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씨네21>과 한국여성민우회가 함께한 긴급포럼 ‘그건 연기가 아닌 성폭력입니다’
2017-01-25
글 : 이예지
사진 : 오계옥

긴급포럼 ‘그건 연기가 아닌 성폭력입니다’를 진행하는 1월16일 아침, <씨네21>과 한국여성민우회에는 한부의 내용증명이 날아들었다. 이번 포럼을 주최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된 남배우 A의 사례에 대해 언급할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씨네21>은 오직 해당 재판의 판결문을 근거로 하여 1088호 포커스 기사(#STOP_영화계_내_성폭력)를 작성했고 본 포럼을 공동주최했으며, 제보 창구를 열어둔 영화계 내 성폭력 사례에 대해 선별적으로 대응할 이유가 없다는 걸 본 기사를 통해 밝혀둔다. <씨네21>과 한국여성민우회가 함께 주최하고 가톨릭청소년회관 바실리오홀에서 진행된 이번 포럼은 140여명의 청중들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자리를 찾지 못한 청중들은 약 3시간 동안 서서 포럼을 경청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사회를 맡고, 정하경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소장이 이번 포럼을 열게 된 사건 개요를 설명했으며 조인섭 법무법인 신세계로 변호사가 법리적 해석을 발표했고, 손희정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연구원이 여성학적 해석을, <씨네21> 이예지 기자가 현장에서 합의되지 않은 연기가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사례 중심으로 발표했다. 여기에 <미씽: 사라진 여자>의 이언희 감독과 ‘찍는 페미’를 개설한 김꽃비 배우,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이 현장에서 여성배우들이 맞닥뜨리는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며, 동의 없는 노출 신이 포함된 무삭제 버전을 배포한 이수성 감독을 고소한 곽현화 배우도 참여해 사안의 문제점과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공감과 연대의 열기로 뜨거웠던 현장의 이야기를 전한다.

=정하경주_ 오늘 긴급포럼은 영화계 내 성폭력의 관행으로 묵인되어오던 현실을 드러내야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먼저 모 영화 촬영현장에서 남배우 A가 감독에게 별도의 디렉션을 받고 여배우 B와 합의되지 않은 연기를 했던 사건 개요를 이야기하겠다. 여배우 B의 진술에 따르면 남배우 A는 가정폭력이 벌어지는 신의 촬영현장에서 속옷을 찢는 등 합의되지 않는 수위의 연기를 했다. 여배우 B는 이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베드신이 없는 15세 관람가의 휴먼 드라마로 제안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신 촬영 전, 감독은 피해자에게 해당 신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설명했고, 상의 뒷부분 어깨쪽을 당겨 멍을 보여주는 연기를 하는 것으로 콘티를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증거로 제출된 메이킹필름 녹취록을 보면 촬영 직전 감독이 남배우 A에게는 해당 신에 대해 “그냥 미친놈처럼 옷을 확 찢어버려라, 죽기보다 싫게”라며 피해자를 강간하는 연기를 지시했고 남배우 A는 여배우 B와의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속옷을 찢고 사정하는 연기까지 했다. 이는 감독과 남배우 A가 피해자를 속이고 몰래카메라를 찍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촬영이 끝나고 여배우 B는 강제추행치상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강제추행치상으로 기소했고 5년 구형을 했지만, 2016년 12월 1심 법원은 피고인이 감독의 지시대로 배역에 몰입해 연기했고 이는 업무상 행위이므로 성폭력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무죄판결했다. 여배우 B는 항소했고 곧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연기라는 미명하에 여성배우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침해되는 일 없어야

=조인섭_ 판결에 대한 해석을 말씀드리자면, 이번 사건에서 1심은 불가피한 신체접촉만 있었을 뿐 가슴을 만지거나 속옷 안으로 손을 넣는 일은 없었으며, 설사 있었다고 해도 고의가 없고, 고의가 있었다고 해도 업무로 인한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것이 정당한 연기였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신이 어떻게 예정되어 있었으며 실제 촬영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당초 이 사건 영화는 15세 관람가 등급을 전제로 피해자를 캐스팅했으며, 시나리오와 콘티, 분장 지시 그 어디에도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없었으나 실제 촬영에서는 은근슬쩍 청소년 관람불가의 수위로 바뀌어버렸다. 이 사건 신과 관련하여 당시 감독은 “여배우의 가슴이 노출되는 상황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것이 솔직한 욕심이었다고 진술했는데, 실제 촬영된 장면은 감독의 지시도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감독은 난폭하게 행동하라고는 했어도 직접적으로 피해자의 가슴을 노출하라고 하거나 사정을 하는 연기까지 하라고 한 사실은 없다. 1심 판결에서는 추행은 없었다고 판단했지만, 만일 있었다고 한다면 피고인 입장에서는 그것이 감독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었으며 연기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행동에 고의가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승낙이 없었다면 그것은 미필적 고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의 주장과 같이 신체접촉이 실제로 있었다면 과실로 피해자에게 위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 아닌 이상 피고인에게 고의가 없었다는 판단은 부당하다. 한편 해당 판결은 마지막으로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가 업무로 인한 행위로서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피고인의 행위가 가벌성 있는 예술을 빙자한 추행인지 배역에 몰입한 연기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상대배우의 진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스토리, 감독이 해당 신을 구상한 의도, 감독의 지시 등 연기내용과 노출수위 등이 사전에 공유되었는지 등의 제반사정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건의 영화는 휴먼 드라마이며 감독이 해당 신을 구상한 의도는 피해자에게는 가정폭력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고, 해당 신의 시나리오, 콘티, 분장 지시 등 어디에도 피해자의 가슴 노출이나 신체접촉에 대해 예상할 만한 내용이 없다. 그런데 만일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한다면 감독의 의도대로 피고인이 행동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피해자를 기만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피고인과 감독이 공범으로 피해자를 추행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감독의 의도에서 벗어나 피고인이 단독으로 행동한 것이라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추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법원은 피해자의 승낙으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 대하여 보다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 영화 촬영이라는 이유로 피고인의 행동에 무죄를 선고했다면 해당 판결은 잘못된 것이다. 지금까지 영화 촬영현장에서 영화 촬영이라는 미명하에 침묵된 사건이 많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판결문에 나와 있듯이 ‘한국영화계 70년 역사상 추행이라고 이야기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은 아무도 지금까지 이야기를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라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연기라는 미명하에, 영화 촬영이라는 미명하에 여성배우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침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남성화된 영화제도 카르텔이 문제의 핵심

=손희정_ 한국영화계 70년 역사상 추행이라는 말이 언급된 적이 없었다는 건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영화계 내 성폭력은 재현과 제작 현장이라는 양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재현상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현실에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종종 현실에서의 성폭력으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문화는 이러한 대상화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된 ‘과몰입’ 판결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남성감독과 남성배우 사이에 존재하는 남성 카르텔이 어떻게 여성배우를 대상화하여 작품을 둘러싼 의사결정과 논의 과정에서 소외시키고 도구화하여 그의 인간이자 노동자로서의 존엄을 침해하는가다. 이런 대상화에 기반한 기만적인 모의가 남성 스탭들 사이에서 이뤄지면서도, 동시에 그런 폭력에도 쿨하게 반응하기를 프로페셔널리즘의 이름으로 여성배우에게 요구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물론 “큰돈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망쳐먹는 쌍년”이 된다. 여기에서 ‘큰돈 들어가는’ 부분 역시 폭력의 조건이 된다. ‘작은 것’을 살피지 않는 현장 분위기와 문화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문에서 등장한 ‘과몰입’이라는 표현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와 예술 행위에 대한 낭만적 판타지의 절묘한 결합의 결과다. ‘예술’이라는 말은 폭력을 무마할 수 있는 만능키가 된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폭력과 고통에 기생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예술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과 가치가 없다. 한 작품이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방식이 합의 없이 배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뿐이라면 그것은 배우에 대한 착취일 뿐이며, 동시에 제작진의 일천의 상상력과 게으름을 폭로하는 일에 불과하다. 남성화된 영화제도 카르텔은 이 문제의 핵심이다. 영화판에서의 질적 민주화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예지_ 감독이 남성배우에게만 따로 디렉션을 줘서 여성배우는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습적인 연기를 한다거나, 여성배우에게 사전 합의되지 않은 노출을 압박해오는 일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얘기다. <씨네21> 1079호의 첫 번째 대담에 참여했던 배우 이영진의 경우 “한 영화에서 사전에 얘기되지 않았던 신이 새로 생겼고, 감독이 현장의 모든 스탭들 앞에서 ‘가슴을 보여주는 게 어떠냐’고 했다고 한다. “스탭들은 나만 보면서 기다리고 있고, 압박감이 엄청났지만 끝내 거절했다. 그 후로 현장 분위기가 수습이 안 되더라”라고 이야기했다. 노출 혹은 스킨십 연기에 있어서 사전에 합의하지 않은 사항을 감독이 현장에서 밀어붙일 때, 혹은 그 밀어붙이는 과정조차 생략하고 상대배우가 기습적 연기를 행할 때, 배우가 그 상황을 거부하기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너 때문에 이 많은 스탭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지는 “너 때문에 이 영화 전체를 망쳐야겠냐”는 식의 압박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그런데 법원은 이러한 현장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배우 곽현화가 자신의 동의를 얻지 않은 상반신 노출 신이 포함된 버전을 무삭제 버전이라며 IPTV로 유료 판매한 <전망 좋은 집>(2012)의 이수성 감독을 고소했지만, 법원은 이 사건에서도 무죄판결을 내렸다. 당초 곽현화는 노출수위를 합의하에 정하는 것으로 계약을 했고, 합의를 통해 상반신 노출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촬영일이 다가오자 감독은 “노출은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곽현화를 설득했고, “편집본을 보고 빼달라면 빼주겠다”고 구두약속해 노출 장면을 찍었다. 촬영이 끝나고 곽현화는 노출 장면 공개를 거부했고 감독은 해당 장면을 삭제하고 영화를 개봉했지만 몇년 후 그는 삭제했던 노출 장면이 포함된 영화를 무삭제 노출판으로 IPTV 등에 유료 배포했다. 판사는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등 혐의로 기소된 이수성 감독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계약 체결 당시 노출 장면을 촬영하지 않기로 했다면 이수성 감독은 곽현화 배우에게 갑작스럽게 노출 장면을 촬영하자고 요구하기 어려웠을 것”인데, “실제로 감독은 이를 요구했고 배우도 거부하지 않고 응했다”고. 그러나 감독이 배우에게 갑작스럽게 노출 장면을 촬영하자고 요구하는 일은 앞서 말한 대로 비일비재하며, 영화 촬영현장의 특성상 배우가 현장에서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 것을 배우의 전적인 동의로 보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번 포럼의 케이스도 마찬가지다. 상대배우의 동의 없이 행한 연기는 연기가 아닌 폭력일 뿐이다. 앞서 나열한 사례들에서 그들은 배우에게 어떤 연기가 있을 것임을 사전에 주지해주지 않음으로써 캐릭터가 아닌 인간 그 자체로서의 반응과 수치심 등을 이끌어내는 것을 미덕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그것이 더 좋은 연기인 것처럼, 그런 걸 이끌어내는 것도 감독의 능력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배우와의 합의와 구체적인 디렉션을 통해 연기를 이끌어야 하는 감독의 무능력을 입증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합의되지 않은 노출을 현장에서 유도해, 사전 합의가 어려운 신을 쉽게 찍으려는 ‘꼼수’는 죄질이 더 나쁘다. 여성배우의 몸을 가슴, 하반신 등 낱낱의 단위로 분절하고 대상화해 소비하는 카메라와 이를 더 용이하게 착취하기 위한 전략들, 그 속에서 여성배우의 의지는 과연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까?

영화는 예술이 아니고 노동이고 일자리다

=김꽃비_ 연기를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페미니즘을 접하고 남성 영화인들이 공고한 카르텔을 통해 여성배우들을 대상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가정했을 때 옛날의 나였다면 몰랐겠지만 이제 뭐가 문제인지 안다. 이 사건에선 해당 영화에 대해서 수위에 대한 인지가 다르다는 걸 우선 언급해야 한다. 이런 기만적인 일들이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찍는 페미’를 만들고 많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배우에겐 그냥 드라마 장르의 영화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영화는 애초부터 IPTV에서 유료로 판매할 목적으로, 포르노그래피적 소비를 의도해 계획된 것이었다. 감독과 PD 등은 앞의 사례처럼 캐스팅 문제를 고려하여 노출이나 베드신이 있다는 걸 배우에게 속였다. 너무나 명백하고 고의적인 의도다.

=이언희_ 나는 이 사건에서 어떻게 감독과 제작자가 빠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 꼬리 자르기에 가깝지 않을까. 사실 현장에서 감독이 노출을 갑자기 부탁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어야 맞다. 나는 노출이 있는 두 번째 영화를 찍었을 때 연출부와 함께 합숙하며 액팅을 연구하면서 콘티를 짰고, 필요한 경우에는 시연까지 하면서 구체적으로 합의했다. 언젠가 현장에서 그런 경험도 있다. 배우와 신의 수위를 잘 합의했는데, 배우가 막상 준비하고 나오면 “아, 엄마가 보고 싶다” 하는 거다. 저렇게 힘들어하는 걸 요구하면서 내가 뭘 보여주고 싶은 걸까 회의가 들어 편집에서 잘랐다. 그 정도 노출이 과연 이 영화에 필요한가 다시 돌아봤고, 나름대로 투자사나 제작사에서 그런 압력이 없었기에 편집에 대해 결정할 수 있었다. 나는 그 감독님께 묻고 싶다. 감독님께서 이 장면을 지시할 때 정말 이 장면이 필요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지시를 했는지 말이다. 나도 영화현장에서는 일개 노동자고 배우도 그렇지만 권력을 가진 것과 갖지 못하는 건 차이가 크다. 그런 구조적 차원에서 이런 문제는 개개인의 양심에 맡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이 사건 또한 남배우 A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꽃비_ 감독과 제작자에는 왜 책임을 묻지 않느냐는 감독님의 말씀에 동의한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 배우와 감독이 공범으로 피해자를 추행한 사건이다. 하지만 방금 이 감독이 말씀하신 것처럼 감독의 디렉팅이 있어서 그걸 따랐다고 하더라도 미필적고의에 해당하기에 이 남자배우에게도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언희_ 물론 그렇다. 뉴스를 열심히 보면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가 부역자란 말이지 않나. 디렉팅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확실히 처벌을 해야 한다. 이런 일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분명한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태진_ 비서실장이 시켜서 했다, 장관이 시켜서 했다고 해서 법망을 피해갈 수 없듯이 말이다. 전국영화산업노조에서는 어떤 시선으로 이런 사태들을 보고 있나.

=안병호_ 우선 말하고 싶은 건 영화는 예술이 아니고 노동이고 일자리라는 것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내일이고 모레고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 이런 문제가 나오면 제작사는 어디로 갔는지 항상 사라진다. 2013년 보조출연 자매 성폭력 사건이 큰 이슈가 돼서 영화진흥위원회가 간단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현장 설문 대상으로 한 여성 중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이 25%지만 그 건으로 신고했다는 사람은 반수 이하고 처벌로 이어진 건 단 한건이었다. 그만큼 영화계에서 어떤 식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제작사, 투자사는 몇 억원 들였으니까 어떻게든 끝내야만 너도 좋고 나도 좋다는 식이고,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결국 성추행하는 사람만 개인적으로 인격이 안 좋은 사람이 되고 만다. 시스템의 문제라는 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다. 한편 노출 장면이나 정사 신을 찍을 때 감독들이 여성배우를 불러내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소통하려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설득하려고 접근한다. 말이 좋아 설득이지 강요인 셈이다. 여성배우에게 촬영 당일까지도 정확한 촬영 내용을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으로 몰아갔을 때 배우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시간을 끌거나 하면 예민하게 굴고 연기도 못하는 배우라는 인식이 생긴다. 사례가 다 비슷하기 때문에 굳이 하나씩 얘기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다. 결국 배우들이 어떤 식으로 계약을 하는지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통용되는 주·조연 배우들의 계약서를 봐도 굉장히 전근대적이다. 대부분의 계약은 “본계약 기간은 체결일로부터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종료된다”고 되어 있다. 계약기간은 계약체결일로부터 효력을 발생해서 본영화에 필요한 을의 영역을 다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예전에 있던 스탭 계약서와 똑같다. 촬영과 관련된 문장은 한 문장이다. “갑과 을은 을이 신체, 명예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장면에 대하여 대역사용 여부 등에 대해 을과 충분히 협의하기로 한다.” 배우와 관련된 법안이 없을까 해서 찾아보니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예술인복지법 딱 두 가지가 있더라. 대중문화산업발전법은 처음에 고 장자연님과 관련해 매니지먼트 문제로 촉발된 것으로 계약할 때 기간과 내용을 명시하고 안 쓰면 500만원의 과태료를 문다는 정도다. 어떤 장면에서 배우가 인격적으로 침해받거나, 피해를 받는 부분을 지켜줄 수 있는 조항에 대해선 한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윤태진_ 발표 중에도 나왔지만 최근 이수성 감독이 곽현화 배우의 동의 없이 노출 장면이 포함된 버전을 배포하는 사건이 있었다. 감독과 배우 사이 권력관계에 대해 재판정이 무시했던 판결이다. 이 자리에 곽현화 배우가 나왔다.

곽현화_ 소송한 지가 2년이 넘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상반신 노출이 있어서 빼고 하겠다고 얘기하고 들어갔고, 계약서엔 합의하에 찍는다고 적고 들어갔다. 그런데 노출 장면을 앞두고 감독이 배우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지 않으냐며 이 장면은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나를 설득하더라. 나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 감독이 재차 하는 말이 “이 많은 스탭들, 배우들 다시 한번 움직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일단 찍어놓고 나중에 편집본을 보고 이 장면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빼주겠다”는 거다. 그렇게 하고 편집본을 보니 그 장면이 들어갈 이유가 없는 거다. 감독님에게 영화가 괜찮은데 이 장면은 필요가 없는 것 같으니 빼달라고 얘기했는데 감독님이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빼준다고 하지 않고 설득을 하는 거다. 그때 왜 설득을 하지 싶어 겁이 났고 울먹이면서 얘기했다. 그래서 뺀 상태로 극장에 상영됐고 곧 IPTV로 넘어가서 수익을 많이 올리더라. 내가 시나리오 선택하는 눈이 부족했고 다음 영화는 잘 선택해야겠다 생각했다. 두 번째 영화로 봉만대 감독의 <아티스트 봉만대>(2013)를 택했고, 노출 신이 한 장면 있었다. 트라우마가 있어 노출 신을 못하겠다니 감독님이 CG로 하시겠다고 하더라. 감독님과 충분한 대화와 합의, 극과 역할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그 작품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런데 <전망 좋은 집>이 개봉한 지 몇년이 지나고 나고 갑자기 무삭제 버전라는 이름으로 삭제된 장면이 들어간 버전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지인을 통해 알았다. 감독님한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물어봤어야 하는데 동의 없이 내보내서 미안하다. 제작사가 시켰다”고 하더라. 나는 이 녹취록과 스탭 두명의 녹취로 소송을 했다. 나는 이 정도면 내 입장이 충분히 대변될 줄 알았는데 판사는 합의된 사항이면 왜 울면서 매달리고 빼달라고 했냐고 하더라. 감독과 배우가 어떤 갑을 관계에 위치해 있는지 인식이 없는 상태의 판단이었다. 대질심문할 때도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이수성 감독이 “<아티스트 봉만대>에선 그런 장면이 나왔는데 왜 본인 영화는 안 되냐”고 묻더라. 그럼 한번 노출 신을 찍은 여자배우는 다른 영화에서는 어느 장면이든 갖다써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내가 이 사람에게 있어서 배우인가 싶더라. 소송하는 몇년간 나는 방송을 거의 하지 않았다. 원래 활발하고 당찬 이미지인데 방송 출연할 때마다 옷차림을 조심하게 되고 하려고 했던 말을 참게 되면서 가슴앓이를 많이 했다. 많이 생각하고 주변분들 얘기를 들으면서 느낀 건 이건 절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거다. 이쪽 분야에서는 성적으로 오픈된 것이 예술적인 것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넌 배우니까 벗을 수 있어”라고 얘기하고,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면 배우로서 진정한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된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분들께 그건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윤태진_ 용기내 참석해줘서 감사하다. 여기 계신 젊은 분들이 영화계에서 일하며 풍경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월에만 맡길 수는 없는 문제다. 구조적, 제도적 변화가 절실하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민우회대로, <씨네21>은 <씨네21>대로 열심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여성 연예인 인권지원센터는 성폭력상담소와 함께 여성 연예인의 인권을 개선하는 활동을 더 활발히 하려고 한다. 관련된 사례를 알고 있거나 비슷한 경험이 겪은 분들의 제보를 받고 있는 <씨네21> 혹은 여성 연예인 인권지원센터로 연락 달라. 긴 시간 자리해줘서 감사하다.

이수성 감독 반론 보도문

본지 제1090호 “<씨네21>과 한국여성민우회가 함께한 긴급포럼 ‘그건 연기가 아닌 성폭력입니다’”(홈페이지 게재 2017년 1월25일) 제하의 기사에서 ‘배우 곽현화가 영화 <전망 좋은 집>(2012)의 이수성 감독에게 상반신 노출 신이 포함된 시나리오를 받았으나 상반신 노출 촬영은 하지 않기로 구두 합의했고, 이수성 감독이 곽현화 배우에게 ‘편집본에서 노출 장면을 빼달라면 빼주겠다’라고 약속하여 상반신 노출 장면을 촬영하였으며, 이후 배우가 공개를 거부하였음에도 이수성 감독은 상반신 노출 장면을 배포하였으나 법원에서 무죄선고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수성 감독은 (i)곽현화 배우와 영화 출연 계약 체결 전에 배우에게 상반신 노출 내용이 묘사된 시나리오를 제공하였고, (ii)곽현화 배우는 영화 출연 계약 체결 시 노출 장면은 촬영하지 않겠다고 말한 사실이 없었으며, (iii)노출 장면 촬영 전에도 배우에게 상반신 노출 장면을 시각화한 콘티를 제공하였고, (ⅳ)배우가 사전에 동의한 노출 장면만 촬영하기로 약정된 영화출연 계약에 따라 곽현화 배우로부터 사전 동의를 얻어 상반신 노출 장면을 촬영하였으며, (ⅴ)위 영화 출연 계약에는 촬영된 결과물에 대한 모든 권리는 감독에게 귀속된다고 규정되어 있어 배우인 곽현화씨가 이수성 감독에게 이미 촬영된 노출 장면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에게 노출 장면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하였고, (ⅵ)위 요구가 거절되자 곽현화 배우가 감독에게 고소를 제기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위 기사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반론을 제기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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