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사건의 외부가 아닌 내부를 탐사하는 스릴러 <해빙>
2017-03-08
글 : 이예지

미제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경기도 북부의 신도시. 강남에 개업했다가 도산하고 아내와도 이혼한 의사 승훈(조진웅)은 선배의 병원에 페이닥터로 취직하고,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과 치매에 걸린 그의 아버지 정 노인(신구)의 건물 원룸에 세를 든다. 어느 날 승훈은 정 노인의 수면내시경을 하던 중 살인 고백을 듣게 되고, 정육식당 부자에 대한 의심을 품는다. 한편, 조용했던 도시에 살인사건이 다시 시작되고, 승훈은 자신을 찾아왔던 전처(윤세아)마저 실종되자 성근과 정 노인에 대한 의심과 공포로 혼란에 빠진다.

사건의 외부가 아닌 내부를 탐사하는 스릴러다. 서사는 가수면 상태에서 의식과 무의식을 탐험하듯 사건의 안팎을 넘나들고, 결정적인 순간 안과 밖을 뒤집어버린다. 영화가 목표로 하는 것은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 아닌 한순간에 몰락한 중산층 화이트칼라 남성인 승훈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이것은 한 개인의 내면세계를 넘어 사회현상으로 확장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기득권 계급에서 한순간에 낙오한 중산층 가장의 내면은 이 사회의 황폐한 한 단면을 그려낸다. 영화는 보고 싶은 방식대로 세계를 보고, 믿고 싶은 방식대로 자신을 보려는 인물이 현실과의 간극에 부딪혔을 때의 충돌과 그 파열음을 길게 그려낸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 표현 방식이다. 비좁고 낮은 공간과 인물에 드리우는 진한 콘트라스트의 빛, 페이드 인·아웃과 디졸브 기법 등 촬영과 조명, 편집 등에서 고전적인 탐정물의 정취를 풍긴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폭넓게 소화해낸 조진웅의 연기는 훌륭하고, 친근하면서도 서늘한 이중성을 지닌 김대명의 연기도 인상에 남는다.

한편 스릴러의 강박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영화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전개를 거쳐 후반부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달려가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반전을 주며 답을 비튼다. 장르적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적인 선택으로 보이지만 기득권에서 낙오한 시선으로 본 세계를 그려온 영화의 주제와는 대치되는 방향으로 아쉬움을 남긴다. <4인용 식탁>(2004)을 연출한 이수연 감독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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