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사발이라 불리는 아이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올 때는 분명 이름이 있었겠지만 누구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졸업할 무렵엔 아무도 본명을 기억하지 못하던 그 애는 묵사발처럼 생겼다… 미안하다, 알아봐서. 어쨌든 우리에게 묵사발이란 “얻어맞거나 하여 얼굴 따위가 형편없이 깨지고 뭉개진 상태를 속되게 이르는 말”, 다시 말해 못생겼다기보다는 다소 정돈이 안 된 상태를 뜻하는 단어였다. 그러니까, 묵사발은 어딘지 재미있는 얼굴이었다.
묵사발과 식구들도 그 애칭을 싫어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집에 전화를 걸었다가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안녕하세요? 사발이네 집이죠? 사발이 집에 있어요?”라고 묻곤 했는데, 그 애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 없이 “사발아! 전화 왔다!” 하며 딸을 불러주었다.
그처럼 얼굴은 엉망이지만 세상 즐겁기만 했던 묵사발에게 불행이 닥친 건 대학에 입학한 다음이었다. 사발이는 음대에 갔던 것이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났을 무렵, 동기 40명중에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사람은 3명뿐이었는데, 둘은 남자였고 하나는 사발이였다, 음악과 성형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묵사발은 서러웠다. (대학에서 별명은 포청천이었다.) 나도 얼굴 고칠 거라고 우겼다. 너는 못생긴 게 아니라 재미있게 생겼을 뿐이며 아직 살이 빠지지 않았으니 수술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살 좀 빠진 다음 지반 변화를 보고 하자고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그럴 수밖에, 사발이는 이미 성형외과에 다녀왔던 것이다. 시험 삼아 쌍꺼풀이나 만들어볼까 하고 진료실에 들어간 묵사발을 보자마자 의사는 말했다. “코 하러 왔죠?” 묵사발은 코하고 광대뼈 높이가 같았다, 근데 광대뼈가 거의 없음. 울컥한 묵사발은 결국 눈과 코 수술을 동시에 감행했고… 그냥 성형한 묵사발이 되었다. 성형 미인은 되지 못했어, 우리 사발이는 그냥 성형인.
이런 시국에 수술을 능가하는 시술의 효과에나 관심이 가던 나는 우유주사가 그렇게 좋은 건가, 요즘 잔주름 생기고 피부가 건조한데 나도 우유 주사, 아니면 마늘… 이러다가 나 같은 인간이 한둘이 아니었던지 바로 다음날 우유 주사 함부로 맞으면 안 된다는 기사가 신문에 나와 매우 부끄럽던 찰나, 묵사발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사이 아시아 최고의 성형 강국으로 부상한 창조 한국에서 우리 사발이는 미간에 필러 넣고 사각턱도 깎으면서 진정한 성형 미인의 길로 가고 있을까, 성형인을 넘어 성형 미인이 되기 위한 도(道)란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예쁜 여자투성이 세상에 태어나 성형을 하지 않으면 취직이 안 돼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영화 <성형일기>의 궈징(바이바이허)을 (못생겼다며 변두리에 배치한 사무실에서 궈징이 제일 예쁘다는 사실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대륙 영화의 패기) 보며 나는 그래도 묵사발이 행복했지 싶었다. 사발이의 세상에는 우리가 있었으니까. 봐, 얼마나 안 예뻐? 그래도 코는 있지만.
어쨌든 한국인 성형외과 의사 김씨가 등장하며 창조 한국의 국위를 유감없이 선양하는 <성형일기>에 의하면 “남자는 성공적인 옷차림, 여자는 성공적인 성형”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남자는 평생 돈 쓰고 여자는 한번 쓴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한번으로 끝날 거라면 성형외과에 회원제가 왜 있겠어, 계속 오라고 있는 거지.
일단 시작한 성형은 도중에 멈출 수 없다. <죽어야 사는 여자>의 뮤지컬 배우 매들린(메릴 스트립)은 성형에 성형을 거듭하다가 재료비만 내면 평생 성형이 보장되는 길을 찾아 성형외과 의사인 친구 약혼자(브루스 윌리스)를 빼앗아 결혼한다. 하지만 착한 애인 버리고 못돼 처먹은 여자한테 눈이 멀어 결혼한 성형외과 의사가 죄책감에 술만 마시다 장의사가 될 줄은 몰랐으니…. 한번 하고 나면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수술을 3주 만에 다시 받으려고 20대 의사에게 애걸하는 처지가 된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성형을 멈출 수 있는 걸까? 전신 성형 한번으로 평생 성형 걱정을 버린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김아중) 정도 된다면 회원 가입 안 해도 될 거 같지만, 얘도 나이 먹어서 주름 생기면 보톡스 맞으러 갈걸. 나도 아침마다 주름 세면서 마늘이나 우유 주사… 는 안 되겠지. 혹은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면 성형을 포기할 수 있을까? <시간>의 지우(하정우)는 성형한 애인도 몰라보고 좋아한 주제에 남의 애인 얼굴 마음대로 뜯어고치면 어떡하냐며 애꿎은 성형외과 의사한테 행패를 부리다가 말한다, “우리 세희 얼마나 예뻤어요? 자연스럽고.” 이봐, 우리 사발이는 자연이 주신 얼굴이 부자연스러워. 맨 얼굴이 제일 예쁘다던 내 남자친구도 내가 화장품 싼 걸로 바꾸고 피부 푸석푸석해지니까 홈쇼핑으로 물건 사지 말라더라.
하지만 완벽한 미인이 되어 성형에서 벗어나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미녀는 괴로워>의 신의 (神醫) 이 박사(이한위) 말씀하시기를, “미녀는 애티튜드” .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스스로 미인이라 믿고 행동하면 쓸데없이 시술받다가 얼굴에 멍이 들어서 10년 전 주름 안 편 사진까지 발굴되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패러디 시리즈가 만들어지는 굴욕은 당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태도를 고치고 미인 되시기를, 미녀는 애티튜드.
우리는 알고 남들은 모르게
성형 미인으로 향하는 가시밭길에서 삼가면 좋을 두세 가지 것들
내 성형을 남들이 알게 하지 말라
<성형일기>의 성형외과 상담실장은 말한다. “최고의 성형은 우리는 알고 남들은 모르는 거예요.” 친구와 선배의 소개팅을 주선한 몇주 뒤에 친구가 씩씩대면서 전화를 했다. “너, 내가 코 높였다고 말했어?” 술 취한 선배가 그 애 코를 쥐고 흔들면서 성형해서 휘어지지도 않을 줄 알았더니 아니라며 놀리더라는 거였다. “… 그게 높인 코였어?” 난 몰랐지, 충분히 낮던데. 절교당할 뻔했다. 너의 성형은 남들은 알고 우리만 모르는구나.
증거를 남기지 말라
<재밌는 영화>의 상미(김정은)는 대한민국 여성 중 어느 정도 레벨에 해당하는 미모일까? 박경림과 이영애 사이 어딘가다. 박경림 얼굴로 이영애 사진 들고 가서 이렇게 고쳐달라고 했는데 되다 말았거든. 사실 성형 전후 사진만큼 뿌듯한 것도 없다. 내가 좀 알지, 성형수술은 안 해봤지만 두피 관리 전후 사진이 있다고. 새누리당 경선 시절부터 최근까지 대통령 사진을 보면서 어딘가 낯익은 포맷이다 싶었는데, 성형외과 비포, 애프터 사진이었다. 이러다가 고xx 크림, 이xx 마스크팩처럼 대통령 주사도 나오는 게 아닐까.
맷집 없는 자, 도전하지 말라
<신데렐라>에서 진정한 페이스오프를 이루는 성형외과집 딸 현수(신세경)에 의하면, 예뻐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 얼굴에 펜으로 절개선 그려놓은 것만 봐도 나는 안 되겠더라, 그냥 자연이 주신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살겠어. 나는 몸에 딱 한번 칼을, 아니 바늘을 댄 적이 있다. 가로 1cm, 세로 3cm가량의 문신을 새길 때였는데 문신사가 자기 전에 꼭 술 많이 마시고 자라 그랬다, 안 그러면 아파서 못 잔다고. 그래도 새벽에 깨서 퉁퉁 부은 손을 부여잡고 울었다고. 그러니까 이해는 한다, 수면제가 필요했을 거야,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