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화려한 삶과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공허함 <싱글라이더>
2017-03-01
글 : 이화정

<싱글라이더>는 ‘추락’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재훈(이병헌)은 짐작건대 증권회사 지점장의 자리까지 오르며 ‘잘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부실채권사건으로 그는 분노한 피해자들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따귀를 맞는 신세로 전락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그때, 그는 아내 수진(공효진)과 아들이 있는 호주행을 택한다. 2년 전 그는 가족을 모두 호주로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였다. 수진은 이미 그곳에서 옆집 남자 크리스(잭 캠벨)와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었고, 이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싱글라이더>는 40대 남성 재훈, 그의 각성을 다루는 영화다. 호주에 와서야 그는 오로지 성공과 일에만 집착했던,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한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가족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깨닫게 된다. 재훈은 이곳에서 만난, 워킹홀리데이로 모은 돈을 사기당한 딱한 여성 지나(안소희)에게 도움을 주는 동안 서서히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만, 선뜻 아내 앞에 나서지 못한다. 왜 그는 가족의 ‘파국’에 단 한번도 개입하지 않을까. 카메라는 그 미스터리한 기운을 안은 채 재훈의 조심스런 발걸음, 과묵한 입매, 애잔한 눈길을 좇아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플롯상으로 반전의 장치를 십분 활용한 <싱글라이더>는 탄탄하고 정교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병헌이 선택했다는 시나리오에 대한 호평이 일찌감치 충무로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 출신인 이주영 감독의 입봉작으로, 광고감독으로 일하던 당시 그가 보고 경험한 것들에 바탕해 시나리오를 썼다. 상위 10%, 화려한 삶과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공허함을 포착해낸다. 하지만 ‘관찰자’로 존재하는 재훈의 시선을 정교하게 유지하려다보니 막상 재훈과 수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빠진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극에 세련됨을 가져다주는 장치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재훈의 추락과 이 가정의 파국이 좀더 리얼하게 다가올 수 있는, 끈끈한 장치가 상황을 이해하고 중반의 늘어짐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절제된 대사로 유영하듯, ‘혼자의 여행’을 완수하는 이병헌의 연기가 이 영화의 중심축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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