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에곤 실레는 짧은 생을 예술로 불태웠다. 오스트리아 빈 예술아카데미에 최연소 입학 허가를 받으며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지만 학교를 벗어나 자기만의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다. 28살에 눈을 감기 전까지 자화상을 비롯해 인물화를 주로 그렸으며, 그가 남긴 작품 수만 2500여점에 이른다. 에곤 실레가 즐겨 그린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나체의 인물화는 고통스런 세계와 성적 욕망을 담아낸 결과물이었다. 에곤 실레의 전기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그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끼친 네명의 여성을 통해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에 접근한다.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던 에곤(노아 자베드라)은 여동생 게르티(마레지 리크너)와 각별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동생의 그림을 그리곤 했다. 늘 그림의 모델이 되어줄 존재가 필요했던 에곤은 나체의 배우들이 명화 속 한 장면을 연기하는 공연을 보러 갔다가 그곳에서 매력적인 댄서이자 모델인 모아 만두(라리사 에이미 브라이드바흐)를 만난다. 모아가 떠난 이후엔 구스타프 클림트의 소개로 모델 발리 노이질(발레리 파흐너)을 만난다. 발리 노이질은 훗날 에곤 실레의 걸작 <죽음과 소녀>의 모델이 되는 인물로, 에곤 실레가 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끝없는 사랑을 베푼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에곤 실레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발리가 아닌 부잣집 여성 에디트 하름스(마리 융)와 결혼한다.
영화의 원작은 힐데 베르거의 <죽음과 소녀: 에곤 실레와 여자들>이다. 책의 제목에서 유추 가능하듯, 영화는 <죽음과 소녀>의 모델인 발리 노이질과의 사랑을 중요하게 다룬다. 에곤 실레가 미성년자의 누드화로 곤욕을 겪고 재판을 받게 될 때 그를 지지해준 사람도 발리 노이질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에곤 실레는 위대한 예술가였지 결코 착한 남자는 아니었다.
그에겐 무엇보다도 예술이 우선했다. 영화는 그런 에곤 실레를 두둔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에곤 실레의 예술 세계에 대한 해석은 시도하되 섣불리 도덕적 판단은 내리지 않는다. 그것이 이 영화의 큰 성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