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제프 니콜스 감독이 그린 '승리'의 순간 <러빙>
2017-03-01
글 : 정지혜 (객원기자)

1958년 미국 버지니아주는 백인과 타인종간 결혼을 금지한다. 백인 남성 리차드 러빙(조엘 에저턴)과 흑인 여성 밀드레드(루스 네가)는 워싱턴 D.C에서 결혼하고 돌아오지만 주 법원은 이들에게 25년간 버지니아를 떠나라고 명한다. 너른 밭에 ‘우리들의 집’을 짓겠다던 리차드의 말은 아득해진다. 내쳐진 러빙 부부는 몇 차례 귀향을 시도하나 다시 체포되거나 숨어 살아야 한다. 1960년대 인권운동의 흐름을 타고 마침내 1967년 타인종간 결혼금지법이 위헌이라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난다. 실화이기도 하다.

제프 니콜스 감독이 ‘승리’의 순간을 그린다는 건 어색한 일이다. 역시나 감독의 방점은 인정 투쟁을 이룬 부부의 환희 대신 사랑의 지속을 가로막는 것들이 부른 인물의 불안에 가 있다. 불안한 사랑은 감독이 줄곧 골몰해온 테마다. 숨죽여 사는 존재들인 만큼 대사는 절제됐으나 자연이 빚는 흔들림과 음악들이 틈을 메운다. 차창 너머로 고향 풍광을 맥없이 좇다가 타지의 메마른 보도블록을 향하던 밀드레드의 시선, 익명의 감시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평범한 이웃들을 둘러보는 리차드의 시선이 와이드 화면을 채운다. 적극적으로 귀향 의지를 보이는 건 밀드레드이나 감독의 인장이 보다 많이 찍힌 쪽은 리차드다. 흑인 사회에서 백인이라는 이유로 의도와 삶을 의심받는 위치, 집을 짓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이 그렇다. 감독의 오랜 파트너 조엘 에저턴은 더없이 성숙했고 마이클 섀넌의 특별한 출연에는 애정이 느껴진다. 버지니아의 햇살을 받고 선 루스 네가는 충분히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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