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반달 영화기자의 잃어버린 명예
2017-02-17
글 : 주성철

영화기자라는 직업은 참 애매하다. 뉴스를 발굴하고 이슈를 추적하는 일간지 본위의 이른바 ‘언론인’으로 분류되지도 않을뿐더러 <씨네21>의 경우 잡지협회나 한국영화기자협회에 등록돼 있지도 않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기사를 써도 ‘올해의 영화기자상’은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잡지로서의 <씨네21>이 모기업인 <한겨레>로부터 다수의 기자들이 넘어와 출발했음에도, 오래전 그보다 앞섰던 영화월간지 <스크린>과 <로드쇼>가 생겨나 사실상 기자보다는 영화평론가나 영화애호가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른바 ‘영화기자’가 되면서 형성된 전통이 이식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자’를 꿈꿨다 해도 ‘언론고시’라 불리는 시험을 통과한 정식(?) 기자도 아니고, 보다 멀리 영화현장으로 나가 감독이나 프로듀서를 꿈꿨다 해도 어쨌건 ‘영화인’은 아닌, 그럼에도 영화현장과 밀착된 기자로서의 자질과 뛰어난 혜안을 갖춘 평론가로서의 자질 모두를 요구받는 이상한 신종 직업이 탄생한 것이다.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등장하는 최익현(최민식)처럼 민간인도 건달도 아닌 ‘반달’ 같은 존재랄까. 더구나 영화기자들의 중요한 취재거리 중 하나가 촬영현장 취재라고 한다면, 그것이 최근 마케팅 단계에서 거의 생략되어가고 있기에, 어쩌면 영화기자라는 게 멸종 단계에 접어든 직업이 아닐까 하는 우울한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최근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기자’의 본성을 깨우게끔 하는 기사들을 다수 기획하면서, 전에 없이 부쩍 많은 변호사들을 만나고 있다. 이화정·이예지 기자의 #영화계_내_성폭력 기사와 인터뷰, 김성훈·정지혜 기자의 모태펀드와 블랙리스트 관련 취재가 이어지면서 각종 명예훼손과 고소 위협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일부 기사로 보도된 것처럼 김성훈 기자는 유치장 신세까지 졌다. 법무팀은 물론 관련 변호사들의 조언을 듣고 또 그렇게 판단한 대로 흔들림 없이 갈 생각이지만, 상대쪽 변호사들이 여성 인권이나 보편적 정의 대신 거의 뭐 ‘무릉도원’과 비슷한 말처럼 들리는 ‘산업생태계의 현실’이라는 말로 후려칠 때면 앞이 깜깜해진다. “여성 피해자는 법을 못 믿어서 폭로를 하고, 남성 가해자는 법이 자기 편이라 믿고 소송을 한다”는 한 트위터리안의 말이 가슴을 후벼파는 것이다.

한편, 이번호 게시판(111쪽)에서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지난해 11월 1081호 #영화계_내_성폭력 세 번째 대담에 참여해주었던 영화마케팅사 ‘호호호비치’의 이채현 대표가 ‘대담 이후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경력 단절여성들을 위한 업무 지원 프로젝트를 실시할 계획’임을 알려왔다. 무척 반가운 일이며 더 많은 제보와 제안을 기다리고 있다. 돌이켜보니, 사람은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한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처럼 무책임하고 폭력적인 말이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반달’ 같은 삶이었지만, 영화기자로서 거의 20년 가까이 영화계를 경험한 바에 따르면 참여하는 사람도 많고 생겨나는 변수도 많은 영화 일은 자신의 능력보다 시스템의 문제가 공과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그 후자를 바꿔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경찰서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무거웠다. 게다가 그처럼 힘든 일과를 끝낸 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과 두기봉을 좋아한다며 보통 이상의 영화적 지식을 자랑하는 우리쪽 변호사들과의 영퀴 대결에서도 지고 말았기에 돌아오는 발걸음도 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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