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읽은 시나리오 중 최고로 재밌었다.” 차태현이 <사랑하기 때문에>에 출연을 결심했다는 이유다. 친형인 차지현 대표의 제작사 AD406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이후 오랜만에 손잡은 작품. “형의 제작사라고 해서 출연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오해를 받을까봐 더 거리를 두려고 하는데 <사랑하기 때문에>는 시나리오를 당시에 정말 재밌게 읽어서 미리부터 출연을 점찍어둔 거였다.” 마음이 가벼워진 덕이었을까. <사랑하기 때문에>의 이형은 <엽기적인 그녀2>(2016)로 인생 캐릭터인 ‘견우’를 온전히 털어낸 차태현이 그 이후 처음 맡은 역할 이다.
이형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 알 수 없는 규칙을 따라 여러 신체를 전전하게 된다. 난데없이 여고생이 되었다가, 피곤에 찌든 중년 형사가 되었다가, 언제는 배 나온 교사도 되었다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에게로도 빙의한다. 규칙도 전조도 없는 이 빙의 릴레이가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지는 이형 자신도 모른다. 이형은 속수무책으로 일단 최선을 다해 자신이 빙의한 신체로 살아간다. 얼핏 <헬로우 고스트>(2010)의 귀신 붙은 남자 상만이 연상되기도 한다. “나 또한 관객이 쉽게 <과속스캔들>(2008)과 <헬로우 고스트>를 떠올릴 것 같아 조금 고민했다. 그렇지만 역시 마음을 움직인 건 고 유재하의 노래였다. 노래로만 채울 수 있는 영화가 아닌 게 아쉬울 정도로.”
그의 말대로 영화에선 차태현의 ‘변신술’이 더 눈에 띈다. 그렇지만 정작 남의 몸을 전전하느라 차태현의 출연 분량은 많지 않다. 차태현으로서도 ‘차태현표 코미디’를 표방하며 차태현이 가장 덜 나오는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모험”이었을 터. “한 영혼에 몸이 여러 개인 연기를 하니 당연히 내가 나오는 것보단 각 인물을 맡은 배우가 돋보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다행인 건 배우들이 다들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이라 딱히 혼란스러울 것 같진 않다는 거다. “(성)동일이 형, (배)성우 형, 선우용녀 선생님이 ‘차태현’을 연기하셔야 하는데 내가 그분들께 뭘 가르칠 만한 입장은 아니잖나. 형들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선우용녀 선생님은 포인트를 잘 캐치하셔서 노련하게 잘 흉내내주시더라. 어떤 연예인도 내 성대모사를 한 적이 없는데 그만큼 내가 특색이 없다는 거다. (웃음) 따라하기 정말 힘드셨을 거다.” 웃음은 디폴트. 관객은 그저 누가, 어떤 포인트를 더 효과적으로 잡아챘는지만 눈여겨보면 될 것 같다.
여전히 영화 <신과 함께>, 예능 <1박2일> 촬영 등으로 바쁜 연말을 보내는 중이라고.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장르에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큰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고? … 또 그렇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고. (웃음) 어쨌건 이런 아무것도 없는 현장은 처음 들어가본다. 드라마 <전우치>(2012) 때도 매달리고 장풍 쏜 적이 많아서, 그런 거 보여드리면 김용화 감독님은 ‘이야~ 태현씨 너무 잘한다~’ 띄워주고 난 또 ‘제가 이런 건 전문이죠’라고 응수하고. 뭘 얼마나 해봤다고. (웃음) 하정우도 저 뒤에서 아무것도 없는 데 대고 세상 진지하게 칼 쓰는 거 연습하고 있다. (웃음) 뻔뻔하게 해야 덜 민망하다. 유튜브에 할리우드 배우들의 메이킹 영상만 봐도 웃기잖나. 그런데 그게 배우의 사명감이다. 감독님께서 편집본 보여주실 땐 CG 뼈대를 얹은 상태로 보여주시는데 이야~ 그렇게 재밌고 신기할 수가 없다.” 하지만 <신과 함께>도 한참을 기다려야 볼 수 있고 그 뒤로는 미정이다. “이렇게 차기작을 미리 정해두지 않은 적도 없었다”는 스타에게 간만의 휴식이 오히려 낯설어 보인다. “어릴 땐 스타가 되고, 주연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다. 평생 연기하며 살면 좋겠다는 건 마지막 꿈이다. 이미 다른 목표는 거의 다 이뤄서 특별히 큰 꿈이 있진 않지만 매번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이 작품이 정말 잘되기를 빌며 최선을 다하는 것. 그건 늘 똑같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