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국가의 붕괴된 시스템이란 스크린 밖에 있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판도라>
2016-12-07
글 : 이예지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마을 월촌리, 원자력발전소 직원 재혁(김남길),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 석 여사(김영애), 남편을 잃은 형수 정혜(문정희)와 조카, 여자친구 연주(김주현)는 소박하지만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반도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고, 노후됐지만 제대로 정비된 적 없던 원자력발전소는 폭발하기에 이른다. 정부가 언론과 시민들에게 이 사실을 감추려고만 하는 사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은 일대 혼란을 겪는다.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는 아수라장 속에서 원자력발전소장 평섭(정진영)과 재혁, 길섭(김대명)을 비롯한 발전소 직원들은 2차 폭발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재난에 가까운 이 시국이 스크린에 옮겨진다면 어떤 모습일지 누구나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판도라>는 그에 대한 가까운 답을 보여주는 영화다. 부패와 무능으로 재난을 초래하고 국민 안전보다 국정 안정을 앞세우며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부와 속수무책으로 희생당하는 국민들의 모습에선 한국의 현주소가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판도라>는 고전적인 전략을 택한다. 가족애를 동력원으로 움직이는 소시민적 영웅이 등장하고, 개인의 희생만이 시스템의 재난을 가까스로 막는다. 이야기의 전형성이나 완성도에 있어선 아쉬움이 남는다. 이 시국이 아니었더라도 영화가 이 정도의 무게감으로 다가 왔을지도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지만, 신파라는 말로 가볍게 단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지금 우리가 현실에서 목도한 비극들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이고 국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며, ‘탈조선’을 꿈꾸기도 하는 시니컬한 재혁이 위기 속에서 영웅이 되는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현 청년시대를 대변하는 모습인 그가 영웅이 되는 과정은 갱생의 영웅담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으로 그려진다. 현실적인 영웅이지만, 이 역시도 영화적 판타지다. 개인의 영웅적 행위 내지는 희생으로 막을 수 없는 시스템의 붕괴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스크린 밖에 있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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