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인간 내면의 나약함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고, 비겁함에 굴복하기란 너무도 쉽다 <눈발>
2017-03-01
글 : 이예지

어느 겨울, 도시에 살던 민식(박진영)은 부모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인 전남 고성으로 내려온다. 낯선 고장에서 이방인인 민식은 남학생들의 위계질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고, 그들이 괴롭히는 예주(지우)에게 마음이 쓰인다. 살인자로 지목된 남자의 딸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예주 역시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이들과는 다른 민식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민식과 예주는 어느 날 구덩이에 빠진 염소를 발견하고 함께 돌보지만,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그들에게 냉담하고 염소마저 빼앗길 처지에 놓인다.

공동체는 약자에게 어떻게 폭력을 행사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위선과 기만 위에 옹립하는가. <눈발>은 그 아이러니를 그려내는 영화다. 한 소녀의 살인 가해자로 지목된 남자의 딸은 집단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소년은 자신이 먹던 보약이 자신이 아끼는 염소였음을 알게 된다. 보편적인 선에 대한 믿음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과 그에 대한 폭력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비정한 현실에서 나아가, 손 내밀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리 낙관적이진 않다. 인간 내면의 나약함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고, 비겁함에 굴복하기란 너무도 쉽기 때문이다. 외지에서 온 이방인 소년과 시스템의 폭력하에 놓인 소녀라는 전형에는 기시감이 들지만, 영화는 조금씩 다른 답을 내놓는다. 영화를 연출한 조재민 감독은 <눈발>이 누군가의 고통을 방관했던 죄책감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겨울 고성을 배경으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서정적이면서도 서늘하게 그려낸 영화로, 조재민 감독의 데뷔작이자 명필름 영화학교에서 제작한 1기 첫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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