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진심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봐야 할까? 소설 <녹색광선>의 주인공 헬레나 캠벨에게는 생각한 바가 있었다. 하일랜드(스코틀랜드 고지대) 지방의 전설에 따르면, 녹색광선은 그것을 본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의 감정 속에서 더이상 속지 않게 해주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가 사망한 뒤 두 독신 삼촌의 손에서 애지중지 키워진 헬레나는 결혼 전에 이 녹색광선을 보겠다고 마음먹는다. 조카의 결혼이 이제 유일한 목표인 두 삼촌은 자신들의 기준에 부합하는 젊은 학자(이름이 아리스토불러스 어시클로스인데, 이름만 봐도 쥘 베른이 이 남자를 신랑감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를 신랑감으로 점찍고는, 녹색광선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수평선으로 해가 질 때, 기상 상황에 따라 잠깐 스쳐간다는 녹색광선을 찾아서. 어딘가에서 들어본 이야기 같은가?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에 이 소설이 언급되고, 주인공 델핀은 녹색광선을 보기 위해 바다 앞에서 해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쥘 베른은 31살 때 가족과 스코틀랜드 여행을 갔다. 그곳은 그의 어머니의 고향이었다. 그 경험이 <녹색광선>에 녹아 있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 중 하나는 하일랜드가 소설 내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일랜드 여행을 갔다가 하루에 무지개를 일곱번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이다. 아름다운 성들과 수많은 호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요정과 마녀, 유령, 그리고 맥 어쩌고 부족과 맥 어쩌고 부족(이름이 ‘맥’으로 시작하면, 후손이라는 뜻으로, 맥도널드라면 도널드의 씨족이 된다)의 전투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헬레나가 두 삼촌과 함께 스코틀랜드의 해변가를 따라 여행하는 <녹색광선>을 읽으며,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 풍경 속에 언제까지고 있기를. 어쨌거나 여행 중반에 아리스토불러스 어시클로스가 합류해 온갖 것에 아는척을 하며 간섭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일행 올리비에 싱클레어가 추가된다. 어시클로스는 이 남자에 대한 경계심을 곧 늦춘다. 이 젊은이가 헬레나 가까이에 항상 붙어 있고, 그녀는 그에게 다정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둘이 서로에게 딱히 호감이 있어서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현명한 독자는 누가 헬레나의 짝이 될지 짐작하고 있을 테지만.
헬레나는 녹색광선을 보게 될까? 그런데 결혼을 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상대의 진심을 알고자 한다면 정말 봐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녹색광선>의 결말은 신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결국 알고자 노력한 자가 봐야 할 것을 보고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ps. 소설 <녹색광선>은 독립출판으로 선을 보였다. 책을 구하려는 분들은 독립출판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을 방문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