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人]
[영화人] <해빙> 엄혜정 촬영감독
2017-03-23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안다고 확신하는 내과의사 승훈(조진웅). <해빙>의 카메라는 승훈의 믿음,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승훈의 인식은 한점 의심 없이 믿을 만한 것일까. <해빙>은 승훈을 시작으로 때론 꿈처럼 몽환적으로, 때론 엽기적인 살인의 민낯으로, 그리고 승훈이 놀라 깨어난 후 바라보는 현실처럼 복잡하게 흐트러진다. 이수연 감독의 꼼꼼한 시나리오를 스크린에 효과적으로 옮긴 이는 바로 이수연 감독과 단편 <텐 텐_Rabbit> <가족 시네마_E.D. 571>을 함께 작업해온 촬영감독 엄혜정이다.

엄혜정 촬영감독이 인물의 심리를 표현해줄 가장 효과적인 재료로 사용한 것은 빛과 어둠의 끊임없는 대비였다. 승훈과 승훈이 살인범이라고 규정하는 정육점 부자 정 노인(신구), 성근(김대명), 그리고 그의 상상 안에서 창조된 인물인 형사 경환(송영창) 등 ‘의심스러운’ 인물들은, 영화의 주요 공간인 변두리의 낡은 병원, 정육점, 승훈의 방에서 때로는 빛에 노출되고 때로는 어둠에 가려진 채 모습을 드러낸다. “한신 안에서 보통 콘트라스트를 일정하게 잡아주는 것이 원칙이라면 <해빙>에서는 대사에 따라 콘트라스트를 모두 다르게 갔다.” 가령 범인을 추적하는 방아쇠가 되는 첫 장면인 내시경실. 무의식중에 살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정 노인이 밝은 공간에 있다면 이를 듣는 승훈은 그늘에 자리한다. 승훈의 시점을 공고히 해줄 방편으로 활용한 아리 틸트-시프트 렌즈의 사용도 흥미롭다. 오직 승훈의 눈이 좇는(형사의 눈, 시체의 머리) 것들에만 초점이 맞다가, 이후 그의 시선이 거두어지면서 다른 배경에도 초점이 주어짐으로써 승훈의 심리와 시선을 일치시키는 효과다.

지지난해 7월 중순 크랭크인. 엄혜정 촬영감독은 안산의 정육식당과 세트로 만든 좁은 병원과 승훈 방을 오가며 그해 여름을 꽁꽁 얼었던 한강이 녹아내리는 이른 봄의 이미지에 오롯이 매달렸다. 완성된 자신의 결과물을 보는 건 지금으로서는 “많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작업”을 확인하는 일이지만, ‘아낌없이 애정을 쏟은 일’이기도 하다. 어느 날 불쑥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영화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지금까지 쭉 이어져왔다. 그는 언제나 “촬영감독으로 입지를 다지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한다. “촬영을 하고 싶었고, 꼭 감독이 되고 싶었고, 이제 첫발을 내디디는 거다. 여성 촬영감독은 멜로만 잘 찍는 줄 아는데, <아수라> 같은 영화도 <트리플 엑스> 같은 영화도 찍고 싶다. 로드리고 프리에토(<알렉산더> <브로크백 마운틴> <사일런스> 촬영)처럼 감독이 원하는 비주얼을 구현하되 자신의 확고한 인장을 남기는 그런 촬영감독을 꿈꾼다.”

태블릿PC

적은 예산, 빠듯한 시간과의 싸움. <해빙>의 촬영기간 내내 엄혜정 촬영감독의 로드맵이 되어준 건 태블릿PC였다. 프리 프로덕션 때 뷰파인더앱 ‘ARTEMIS’와 콘티 작업에 유용한 앱 ‘SHOT DESIGNER’의 덕을 많이 봤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그는 태블릿PC를 통해 감독, 스탭과 소통하고, 자료를 모으고, 플랜 구상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 “차기작을 위해 신형 태블릿PC를 샀다. 계약이 되면 이제 여기 또 새로운 것들을 채워야지. (웃음)”

촬영 2017 <해빙> 2012 <가족 시네마_E.D. 571> 2008 <텐 텐_Rabbit> 2004 <털> 2004 <핑거프린트> 연출 2003 단편 <즐거운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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