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씨네스코프]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초행>(가제) 촬영현장
2017-01-12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1. 독립영화계의 주요 작품들을 두루 거쳐온 배우 조현철과 김새벽(왼쪽부터). 그래서 당연히 한번쯤은 호흡을 맞췄을 거라 생각했건만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카메라가 돌아가자 이내 오래된 연인의 무심한 듯 편안한 표정과 말투가 된다. 이사 가는 날 아침, 두 사람은 침대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버티기 중이다. 이삿짐 트럭이 올지도 모른다며 마음은 바쁜데, 침대 밖으로 나가면 이제 정말 ‘현실’과 맞서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더 자도 될까? 응? 응?”이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2. ‘임신이라니!’ 지영은 확인하고야 말았다. 일도, 연애도, 이사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인데 예기치 못한 소식까지. 짜증과 무서움, 난감함이 뒤섞인 지영의 얼굴이다.

3. 이삿짐을 다 빼고 텅텅 빈 집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는 수현.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챙겨 집을 나서다 말고 그림 하나를 물끄러미 본다. 오랜 추억이 서린 공간에 작별의 선물로 두고 갈 모양이다. 조현철은 “수현은 예민하고 사랑스러운, 아이 같은 사람”이라 했는데 그런 수현이 지영과의, 가족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까.

4. 모니터를 보는 김대환 감독과 그 너머로 보이는 <춘천, 춘천>의 장우진 감독. 장 감독은 <초행>(가제)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알고보니 두 사람은 고향인 춘천에서 중학교 시절 동네 비디오 대여점을 오가다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 사이다. 춘천의 봄내 지역에서 이름을 따 제작사 봄내필름을 차리고 공동대표가 됐다. 두 사람의 협업은 계속될 예정.

2016년 12월18일 오전 11시 서울 은평구의 오래된 빌라에서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초행>(가제)의 14회차 촬영이 시작됐다. 이불 속에 누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려는 수현(조현철)과 지영(김새벽). 이들은 2년간 동거하며 살아온 이 낡은 공간마저 곧 비워줘야 한다. 주인이 집세를 올리는 바람에 여기보다 더 변두리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됐다. 미술 강사인 수현과 계약직 회사원인 지영에게는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러니까 어서 빨리 이불을 박차고 나가 널브러져 있는 이삿짐들을 챙겨야 할 텐데.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꼼짝도 하고 싶지 않다. 이사가 대수인가. 이들은 지금 인생의 골칫거리, 인생의 위기 앞에 섰다. 연애 7년차이기도 한 수현과 지영은 얼마 전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결혼이라는 현실의 문 앞에 떠밀려 가게 된 것이다. 양가가 있는 인천과 삼척을 왔다갔다 하게 된 두 사람은 자연스레 두 집안의 속사정을 목격한다. 이제부터 가족간의 불협화음은 계속될 것 같다. 수현과 지영에게는 이 모든 게 ‘초행’이다.

김대환 감독은 데뷔작 <철원기행>(2014)에 이어 <초행>에서 또 한번 ‘행(行)의 영화’를 만드는 걸까. 영화 속 인물들이 행하는 곳은 하나같이 가족들이 있는 곳이다. 한때는 같이 살았을 가족이지만 물리적으로 떨어져 살게 되면서 자연스레 감정적으로도 거리감이 생기게 됐을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를 잘 모르게 된 가족들이 다시 한곳에 모이게 되는 여정의 이야기다. 김대환 감독은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가족 안의 감정 기복을 들여보는 게 흥미롭다. 공간에 대한 관심도 크다. <철원기행> 때는 철원을, 이번엔 해가 뜨는 삼척과 해가 지는 인천을 대비해 보여주고 싶었다.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낯선 일이고. 길을 헤매는 듯할 테니.” <초행>은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프로젝트로 제작되는 작품이다. 4월27일 개막하는 영화제를 통해 그들의 초행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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