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 생태계의 붕괴, 그 전조는 어디서부터였을까. 1월1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7년-그들이 없는 언론>(2016)이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자료일 것이다. 영화는 2008년 YTN 언론노조와 2012년 MBC 언론노조가 정부의 ‘낙하산 사장’ 선임에 반대하며 시작한 싸움의 과정을 기록했다. 이 투쟁 끝에 언론인들은 해직됐고 중징계를 받았다. 다른 한편에선 언론이 스스로 정권 앞으로 가 머리를 조아리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언론을 ‘기레기’라 부르기 시작한 때도 이 무렵부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언론인들이 있다.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 해직 언론인들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 EBS 프로듀서였던 김진혁 감독이 이 영화를 연출했다. 감독과 함께 해직 언론인으로서 영화에 출연한 <뉴스타파>의 최승호 감독을 한자리에 초대했다. 지난해 최승호 감독은 국정원의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자백>(2016)을 개봉한 바 있다. 공영방송과 언론이 제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하여 두 사람에게 물었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만 봐도 박근혜 정부가 언론, 특히 언론사의 사장 선임 과정과 ‘좌파 동향’ 파악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다. 언론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데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진 시점에 이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인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하 <7년>)이 개봉한다.
=최승호_ 개봉 시점을 참 잘 잡았다. 지금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현 체제를 갈아엎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려는 결의와 희망이 있는 시기가 아닌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나오던 때에 <한겨레>, JTBC, 심지어 TV조선까지 제 역할을 해줬기에 좀더 빠르게 실체를 밝혀나간 경향이 있다. 반대로 보면, 박근혜 정부 4년간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국정 농단의 무리 앞에서 언론이 눈을 감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권력에 아부하는 충성파들이 망쳐놓은 결과다.
=김진혁_ 각 방송사 내부의 부역자들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그러려면 그 반대편에서 그들에 맞서 싸운 이들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이 영화 속 해직 언론인들, 부당한 방식과 정부에 맞서 싸운 언론인들이야말로 부역자의 반대에 서 있던 분들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YTN 투쟁(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언론 특보였던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선임되는 데 반대하며 시작됐다.-편집자)이 계속되던 2014년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으로부터 <7년>의 영화화와 연출 제안을 받은 걸로 안다.
김진혁_ YTN 노조의 싸움이 계속되면서 해직 언론인들이 여러모로 침체돼 있었다(2008년 10월6일 YTN 언론인들은 6명 해고 포함 33명이 중징계를 받았다.-편집자). 언론노조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게 이례적인데 그만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했다. 노종면 선배(YTN 노조 투쟁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노종면 기자는 2008년 해고 통보를 받았다. 2014년 11월27일 대법원 최종심에서 해고 정당 판결을 받았다.-편집자)가 해직됐을 때 짧은 영상도 몇번 만든 적이 있어서 그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해낼 역량이 있어서 시작했다기보다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최승호_ 우리의 얘기다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공영언론의 몰락 과정과 그 안에서 방송인들이 겪은 아픔, 또 새로운 언론을 만들겠다고 싸우는 언론인들의 시도들이 영화에 담겼다. 많은 분들이 ‘JTBC가 있는데 KBS, MBC가 왜 필요하냐’며 냉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7년>은 공영방송을 바로 세우기 위해 당시부터 지금까지 아파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통해 언론의 제 기능에 대해 말하려 한다.
-<7년>은 2014년 11월27일 YTN 해직 무효소송 대법원 상고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로부터 2008년 YTN 노조 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가 시간순으로 언론 투쟁의 역사를 훑는 방식을 택했다. 충실한 언론 투쟁 역사 다큐멘터리에 방점을 찍었다.
김진혁_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땐 해직 언론인들이 해직 이후에 어떻게 살고 있나, 개개인의 역사를 담은 휴먼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이었다. 근데 YTN 노조가 투쟁 과정을 직접 기록한 엄청난 양의 영상물을 전해주더라. 영상을 보는데 화도 많이 나고 울기도 많이 울고. 이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잘 만들어두는 것으로도 <7년>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관객이 영화를 보며 해직 언론인들을 탄압한 자들, 해직을 당한 사람들, 언론사 내부에서 정권에 부역하는 자들을 구분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최승호_ 김진혁 감독이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아무런 자료가 없었다면 감독의 생각대로 만들었을 텐데. 게다가 2014년이면 노조의 싸움이 한창 치열했던 때도 지났다. 개개인의 삶의 무게를 담아 한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게 엄청난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김 감독이 약간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웃음)
김진혁_ 최 선배가 정곡을. (웃음) <7년>의 목적은 관객에게 ‘해직 언론인들에게 이런 일들이 있었다’고 알려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투쟁의 당사자들은 자신이 투쟁의 현장에 있었느냐 없었느냐, 자신이 공적으로 어떻게 기억될 것이냐가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편집상의 이유로 어떤 화면을 제외할 때조차 그 화면 안에서 투쟁하는 분들 중 누군가를 내가 지워버리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 과연 내게 그럴 자격이 있나. 결국 개개인의 사연보다는 YTN, MBC 등 노조 단위의 투쟁사를 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하에서 망가진 언론이 저지른 가장 치명적이고 비윤리적인 일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낸 일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KBS, MBC 등 여러 언론이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언론 윤리 부재 이상의 충격적인 언론 부패다.
최승호_ 정부가 내놓는 정보를 그냥 보도했다. 데스크의 간부급들이 자신이 언론 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권력에 빌붙어서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고 한다. 그러니 현장으로 기자를 빨리 보내 사실 여부를 검증할 필요가 없다. 목포 MBC 기자가 당시에 정부 발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4번이나 상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MBC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에 반하는 기사로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다. 만약 허위 보도였다는 게 밝혀져도 가장 ‘권위 있는’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를 따랐을 뿐이라고 하면 되니까. 얼마나 편한가. 자신들의 목줄을 잡고 있는 건 시청자가 아니라 청와대니까. 잘못된 보도가 대한민국 정부의 세월호 참사 대응 태도까지 바꿨다. 집중적으로 구조를 해야 할 시점에 다 구조했다고 하니까. 언론도 박근혜 대통령 못지않게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
김진혁_ 세월호 참사 발생 2주 전에 <7년>의 촬영을 시작했다. 참사 당일, 나도 뉴스를 듣고 전원 구조되는 줄 알았다. 오보라는 걸 알고 정말 충격이었다. 자연스레 <7년> 속 해직 언론인들과 같은 분들이 참사의 현장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공영방송이 붕괴된 상태에서 큰 재난이 벌어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확인한 것이다.
최승호_ MBC는 2012년 파업 이후 100여명을 쫓아냈다. 그 자리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들을 채워넣었으니 언론이 제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일 리가 없다. 현장 기자가 아무리 ‘사실은 그게 아니다’라고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스템이다.
김진혁_ 언론이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보를 내고도 참사 당일 오후 4시 넘어서까지도 계속 그 오보를 유지했다. 자체 스크리닝 기능이 없다는 게 정말 문제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의 메모를 보면 ‘YTN 해고자 복직 소송-대법선고-이후 동향’, ‘KBS 이인호 이사장 임명 동향 보고’, ‘세계일보 정윤회 문건 보도’에 대한 파악에 청와대가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문화융성’을 내걸었던 박근혜 정부가 한 일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탄압하고,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방식이었다.
김진혁_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보기에 지난 대선에서의 패배는 언론 때문이라는 게 컸다. 그중에서도 MBC, 그중에서도 <PD수첩>. 보수가 계속 집권하려면 MBC부터 없애야 했고 그에 대항한 종합편성채널을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문화를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봤으니까. 정권 홍보용이 아닌 문화는 필요 없다고 본 거다.
최승호_ 이명박 정권은 공영언론을 장악하고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하면서 언론 시스템을 바꿔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그걸 고스란히 이어받은 거고.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의 문화는 좌파를 척결한 문화를 말한다. 굉장히 퇴행적인 정권이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에 보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이념 전쟁 속에서 전사처럼 살아야 한다.’ 1970년대식 사고방식으로 세상 모든 걸 재단했으니 블랙리스트를 만들 수밖에.
-<자백>도 개봉 전 스토리펀딩을 통해 1만7천명이 넘는 후원자를 모았고 14만명 이상이 영화를 봤다. <7년> 역시 개봉 지원을 위한 소셜펀딩이 마감(1월5일) 이틀 전에 목표액 7천만원을 돌파했다. 저널리즘에 기반한 다큐멘터리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진 상태다.
최승호_ 다큐멘터리로 투자를 크게 받는 건 불가능하다. 많은 분들이 펀딩에 참여함으로써 멀티플렉스를 압박할 수 있다. ‘영화를 보겠다고 기다리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데 관을 안 열 생각이냐’고 물을 수 있게 된 거다. 사회성 짙은 작품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지금의 왜곡된 시장 구조를 바로잡는 데 일조할 거라 본다. 나는 <자백>은 ‘언론의 몰락에서 탄생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만약 공영방송 시스템에서 <자백>과 같은 내용을 다룰 수 있었다면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를 찾지 않았을 거다. 망가진 언론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을 다큐멘터리영화에서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의 욕망이 분명히 있다.
김진혁_ 언론 현실을 보면 채널도, 플랫폼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공영방송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제 역할을 하는 공영방송과 함께 다양한 매체들이 생겨나는 게 맞다고 본다.
-언론사 내 부역자들을 청산하고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시도들이 필요할까.
김진혁_ 사장 선임 구조를 개선해 정권의 부침에 상관없이 시민의 의지, 의사가 반영된 사장이 오는 게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승호_ 동시에 편집권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들을 둬야 한다. 편성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해 공영방송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임원진을 권력으로부터, 편집권을 그 임원진으로부터 또 한번 독립시키는 이중의 장치가 필요하다.
-조기 대선 등 상당한 정치적 변동이 예고된 2017년이다. 언론인으로서 어떤 계획들을 구상하고 있나.
최승호_ <뉴스타파>를 통해 시민들이 원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고 싶다. <자백> 이후 새로운 취재 거리를 찾고 있다.
김진혁_ 올해는 꼭 해직 언론인들이 복직돼야 한다. 더이상 해직 언론인이 생기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7년>을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야겠다.
-방송사 프로듀서로서가 아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다음 작품 계획도 세운 건가.
김진혁_ 아직도 극장 개봉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얼떨떨할 뿐. 잘 모르겠다.
최승호_ <자백>으로 무대인사와 관객과의 대화 등 거의 150여회 넘게 관객들과 직접 만났다. 그 과정에서 관객과 이야기하고 나눈 마음이 얼마나 큰지. 영화가 주는 여운이 상당히 강렬하고 오래간다. 김 감독도 <7년> 개봉하고 관객과도 만나보고 다 지난 뒤에야 알 수 있을 거다. <뉴스타파>에서 준비하는 영화?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님들과 <뉴스타파>가 공동연출하는 세월호 관련 영화 한편이 있다. 참사의 실종자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공개할지 여부를 두고 이견이 있어서 아직은 어떻게 풀릴지 좀더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