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이사장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이빙벨> 상영 강행에서 비롯된 부산영화제 탄압 사태와 일련의 김동호 이사장 행적,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 파탄의 정황과 단서 등을 두루 모아보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동호 이사장 등장과 정관 개정의 허상은 명확하게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당시 김동호가 적임자라는 ‘추천 또는 권유’에는 세 가지 전제조건이 붙어 있었다. 1)부산시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2)검찰에 고발된 집행위원장 명예회복을 위한 가시적인 조치 이행, 3)정관 개정 전권 위임 등 세 가지 요구사항을 조건으로 건 등판 요청이었다. 그러나 김동호 이사장은 이런 요청을 ‘조직위원장 수락 여부는 개인의 거취 문제’라며 일축하고, 정관을 개정하고 영화인들을 설득해 정상화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직접 만나 간청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물론 보이콧을 배수진으로 부산시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던 영화계는 엉겁결에 줄을 놓쳐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부산영화제의 집행부도 일사불란하게 김동호 체제에 발을 맞췄다. 정관 개정도 독립성과 자율성이라는 슬로건에 묶여 의결권 5:5 확보가 절대 과업인 양 매달렸다. 개정한 정관을 놓고도 의결권을 가진 총회 회원의 5:5를 확보했으며, 위촉한 이사의 면면을 들먹이며 대다수 ‘아군’이니 부산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역설했다. 액면 그대로 이해했다면 참으로 순진한 것이고, 그 이면이나 함정을 알면서도 그런 억지로 포장을 한 것이라면 악의적이다.
영화제의 실질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은 중장기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운영조직의 쇄신과 정비가 관건이고, 이를 정관으로 구현해야 한다. 1)영화제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회원을 대폭 늘려 대중조직을 지향, 2)영화제 운영의 실무 전반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을 두고, 집행위원장은 대외협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체계 개편, 3)상임집행위원회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해 영화제 운영의 효율과 견제 기능 보완 등이 골자인, 당시 준비해두었던 정관 개정안은 꺼내지도 않았다. 무너진 부산영화제를 추스르고 앞으로 20년을 열어갈 청사진은 온데간데없고 부산시와 지분 싸움만 하다가 어물쩍 봉합한 뒤탈이 지난해 영화제처럼 혹독했다. 부산영화제 정상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합리적인 의심’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