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액터] 스타가 아닌 배우로 살아남기 -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류현경·박정민
2017-03-07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류현경, 박정민(왼쪽부터).

아트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한번 보자. ‘죽음’도 좋은 장사가 된다. 전도유망한 화가 지젤(류현경)의 요절 앞에서, 수완이 출중한 갤러리 대표 재범(박정민)은 ‘지젤 프로젝트’의 사업적 전망을 발견한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작품이라는 ‘진짜’와 ‘진실’이 비즈니스로, 가짜로 포장되는 시대를 향한 날선 비판이다. 준엄하고 심각한 경고 대신 웃지 못할 해프닝의 연발 속, 미술계 종사자들의 머리 굴리는 소리와 속물근성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우디 앨런식 블랙코미디가 주는 씁쓸한 긴장! 마치 핑퐁게임하듯 극을 이끄는 것은 류현경, 박정민 두 배우의 호흡이다. 둘은 <오피스>(2014),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는 영화감독이다2>를 함께한 동료이자, 평소 고민을 터놓는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영화 속 지젤만큼이나 데뷔 때부터 ‘진짜 배우’로 성장하기 위한 고민을 나누어온 두 배우와 함께, 아티스트의 방법론을 논의해봤다.

-재능 있는 아티스트 지젤도, 잘나가는 갤러리 대표 재범도 둘 다 자신감이 충만한 유형의 인간이다. 이렇게 자신을 대사와 행동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의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류현경_ 지젤은 필터링 없이 말을 한다. 그게 정말 통쾌하더라. 지젤이 영향력 있는 미대 교수 중식(이순재)에게 가서 “당신 과대평가된 줄 알아라”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원래는 상상 신이었는데 실제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되니 지젤 캐릭터가 명확해지더라. 지젤은 아티스트 지젤과 실제 본명 인숙 사이를 오가는 인물이다. 속은 여리지만 삭이지 않고 속마음을 표출하는 캐릭터다.

=박정민_ 이런 ‘갑’의 위치에 있는 역할은 처음 맡았다. (웃음) 업계에서 성공한 재범은 자기 확신이 강하고, 화가들한테 영향력도 크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타입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은근슬쩍 드러내면서 상대방을 치켜세우기도 하고 깎아내리기도 하는 능수능란함을 지녔다. 그러다 또 나약해지기도 하고. 재범의 그 변화들을 표현하는 게 재밌더라.

-자존심을 지키려는 화가(지젤)와 상품성을 보고 아티스트에게 접근하는 갤러리 대표(재범)의 관계가 코믹한 톤을 바탕으로 팽팽하게 전개된다. 멜로를 뺀 ‘밀당’이랄까. 두 배우의 호흡과 리듬이 관건인 연기였다.

박정민_ 우리 둘이 멜로를 연기했다면… 이 시대 최고의 망작이 나올 수 있었다. (웃음)

류현경_ 진짜 천만다행이다. (웃음) 정민이랑은 멜로가 안 된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동성친구에게 할 이야기를 정민이에게 다 한다. 김경원 감독님이 정민이와 내가 대화하는 걸 보시더니 좀 가벼운 톤으로 밀어붙여도 되겠다 생각하신 것 같다. 진지하고 무겁게 가는 대신 가볍게 리듬감을 주자 했다. 감독님과 함께 그 톤에 대한 대화를 많이 했다.

박정민_ 초반에는 지젤이 죽었다 살아나는 설정이 나부터 납득이 안 가더라. 실제 ‘라자루스 증후군’(심폐소생술 이후에도 심장이 뛰지 않을 때 자발적으로 심장이 뛰는 증상)이 있긴 하지만 톤을 잘못 잡으면 너무 영화적이 될 것 같았다. 관객이 이 장난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야 했다.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게 접근하거나 어렵게 생각하면 재미를 놓치겠더라. 연기하기 가장 어려웠던 지점이기도 한데,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마음일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류현경_ 지젤이 갑자기 살아났을 때, 그 순간 영안실에 들어가는 역할을 한 친구가 우리 연출부 팀원이었다. 배우가 하는 것보다 늘 옆에 있었던 그 친구가 하면 자연스럽고 리얼한 반응이 나올 것 같더라. 갑자기 살아났다는 설정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얼떨떨한 느낌으로 대응하는데, 그게 오히려 이 상황을 무리 없이 전개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요절한 천재화가’ 지젤을 만든 영화 속 아트비즈니스처럼 영화계 역시 아카데미, 오디션 등을 통해 스타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자존감과 콤플렉스 사이에서 방황하는 지젤의 심리는 배우로서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부분이지 싶다.

류현경_ 맞다. 특정 미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의 일일 수도, 직장인의 일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 난 항상 ‘너무 옆집 언니 같다’, ‘친구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런 반응이 좋은데, 업계 종사자들은 그 부분을 크게 우려하더라. 배우는 동경할 대상처럼 보여야 하고, 그래야 사람들이 더 궁금해하고 더 많은 작품이 찾아온다는 거다. 피곤하지도 않은데 ‘전 좀 피곤해요’ 하고, 웃기면 웃어야 하는데 참아야 하고, 이런 것들을 해야 한다. 시도를 좀 해봤는데 아예 안 돼 지금은 그냥 안 하기로 했다. (웃음)

박정민_ 누난 그런 DNA가 없다. (웃음) 나도 좀 비슷한데, 누구나 상업영화, 사람들이 더 많이 선택하는 영화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걸 해야 하는 유혹도 찾아온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원래 생각한 걸 지켜내는 게 어렵더라. 좋아하는 선배들처럼 장기적인 미래를 보고 꾸준히 해야지. 당장의 욕심과 생활고 때문에 선택하진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곤 한다. 선배님들의 역사 속에서 내 갈 길을 찾는 거다.

-소위 말하는 ‘스타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둘 다 거리가 좀 있는 배우다.

박정민_ <동주>팀과 식당에 가면 사람들이 이준익 감독님과 강하늘씨에게 사인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감독님이 그들에게 꼭 나를 언급하신다. 세상 제일 불편한 순간이다. 나는 그래서 사인 받는 식당은 안 가려고 한다. (웃음)

류현경_ <오피스> 때 고아성도 꼭 그랬다. (웃음) “이쪽은 류현경씨예요. 같이 사진 찍으실까요?” 해준다. 그래서 정민이랑 둘이 다닐 때가 제일 편하더라. 아니다. 이제는 너도 광고 찍고 좀 유명해져서 같이 다니기가…. (웃음) 더 잘돼서 나 좀 구원해주라. 언제 같이 CF 찍는 날도 오겠지. (웃음)

박정민_ 한번은 운전하다가 ‘나는 왜 안 될까’ 하는 생각을 곰곰이 해봤다. 잘된 내 동료들을 떠올려봤다. 주변 동료들을 보면 그런 부분이 감각적으로 발달된 배우들이 있다. 난 그게 안 되기도 하고, 또 젊은 배우로 내가, 대중이 원하는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엔 성향이 안 따라주는 사람이 아닐까도 싶다. 기본적으로 나는 상당히 마이너한 사람이다.

류현경_ 정민이는 자신에게 좀 부정적이다. 항상 자기검열을 심하게 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그런 성향에서 나오는 힘도 있지만, 이젠 좀더 자신에게 긍정적이어도 좋을 것 같다.

박정민_ 난 내가 연기에 감각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다는 고민이 크다. 그게 부족하니까 왠지 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역할을 하려면 내 모든 걸 다 쏟아야 하는데, 상대배우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대처한다. 그럼 시간대비 얼마나 불리한 게임인가 싶어지고, 나 자신에 대해 부정적이 되는 거다. 얼마 전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하는데도 나보다 빠른 속도로 배역에 다가가는 배우 문근영을 보면서 스스로 자꾸 작아지더라.

류현경_ 공연 끝날 때쯤 봤는데, 네가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노는’ 모습이 보이더라. 깜짝 놀랐다.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 보이더라.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쌓여서 여기까지 왔는지 아니까 그게 정말 감동으로 다가오더라. 그런 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예술 아닐까.

-어떤 기준을 가지고 매니지먼트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성향이 드러나는 필모그래피가 형성될 수 있다. 지난 몇년간 두 배우의 행적에서 그 고민들이 치열하게 보였고, 이제는 자신만의 해답을 조금씩 찾았다 싶다.

박정민_ 지금은 스타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는 시대다. 그런데 나라는 배우가 그 기획 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거리가 좀 있는 것 같다. (스타성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매진해온) 선배들의 방식이 지금은 안 받아들여지냐 물었을 때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대로 마음 편히, 쭉 가보자 싶어진다.

류현경_ 한번은 ‘류현경은 너무 친근한 이미지라 역할을 맡기기 어렵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충격이었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 나는 나대로 가야지 하고 답을 찾았다. 나 역시 인기 있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지만 어느 순간 그걸 못하는 나의 모습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그전에는 매니저도 이런 걸 이야기하는 거 조심스러워했고 나도 ‘왜 내가 아니야’ 하고 속상해하기도 했다면 이제는 ‘저 배우가 더 잘하겠지’ 하고 생각하는 거다. 내가 너무 편하게 마음먹고 있는 건가. (웃음)

박정민_ 사실 누나나 나나 연기할 때 개인적인 욕심을 많이 부리지 않는 편이다. 내가 여기서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 하니까 우리가 더 더딘 건지. 컷과 신의 분위기를 다 살리면서 거기서 하나 더 나아가는 배우들도 있는데, 진짜 존경스럽다. 나는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구나. 그럴수록 작품을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나아가지 않더라도 보일 수 있는 역할이 오면 이 일로 좀더 오래 밥먹고 살아갈 수 있겠지. (웃음)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기운이 느껴진다

블랙코미디 장르를 무리 없이 진행시키는 건 두 배우의 능란한 연기다. 류현경은 박정민에 대해 “촬영을 함께해보면 안다. 정민이는 상황의 기운을 몰아오는 배우다. 그 공기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박정민이 되받는다. “류현경은 특유의 처절함과 치열함으로 매달린다. ‘왜 나는 저렇게까지 생각지 못했을까’ 반성하게 만든다.” 재능 있는 화가 지젤과 그 화가를 띄웠다 내려놓았다 하며 스타로 만드는 갤러리 대표의 아슬아슬한 ‘밀당’ 장면들은 이런 두 배우의 합으로 탄생했다.

류현경

영화 2016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2015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2014 <오피스> 2014 <나의 절친 악당들> 2014 <제보자> 2013 <만신> 2012 <전국노래자랑> 2010 <시라노; 연애조작단> 2010 <방자전>

박정민

영화 2016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2015 <동주> 2014 <오피스> 2014 <신촌좀비만화> 2014 <피끓는 청춘> 2013 <들개> 2012 <전설의 주먹> 2010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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