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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프리즌> 나현 감독
2017-03-23
글 : 김현수
사진 : 최성열

“누가 그러더라. <프리즌>이 블록버스터 버전의 <예언자>라고. 예술영화와 비교해주니 고맙다. (웃음)” 나현 감독의 데뷔작 <프리즌>은 한국영화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독특한 설정이 돋보인다. 교도소가 배경이지만 아무도 교도소를 벗어나려 하질 않으니 탈옥 영화는 아니고, 죄수들이 교도소 내에서 권력 다툼을 벌이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도 범죄를 저지르고 돌아온다. 장르영화의 관습을 메쳐버린 시나리오작가 출신 데뷔 감독의 재기를 즐겨보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마당을 나온 암탉>(2011), <남쪽으로 튀어>(2012) 등을 쓴 시나리오작가의 연출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든, 소위 말해 ‘쎈’ 장르영화를 들고 나타났다.

=입봉을 준비하던 작품들이 몇번 엎어지면서 이번에는 할리우드 액션영화나 미국 드라마 같은 화끈한 분위기의 영화를 해보고 싶어졌다. 전부터 교도소가 배경인 영화를 고민하던 중에 범죄 소굴인 한 교도소의 죄수들이 밖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돌아가면 완벽한 알리바이가 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보통의 교도소 배경 영화가 주로 탈옥을 소재로 한다면 이 영화는 반대로 인물들이 교도소로 들어가는 설정이다.

=기존 영화의 관습을 전부 비틀고 싶었다. 억울하게 투옥된 사람들의 탈옥 과정이나 죄수를 억압하는 교도관들의 구도를 뒤집어버렸다. 교도소를 학교라 부르는, 온갖 범죄의 기술자들이 모여 새로운 완전범죄를 일으킨다는 설정은 초고 때부터 계속 유지했던 기획 방향이다.

-영화의 시대배경을 1995년으로 지정한 이유도 궁금하다.

=사실 초고는 시점이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교도소라는 공간이 사회나 국가 시스템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척도더라. 엄정한 사회일수록 교도소가 잘 운영된다. 그런 의미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등 각종 대형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또 대통령이 구속되는 등 혼돈의 시기였던 1995년이라면 교도소 이야기가 어울릴 것 같았다. 물론 그때보다 지금이 더 흉흉하지만 말이다. (웃음) 시나리오 쓸 때만 해도 이럴 줄은 몰랐다. 아무튼 차량이나 익호(한석규)가 쓰는 PCS폰 등 당시 소품을 고증하느라 고생했다. 한석규씨는 자신이 연기하는 익호가 사복을 입는 장면이 있다면서 <쉬리>를 찍을 당시에 입고 다녔던 자신의 옷을 가져와 활용하기도 했다.

-한국영화 최초로 옛 장흥교도소라는 실제 공간에서 촬영했다.

=시나리오의 80% 이상이 교도소 배경이라서 세트로 감당할 규모가 아니었다. 국내에서 교도소 장면을 찍으려면 익산 세트장 아니면 해결이 안된다. 그래서 비어 있는 영등포교도소도 찾아갔지만 허가가 나지 않았다. 때마침 옛 장흥교도소가 1970년에 건립된 이후 최근까지 쓰이다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폐허가 됐다. 요새 S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피고인>이 같은 곳에서 촬영 중인데 시기상으로는 우리가 먼저 찍었다. 다른 작품도 촬영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을 하고 나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도소의 이미지가 대부분 할리우드영화 속 이미지인데 진짜 교도소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의도도 있었다.

-실제로 교도소를 가보니 어떤 점이 기억에 남던가.

=처음 교도소에 헌팅 갔을 때 죄수들이 이사가면서 버리고 간 생활용품이나 치약, 칫솔이 널려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가장 눈에 띈 건 벽에 그려져 있던 수많은 낙서들이다. 힘을 내자, 누구 누구를 사랑한다, 밖에 나가면 죽여버릴 인간들 이름도 적혀 있고. 그중에서 한 문구를 꼭 쓰고 싶어서 영화에 집어넣었다. 유건(김래원)이 징벌방에 갇혀 누워 있는 장면인데 벽에 ‘초심불가망’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처음 먹은 마음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잊지 말자.” 영화의 주제와도 맞는 말이었다.

-이 영화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익호를 극악무도한 인간으로 몰아붙여야 했을 것 같다.

=관객이 전혀 본 적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어야 했다. 익호란 이름은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의 주인공 삵의 본명에서 가져왔는데 어릴 때 국어책에서 읽으면서 나쁜 놈이 주인공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 받았던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한국 소설사의 나쁜 놈들, 예를 들면 <태백산맥>의 염상구, <우상의 눈물>의 최기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 등의 계보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어떤 시대가 만들어낸 혹은 자생하는 괴물 같은 존재다. 익호가 경찰 출신 빵쟁이 유건과 가까이 지내는 것도 자기처럼 살아남기 위해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한석규의 연기 변신작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발성과 말투를 확 고쳤다.

=처음 캐스팅 단계 때부터 배우 한석규 고유의 이미지를 확 깨고 싶었다. 사실 그는 <주홍글씨>(2004)에서의 비열한 모습이나 <구타유발자들>(2006)의 악한 연기 등 언제나 조금씩 익호 같은 모습을 보여왔다. (웃음) 아무튼 이번에 익호를 위해서 특유의 사극톤 말투를 다 없애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물론 유건 역시 익호에 대항해 존재감이 밀리면 안 된다.

=익호에 대항하는 유건은 영화의 초반 한 시간 정도에는 느슨한 코미디를 담당해야 했고, 후반부를 위해 체력적으로 액션도 가능한 배우가 해야 했다. 김래원을 캐스팅한 이유는 모든 장르가 가능한 배우였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튜니티>(1970)의 튜니티(테렌스 힐)의 존재감, 혹은 고전 교도소 영화 <폭력 탈옥>(1967)의 루크(폴 뉴먼) 같은 캐릭터를 원했다. 그의 부리부리한 눈빛에 여러 감정을 담을 수 있겠더라. 이 영화는 그의 감정변화를 잘 살펴봐야 한다. 더는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다. (웃음)

-익호가 왜 나쁜 놈이 됐는지, 그의 기원을 과감하게 생략했다.

=원래 시나리오는 익호의 첫 등장부터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난색을 표해 자체 수위 조절을 한 셈이다. 물론 익호가 유건을 만난 이후에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하는 장면도 있었다. 교도소장과의 커넥션에 대한 설정도 있었고.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취사선택해야 했다. 다 들어갔다면 아마 <대부> 같은 스토리가 됐을 거다.

-홀로 시나리오를 쓸 때와 현장에서 연출할 때 어떤 차이가 느껴지던가.

=작가의 버릇인데 현장에서 대본을 제본이 아니라 A4 용지에 출력해서 들고 다녔다. 그래야 활자가 눈에 들어오고 안심이 되더라. (웃음) <돌려차기>(2004) 때 현장 경험 없이 글을 쓰는 게 싫어서 스크립터를 자청해서 해본 적 있다. 그랬더니 굳이 쓸 필요가 없는 불필요한 장면들이 보였다. 그 이후 썼던 시나리오는 점점 현장 맞춤형이 되어갔다. 연출을 하고 싶다 마음먹은 것도 그즈음이다. 내가 쓴 대로 온전히 찍을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직접 지휘해보니 쓴 대로 찍히던가.

=그렇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서 스탭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 “안 되겠는데요?”라는 말이었다. (웃음) “안 된다고? 자, 그렇다면…”으로 말을 시작하는, 그러니까 설득의 과정이 재미있었다. 시나리오보다 연출이 더 재미있다. 혼자 돌파해야 하는 시나리오가 더 힘든 작업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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