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간 개인적인 가장 큰 변화라면, TV 코미디 프로그램을 안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적잖이 놀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단적으로 말해 <개그콘서트>을 한번도 안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일요일 본방사수를 했고 사정상 못 보게 되면 무조건 다시보기로 봤다. 그건 타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웃찾사> <개그야>를 매주 한번도 빼놓고 지나친 적이 없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말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부터 모든 코미디 프로그램을 다 VHS 테이프로 녹화해 보관하셨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웃으면 복이 와요>를 비롯해 <유머1번지>와 <쇼 비디오자키>도 무조건 다 봤던 것 같다. 뭘 그렇게 한주도 안 빠지고 다 보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는데, 문득 돌이켜보니 거의 30년 넘게 그냥 몸에 배어 그렇게 살아왔고, 삶의 중요한 낙 중 하나였다.
그런데 장동민, 유상무 때문에 <코미디빅리그>를 안 보기 시작하고 <개그콘서트>에서도 적잖이 거슬리는 여성 혐오 요소들을 접하게 되면서 정이 떨어진 측면이 컸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 또한 무심히 드러낸 그런 잘못들이 없을까 생각하고 조심하게 됐다.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사람들은 이런 글을 쓰는 나를 향해 비양심적이고 몰염치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끊임없이 돌아보고 있고, 그 모든 게 지난 1년의 변화다. 아무튼 한 코미디 프로그램 안에도 여러 개의 코너와 수십명의 개그맨들이 있기에 전체를 싸잡아서 말하면 안 되고, 매번 그 이상으로 훌륭한 코너가 혜성처럼 등장하기도 하며, 또 언제나 열심히 시청자들의 웃음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개그맨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죄송하기도 하다. 하지만 뭐랄까, 거짓말처럼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됐고 다시는 그때의 나로 돌아갈 길은 없을 것 같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 전과 후의 자신이 달라진 점에 대해 의식적으로 표명하는 모습들을 보고(여자, 남자 할 것 없이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뭐가 있나 싶어 몇자 써봤다. 마찬가지로 감히 얼마 안 된 편집장으로서 <씨네21>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도 생각해봤고, 젠더 이슈에 관한 한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연속 기획도 진행해왔다. 그 첫 번째 중간 결산의 자리가 바로 1월16일(월)에 열리는 한국여성민우회와의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토론회다. 우리가 생각하는 핵심은 단 하나다. 영화현장에서 감독과 배우간에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범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즉흥성과 현장성이라는 말로 포장되어왔던 범죄를 이제는 감독의 역량이나 기민한 연출력, 그리고 배우의 융통성이니 통 큰 결단력이니 하는 말로 퉁치지 말자는 것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경우에서 봤던 것처럼 배우에게 아무런 고지도 하지 않은 채, 이른바 사실적인 연기를 뽑아내기 위해 행했던 그 모든 과오를 뉘우쳐야 한다. 이제는 그것이 범죄다, 라는 인식을 영화계에 확산시키고 자리잡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호 영화계 내 성폭력 대담에서 영화산업노조 안병호 위원장이 했던 얘기가 떠오른다. “오랜 영화의 역사를 돌아보면, 지난 100년간 영화만 생각했고 5년 동안 노동을 생각했고, 이제 막 젠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