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괜찮은 삶이 올 거라 믿(고 싶)었다. 스무살 언저리,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소진했고, 다음날이면 그렇게 만들어진 과거 때문에 허우적댔다. 스펙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기 이전이었으므로 스펙을 쌓을 생각은 못했고 개방형 외톨이답게 극장이나 전시회장을 홀로 기웃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슬로모션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채우기에 남의 인생만 한 것은 없다. 그날은 종일 낮잠을 잤고 다 저녁에 일어나 밥을 먹고 또 좀 누워 있다가 빌려둔 비디오를 봤다. 장만옥과 여명이 나오는 영화였다. 본토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촌년’ 이요(장만옥)는 망하고 싶지 않아서 정말이지, 열일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영어학원 사기 모객, 주식. 그리고 절대 같은 ‘촌놈’인 여소군(여명)과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일까지 해냈다. 그녀는 사랑 따위 때문에 인생을 망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이요와 여소군은 잘 어울리는 한쌍이지만 누가 봐도 여소군은 이요에게 현실적으로 부족한 남자였다. 실제로 이요가 쫄딱 망해서 마사지사로 전락했을 때도 여소군은 복장 뒤집기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예쁜 여자라는 종족은, 심지어 그 예쁨 외에 다른 무기는 없을 때 다른 세계의 남자와 사랑을 꿈꾼다. 때로 성격이나 취향이라는 좀더 두루뭉술한 기준이 보태지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그게 그거다. 그렇게 이요가 마사지 고객인 미키마우스 아저씨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역시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를 사랑하는 것 외에 도무지 다른 방법이 없을 때도 사랑은 시작되는 거니까.
여자에게 다른 세계로 이끌어줄 남자가 판타지라면, 남자에게는 첫사랑이 판타지다. 남자는 반드시 성공해서 첫사랑에게 보란 듯이 ‘컴백’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요는 여소군을 자신의 세계에 들여놓을 마음이 없었고 순수청년 여소군은 이요를 사랑하면서도 고향의 애인을 끊임없이 상기했다. 둘은 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사랑을 참았다. 각자의 기준으로 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이들이 깜빡한 것이 있다. 삶이 한번뿐이라는 것. 시간은 끝없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이다. 망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삶도 망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누워서 플레이 버튼을 눌렀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다른 자세였던 것 같다. 미키마우스 아저씨가 죽고, 심지어 그를 정말 사랑하게 되어 더 슬퍼진 이요를 보면서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낮의 나는 언제나 로맨스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밤의 나는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밤의 영화는 그런 생각을 더욱 굳혀주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영화를 본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이요의 사랑보다 이요의 삶에 대한 집념에 더 감동해서일까. 지금이라면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그때는 이요처럼 살고 싶었다.
먼저 구인광고를 찾아 전화를 했다. 마사지 업소였다. “마사지 배우고 싶어서 전화드렸는데요.” 돌아온 대답은 “때밀이도 같이 배워야 한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때를 미는 일은 좀 염려가 되었다. 때가 더러워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벌거벗은 몸에 손을 대야 한다는 점이 더 그랬다. 그 후 이요가 했던 일은 나 역시 거의 해본 것 같다. 홍콩에도, 뉴욕에도 갔고, 또 다른 나라에서는 꽤 오래 살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종종 <첨밀밀>(1996)의 여소군과 이요의 대사를 떠올린다.
우리는 실패했어. 그래 우리는 실패했지.
그들도 나도 그때는 삶이 망함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내가 매일 망해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이상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망해봐야 아는 게 인생이고 사랑이니까.
이지 소설가.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2016년 중앙장편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는 <담배를 든 루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