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씨네 인터뷰]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감독
2017-03-23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안팎으로 말이 넘쳐난다. 배우 김민희의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부터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둘러싼 구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확히는 두 가지 말들이 있다. 하나는 홍상수 감독의 사생활 주변을 더듬는 말이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란 한줄 시놉시스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영화와 현실을 겹쳐보고 싶은 심정도 이해가 간다. 다른 하나는 영화 속 넘쳐나는 대화들이다. 홍상수의 카메라는 삶에서 영감을 얻고 그때 그때의 반응을 자동 기술한다. 당연히 감독 본인의 삶에서 뽑아왔다는 착시가 일어날 만한 대사들이 가득하다. 이는 쉽고 자극적이며 한편으론 타당한 연결이다.

하지만 홍상수의 영화만큼 언어의 무용함을 절감하는 순간도 드물다. 영화 바깥의 가십은 물론 영화 속 의미심장한 대사들도 서사적인 의미로 고착되진 않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스크린에 옮겨온 것은 결코 설명되지 않을, 순간에 대한 기록이자 감독 자신이 감각하고 받아들인 세계에 대한 솔직한 반응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누군가의 이야기도 감독의 자전적인 고백도 아닌, 온전히 영화라는 덩어리다. 대체로 쓸쓸함을 휘감고 있는 영희(김민희)는 어떤 장면에선 먹먹해졌다가 잠시 화사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격정적으로 토해낸다. 고독하고 필사적인 공기를 두르고 화면을 장악하는 영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이자 영화라 할 만하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본질적으로 해석을 무의미한 작업으로 만든다. 영화라는 형태로 이미 완성된 덩어리를 굳이 해체해서 말로 옮겨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여기에 있는 건 홍상수와 그때 그 장소들의 교감, 그리고 화면과 나와의 교감일 뿐이다. 그 형태와 반응은 모두 달라야 한다. 다를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론 어떤 방식으로든 영화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다만 그 해석은 당신 자신만의 것이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이 영화를 가십의 연장, 감독의 자기변명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굳이 말리고 싶지 않다. 그럴 수도 있다. 다만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로가 더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아마도 홍상수 감독의 입을 빌려 전하는 이 말들 역시 무용할 것이다. 이것은 감독의 해석이나 지침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물음에 대한 감독의 또 하나의 반응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말들이 하나의 영감이 되어 장면과 장면 틈새 숨겨진 길을 열어줄 거라 믿는다. 다만 그 길은 나도, 당신도 혼자 걸어가야만 한다(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으며, 질문과 답변 모두 주고받은 그대로이다.-편집자).

-제목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지만 실제로 밤의 해변이 등장하진 않습니다. 1부는 저녁 어스름의 해변 같고, 2부는 낮의 해변이지요. 그럼에도 왜 ‘밤의 해변에서 혼자’일까요. 월트 휘트먼의 시 <온 더 비치 앳 나이트 얼론>(On the Beach at Night Alone)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시의 내용이 영화를 닮은 것도 같습니다.

=시의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읽고 제목이 맘에 들어서 언젠가 제 영화의 제목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깜깜한 밤의 해변에서 우주와의 사이에 아무 방해물이 없을 때 보통의 인정과 규범과 분별들이 사라지고 원래의 자신을 잠시 느낄 수 있다고 상상한 겁니다. 원래 자신이란 말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관없습니다. 도움이 됩니다, 저에겐.

-이번에도 포스터 제목의 손글씨가 시선을 끄는데요. 감독님이 직접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펜선이 꽤 굵은데 뭘로 쓰셨나요.

=연필로 썼습니다.

-글씨 자체가 하나의 그림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목을 들었을 때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고 읽고 싶기도 하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고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포스터를 보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고 읽는 편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만.

=예, 저는 그렇게 읽습니다.

-‘1’이란 숫자가 뜨고 크레딧이 나옵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의 분량이 끝나면 ‘2’라는 숫자가 나온 후 다시 배우들의 크레딧이 나오고 화면이 시작됩니다. 크레딧을 두번에 걸쳐 나눈 이유가 뭔가요. 두편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싶으셨던 건가요.

=분리는 해도 어차피 연결은 되는 것이고, 그래도 조금 더 분리에 힘을 주면, 이어질 때 느낌이 좋았습니다.

-1부와 2부는 분량도 차이가 나고 화면의 질감도 완전히 다른 느낌입니다. 일부러 균형을 맞추지 않는 건가요. 1부를 박홍열 촬영감독님과 하시고 2부를 김형구 촬영감독님과 진행하신 의도가 있으신지요. 두분의 카메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그건 차이는 있는데 말로는 힘들고요, 당연히 다른 사람이니깐 차이는 있겠지만, 장소와 날씨의 차이가 주는 영향이 더 컸을 거라 생각됩니다.

-영희는 계속해서 여성들과 파트너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 합니다. 1부에서 지영(서영화)에게 ‘나도 여기서 살까’ 넌지시 묻고, 2부에서는 준희(송선미)가 영희에게 ‘넌 참 예쁘다’고 끊임없이 애정을 표시합니다. 여성간의 유대나 관계가 전작들보다 훨씬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 같은데요.

=남자 일반에 대한 어떤 비판적 태도가 있는 거 같습니다. 남자, 여자, 누가 먼저인지, 누가 더 큰 잘못인지, 그건 모르겠지만, 일단 인물 영희의 입장에서 남자 일반에 대해 충분히 실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영화는 인물의 동일성이나 시간의 흐름에 관한 트릭은 없는 것 같지만 정보의 공백이 꽤 있습니다. 1부와 2부 사이 시간적으로나 서사적으로 공백을 주신 이유가 있나요. 그 사이에 무엇을 채워넣을 수 있을까요 혹은 채워넣어야 할까요.

=사람에 따라 다를 거 같네요. 보시는 분의 맘입니다.

-봉봉방앗간 카페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영희의 모습을 보면서 저 순간이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습니다. 선배를 기다린다는 물리적인 순간과 머릿속에선 다른 이를 기다리며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시간이 동시에 한 장면에 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장면은 어떻게 촬영하셨나요. 원래 계획에 있던 장면인지, 아니면 장소를 보고 문득 찍기로 결심하신 건가요.

=생각난 게 아침인가, 그 전날인가 모르겠는데, 하여간 아침에 결정해서 대사(가사)를 썼고, 곡은 갖고 다니는 미니 피아노로 지었습니다.

-1부 마지막에 영희를 들쳐 메고 사라진 검은 옷의 남자는 이제껏 감독님의 영화에서 처음 보는 캐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2부에서 영희와 천우(권해효), 준희가 숙소에 들어갔을 때 검은 옷의 남자는 창문을 닦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중간에 창문을 열고 닫아주는데도 말이죠.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함부르크에 스탭이 도착한 날 테스트 촬영을 하면서 촬영감독인 박홍열씨에게 언덕을 올라가면서 그런 대사를 소리쳐보라고 했습니다. 그게 좋았고, 왜 그걸 시켰는지는 모르겠고, 그래서 본 촬영을 할 때 그 신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을 물어보는 신. 그러고는 그 뒤에 두번 더 검은 옷의 남자가 나옵니다. 왜 그런 인물이 나오는지 설명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신은.

-2부 시작과 함께 극장 안에 앉아 있는 영희를 보여줍니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표정이 울 것만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론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의 극장 안 김민희 배우의 이미지가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붉은 좌석 사이로 혼자 앉아 있는 김민희 배우의 얼굴이 겹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쓸 때.

-이전 인터뷰에서 <옥희의 영화>(2010)부터는 촬영 전체의 얼개를 만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영화를 어떻게 만드실 거냐는 영희의 물음에 감독 상원(문성근)은 “늘 하던 대로 정해놓지 않고 쭉 가는 게 내 방법이잖아. 첫 장면을 찍어놓고 거기에 따라 쭉 가는”이라고 답합니다. 이번에는 어떠셨나요. 촬영 전 어느 정도 설정이 있으셨는지요.

=함부르크에 섭외해놓은 서너곳이 있었고, 김민희씨, 서영화씨, 두 배우가 있었습니다. 그 공간들에서, 그 둘 사이에 가능한, 제가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늙음에 대한 고백이 자주 등장합니다. 지영은 종종 늙음을 한탄하고 준희는 명수(정재영)를 두고 삶을 포기한 것처럼 확 늙었다고 합니다. 영희는 상원에게 ‘감독님은 늙으셨다’고 말하며 ‘저도 늙었어요’라고 답하기도 하죠. 늙음에 대한 반응이 제각각인데 반복해서 묻고 싶은 질문이셨나요.

=지영은 상투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보고 있는 것이고, 아니란 말을 듣고 싶은 맘도 좀 있고, 준희는 명수를 생각하면서, 왜 그렇게 사냐, 왜 그런 여자와 사냐, 그런 생각을 그런 말로 표현한 것이고, 영희는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이고 말하는 사람이니깐, 상원이 정말 그렇게 보여서 그렇게 말한 것일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영희가 스스로 늙었다고 하는 건 괜히 자기보다 덜 예민한, 사회성이 좀더 있는 털털한 어떤 여자들을 흉내내는 표현입니다. 빨리 늙는 걸 좀 바라기도 하고요. 늙음에 대해서 특별한 생각이 있지는 않습니다. ‘남은 삶’이란 말이 가끔 쓸 때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나이이고, 그게 나이든 자의 혜택입니다. 지금을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인물들이 시나 책의 구절을 읽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술자리에 천우가 시인 박종하의 <감나무>를 읽습니다. 한번은 감독 상원이 책의 구절을 읽어주죠. 시 <감나무>는 술집이 감나무집이라서 읽는 건가요. 상원이 영희에게 주는 책은 실제 있는 책인가요.

=밥집의 시는 원래 거기에 걸려 있는 시입니다. 촬영날, 준비하다 눈에 들어와서 두 남자의 낭독을 더한 것입니다, 원래 쓴 데 뒤에. 감독이 읽어주는 책은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란 단편의 마지막쯤의 문단입니다. 촬영 당시 갖고 다니던 책이고, 그 문단을 좋아했습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후 국내 언론에서는 영화 속 대사와 감독님의 삶을 계속 겹쳐서 보려 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이미 한차례 “절대 자전적인 내용을 싣지는 않는다”고 부인하기도 하셨죠.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의 숱한 대사들이 현실과의 경계를 무너트릴 수 있을까요. 무너트려도 좋은 걸까요.

=그런 구분이 중요한 적은 없습니다. 결과물인 영화와 어떤 관객과의 만남만이 중요합니다. 많은 소설가들처럼 영화 만드는 사람이 디테일이나 만드는 자세에서 얼마든지 개인적이고 솔직할 수 있습니다. 그가 그런 기욺 속에서도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게 자전적인 것은 아니겠죠, 그런 의도가 아예 없으니깐요. 여러 층위에서의 뒤섞음, 새로운 배열, 그리고 소스의 불순함이 그걸 자동적으로 보장합니다. 자전적이라는 모든 시도는 애당초 민망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예전 장 미셸 프로동 평론가가 감독님 영화의 가장 뛰어난 점을 ‘정직함’이라고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자기고백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영화는 놀랍도록 솔직하다는 인상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가도 그러지만은 않고,가식적인 인간들한테 소리도 치는 영희의 모습이 사람을 사람으로 온전히 바라보기 위한 필사의 시도들처럼 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말씀이네요!

-두서없는 질문 받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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