적 시각과 왜곡된 편견들이 근본적 문제다. 여성배우들은 ‘현장의 꽃’이라는 편견, 여성감독들은 ‘스릴러보다 멜로 같은 감성 표현에만 능할 것’이라는 편견에 맞부딪힌다더라. 여성 제작자와 PD로서 받는 편견도 있을까. 그외에도 여성 영화인으로서의 고충이 있다면.

제정주_ 남성들이 자주 나오는 장르물 현장에서 여성 PD는 남성배우와 스탭들을 잘 다루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를 듣는다. 한 제작자는 나에게 의외로 여성스럽다며 전사 같은 모습을 보이라고 주문하더라. 나는 여전사가 아니고 여성 PD일 뿐인데 말이다. (웃음) 여성감독들이 현장에서 주도권을 쥐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여자가 그런 일을 못할 것이란 것도 편견이거니와 맡은 일만 잘하면 되지 꼭 강압적이고 마초적인 방식으로 할 필요가 있나.

최은화_ 여성 PD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 다른 건 다 알아서 할 테니 까다로운 여성 배우만 맡아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웃음)

전려경_ 나는 기획실 출신 피디라 현장을 잘 모른다는 편견이 있었다. 기획실 출신의 프로듀서나 제작자와 제작부의 출신의 제작자를 구분 짓지 않나. 나는 씨네2000 기획실에서 기획실장까지 하고, <돌려차기>(2004)라는 작품의 라인PD로 현장 경험을 거쳤다.

최은화_ 아마도 전체 여성 PD 중 60~70%는 영화사 기획실, 마케팅쪽에서 출발한 경우일 거다. 현장 경험 없이 기획 개발과 마케팅 경력으로 크레딧을 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때 제작현장에서 막내부터 시작해온 남자 PD들은 ‘현장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프로듀서를 하냐’는 얘기를 많이 한다.

제정주_ 나는 제작부 막내 때부터 해서 그런 분위기를 더 잘 느낀다. 마케터나 기획실 출신이라고 하면 현장에서 짬밥 많이 먹은 남자 PD들은 ‘책상머리에 앉아만 있었는데 뭘 아냐’고 한다. 기획과 마케팅 역시 영화 제작의 중요한 일부인데, 데스크 업무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전려경_ 스탭들의 노동 기간이나 노동량, 처우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여성들이 많이 맡고 있는 기획, 마케팅 등 무형의 노동에 대해선 가치평가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도 필요하다.

최은화_ 심재명 대표님이 직함 없이 ‘미스 심’이던 시대를 지나, 이제 마케터나 기획실에서도 미스라는 단어는 없어지고 대리, 팀장, PD 등 직함이 생겼다.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려경_ 현장에 제작부로 들어가면 여자들이 몸 쓰는 ‘노가다’에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런데 물리적인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똑같이 하는 게 과연 평등인 걸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정주_ 처음 제작부에 지원했을 때 들은 얘기는 여성 스탭은 이미 많이 있기에 더 뽑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물리적인 힘이 약해 고된 노동을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전려경_ 할 수 있는 일을 잘하면 된다. 실제로 제작부가 하는 일은 담배꽁초를 줍거나 다른 팀의 기자재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예산과 시간을 관리하는 일이다.

심재명_ 여성 영화인으로서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일 것이다. 2002년 여성영화인모임에서 실태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우선 영화계에서 일하는 전체 여성 중 기혼자의 비율이 9.2%밖에 되지 않았고, ‘가사나 육아부담 때문에 일을 그만 둔 여성을 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라는 응답이 약 70%였다. 오래전 자료이긴 하지만 지금도 상황이 나아졌을 것 같진 않다.

제정주_ 영화인 부부라 해도 육아나 가사 부담으로 일을 그만두는 건 대개 여성 영화인들이다. 능력을 떠나 고정적인 성역할에 따른 관습적인 생각이 아직 남아 있는 거다. 그렇게 일을 그만둔 능력이 아까운 여성 영화인들이 많다.

여성감독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

-한국영화계의 여성 제작자와 PD들은 그래도 여성감독에 비해 활동하는 수가 많은 편이다.

심재명_ 후배 제작자와 PD들이 스스로 자신의 기회를 획득하고 노력해온 결과다. 감독 진영에 비하면 그나마 기회가 있는 편이기도 했다. 여성 제작자라고 투자를 안 하진 않으니까.

최은화_ 여성 PD는 여성감독뿐 아니라 남성감독과도 일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전려경_ 나는 성공한 선배 제작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든든한 시대에 들어왔다. 심재명, 이유진 대표님처럼 몸소 겪으며 성공한 여성 제작자들이 있으니까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제정주_ 나도 심재명 대표님, 오정완 대표님처럼 1세대 롤모델 제작자분들을 잘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제작의 영역에서 여성 제작자, 남성 제작자를 구분하지 않듯이 감독의 영역에서도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아직 여성 연출자들은 많은 편견을 겪고 있다. 주변의 여성감독들은 대부분 상업영화가 아닌 저예산영화를 하는 중이다.

심재명_ 여성감독은 주로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 진영에 더 많다. 올해 상업영화 204편, 다양성영화 90편이었는데 이중 여성감독 영화는 상업영화 6편, 다양성영화가 15편이더라. 총합하면 총 294편 중에 21편으로 약 7%밖에 안 되는 거고, 상업영화로 치면 전체의 3%도 안 되는 셈이다. 어느 해는 여성영화인축제를 할 때 감독상을 줘야 하는데 장편 상업영화에 여성감독의 작품이 한편도 없던 적도 있었으니 올해는 나은 편이긴 하다. (웃음) 할리우드에서 여성감독 영화가 전체의 약 15%인 것에 비해서도 낮은 비율이다. 투자·배급사에선 여성감독이 연출하고 여성배우가 주연을 하는 영화를 주류가 아니라고 보는 인식이 있기에 독립영화쪽으로 넘어가거나 아예 입봉조차 어려워지는 것이다.

전려경_ 내가 영화 일을 시작했을 땐 오히려 여성감독들이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참여한 첫 작품이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이었고. 그런데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면서 크게 놓고 크게 먹어야 하는 시장이 되면서 남성적 영화가 주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됐다.

심재명_ 그때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최초의 여성감독인 박남옥 감독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여성감독이 24명뿐이었다. 영화가 산업화된 지금은 다양성의 실종 이야기를 하지만 그때는 현장 자체가 심각하게 전근대적이고 남성 중심적이었다지. 아쉬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별로 없다는 거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를 만들었을 때 예산이 10억원이었기 때문에 만드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이하 <우생순>)을 만들 땐 투자자들에게 제일 먼저 들었던 얘기가 ‘임순례 감독은 여성이고, 예술영화 감독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 우려의 말들을 불식시키면서 <우생순>이 흥행영화가 됐고, 임순례 감독이 다른 여성감독에 비해 자유로운 선택지를 갖고 목소리를 갖게 됐다. 그처럼 여성감독들의 영화가 상업적 경쟁력을 증명해나가는 일도 필요하다.

최은화_ 여성들은 불평등한 구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여성감독들 역시 영화의 주제나 소재를 불평등한 사회 구조나 주변부에서 찾는 경우가 많고, 이런 경우 자본의 외면을 받는 경향이 더 강하다.

전려경_ 그래서 여성감독들은 대중적인 스릴러와 액션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된다.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심재명 대표는 <우생순>을 비롯해 <마당을 나온 암탉>(2011), <카트>(2014)처럼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영화들을, 최은화 PD는 여성 원톱 영화인 <황진이>(2007), 전려경 PD는 <여고괴담4: 목소리>(2005)와 현재 제작 중인 <여고괴담> 리부트 작품, 제정주 대표는 소녀들이 주인공인 <우리들>(2016) 등 여성영화들을 제작해왔다.

심재명_ 명필름 첫 영화이자 살이 찐 여성이 주인공인 <코르셋>(1996)이란 영화를 기획하고 투자사들에 프레젠테이션할 때, 재미있는 풍경이 있었다. 전부 남자였는데, 그중 한 투자사 직원이 “나는 룸살롱에 가도 뚱뚱한 여자가 나오는 게 못생긴 여자가 나오는 것보다 더 싫다. 그런데 누가 이 영화를 보러오겠냐”고 하더라. 이후에도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견지한 영화를 하거나, 여성감독들과 작업을 많이 했다. 내가 여성 제작자인데 여성감독을 외면하고 싶지 않더라. 돈이 될 것 같아서 한 게 아니라 어떤 소명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의식적으로 노력한 것이다. <우생순> <카트>처럼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한 영화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성들은 지금도 약자이고 소수자다. 우리끼리 연대하고, 기회를 얻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은화_ 영화 <황진이>의 원작 소설은 북한 소설로, 기존의 황진이 이야기와 달리 조선시대 남성 사대부의 시선에서 탈피해 황진이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 속 황진이도 단지 예쁜 기생이라기보단 여장부처럼 기개가 있고 건강한 여성성을 가지고 있으며, 남자를 오히려 희롱하는 인물이었다. (웃음) 이런 데 큰 의미를 두고 시작했는데, 개봉 후 관객에게 가장 야단을 많이 맞은 부분이 ‘왜 베드신이 없냐’는 거였다. 흥행 실패의 원인이 거기에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성주인공인 영화에서도 관객의 남성적 시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더라. <우생순>의 경우 그것을 깨고 흥행까지 견인한 경우라 존경스럽다.

심재명_ 애써 노력한 거다. (웃음)

전려경_ <여고괴담>은 제목부터 여성이 주인공으로, 왜 여성이 주인공이냐는 이야기를 들을 일이 없고, 남자가 출연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는 프로젝트다.

제정주_ <우리들>은 스탭의 반 이상이 여자였다. 그리고 주연배우들이 아역배우들인 만큼 빨리빨리 하자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보다는 배려하고 수평적인 분위기로 진행됐다. 곧 크랭크인을 앞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연구 작품 <어른도감>도 스탭들이 PD부터 조감독, 미술, 의상, 분장, 스틸, 데이터 매니저까지 반 이상이 여자다. 이 영화에선 리드하는 역할이 대부분 여성들이라 오히려 기 센 언니들이 남자들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웃음)

여성영화 성공 사례 쌓아나갈 계획

-만들어지는 숫자로 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올해에는 개봉을 앞둔 <미씽: 사라진 여자>를 비롯해 <아가씨> <비밀은 없다> <우리들> <굿바이 싱글> 등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눈에 띄었다.

심재명_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아수라>가 남자 대상 시사회를 해서 관객이 반발한 적도 있지 않나. 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영화들에 대한 매너리즘도 느끼고 있는 것 같고, 과거 영화들을 대상으로 ‘그 영화는 여성 혐오 영화였다’는 재평가도 이루어지고 있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나 여성감독들의 영화들도 돋보였다. 개인적으로 <우리들>은 올해의 감독상과 올해의 제작자상을 탈 만한 영화라고 본다. 시나리오, 연출력, 연기 모두 흠잡을 데 없는 수작이다. <비밀은 없다>는 흔한 장르영화의 매끈함, 세련됨에서 벗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종횡무진 전개한 작품으로, 오롯하게 여성주인공을 내세워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굿바이 싱글>도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미혼모에 대한 여성주의적 시각이 들어간 영화였다. 그외에 지난해 개봉작인 <차이나타운>도 주인공이 남성이었다면 차별화되는 점이 없는 평범한 장르영화였을 텐데 주인공을 여성들로 바꾼 것만으로도 다른 영화가 되는 것을 확인한 한 사례였다. 이런 영화들에 대한 미덕을 알고 지지해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려경_ 요즘 트렌드가 여성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그래비티>의 주인공도 여성이었고, 넷플릭스만 봐도 여성 위주의 콘텐츠들이 많다.

심재명_ 할리우드는 이런 여성적 코드들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겨울왕국>처럼 주인공이 왕자와 결혼하지 않고, 자매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애니메이션이 흥행했고, 젠더스와핑된 <고스트버스터즈>나 <오션스 에이트>도 제작되고 있다. 한국영화계는 아직 멀었다.

최은화_ 세계적인 트렌드는 여성성으로 선회하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도 몇몇 남자배우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 배우들이 아니면 상업성이 없다고 하는 투자자들 입장도 강경하다. 사실 ‘관객이 안 보는데 어떡하냐’는 투자사의 논리로 치면 다양성영화나 여성영화는 만들어지기조차 어려운데 말이다.

심재명_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현상이 심화돼서 200만명 정도 드는 허리사이즈의 ‘중박’ 영화가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다. 리즈 위더스푼의 <와일드>처럼 예산을 줄이거나 여태까지 드물었던 방식의 이야기를 시도해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1억원짜리든 10억원짜리든 손해보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여성감독들도 자기검열을 하기보단 모험적이고 새로운 시도들을 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제2의 임순례 감독이 계속 나와야 한다.

최은화_ 이제 남성 중심 영화들, 천편일률적인 콘텐츠와 캐스팅에 관객도 지쳐가고 있는 추세고, 여성이 주인공이면 흥행에 실패한다는 공식도 곧 깨질 거다.

전려경_ 여성배우의 경우 드라마와 영화의 온도 차가 확연하다. 드라마는 여성주인공이 책임지는 경우가 많지만 영화에서는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들이 3040 남성배우들이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티켓파워가 있는 몇몇 남성배우를 쓰지 않고 여성주인공을 내세워도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을 만들어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것이 미션인 셈이다.

제정주_ 그나마 티켓파워를 지닌 여성배우들마저 맡을 만한 역할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전려경_ 최근 <미씽: 사라진 여자>를 봤는데, 그런 영화가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배우 엄지원과 공효진의 연기가 무르익었더라. 공효진의 경우 기존 ‘공블리’ 이미지와 완전히 달라 어려운 선택이었을 텐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제정주_ <화차>(2012)를 통해 김민희라는 배우가 재발견됐듯이, <미씽: 사라진 여자>의 두 배우에게서도 새로운 모습이 발견됐으면 좋겠다.

전려경_ 난 손예진 배우도 좋아한다. <비밀은 없다>처럼 용감하게 새로운 캐릭터를 시도하고, 책임을 지는 배우다.

최은화_ 신인배우들 중 라이징 스타들이 치고 나오고 있다. 김고은, 박소담, 천우희 등 최근 몇년간 눈에 띄는 신인들이 대부분 여성들인 것도 고무적이다.

-차기작에선 여성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나.

전려경_ 현재는 <여고괴담> 리부트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를 연출했던 안국진 감독과 하고 있는데, 딱히 여성주의를 공부한 것도 아닌데 자기 시각이 제대로 서 있는 감독이더라. 이런 괜찮은 창작자들이 <여고괴담> 리부트의 연출을 제안했을 때, 이번엔 여고생이 아닌 30대 싱글맘인 선생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호러 장르는 ‘무엇이 당신을 무섭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게 생각해봤을 때, 우리 나라에서 사는 여성에게 무서운 것은 다름 아닌 현실이다. 30대 계약직 교사이자 싱글맘으로 주류에 진입해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여자. 그에게 현실은 얼마나 무서운 것이겠나. 다른 이야기인데, 성장하고 성취해내는 드라마에서는 사회적으로 핸디캡이 있다는 점에서 남성보다 여성 캐릭터가 이야기를 풀어내기 적합한 것 같다. 그리고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단편 <달이 기울면>(2013)으로 박찬욱감독특별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정소영 감독과 <신구간>(가제)도 기획중이다.

최은화_ 나는 현재 <죄와 벌>이라는 사적 복수를 다룬 장르영화를 기획 중인데, 많은 스릴러들이 그렇듯 여성이 단순한 희생양 이미지에 그려지지 않게 하려고 경계한다.

제정주_ 지금 기획 중인 영화는 60대의 퇴직한 여성 교사가 주인공인 스릴러 드라마다. 투자사를 만나보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60대 여성이 주인공인 여자를 누가 보냐”는 건데, 이 이야기는 여러 경험이 있는 여성의 시각으로 봐야만 하는 이야기고, 그렇게 만들어낼 거다. <우리들> 이후에도 만드는 영화의 대부분이 어린아이거나 여성들, 사회적 약자들이라 이게 영화사 아토의 정체성이 된 것 같다. (웃음)

심재명_ 명필름 영화학교에서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박화영>이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다. 개성적이고 다소 파격적인 설정의 여성 주인공, 박화영이 주인공이다. 여성이 만드는 여성 캐릭터와 남성이 만드는 여성 캐릭터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남성감독이라 그 선을 좁혀나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제작자로서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가 왜곡되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하고, 언제나 여성 제작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 영화 밖에서도 여성 영화인들과 일하고 싶고, 그들을 더 많이 밀어주고 싶다. 여성들은 아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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