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영화 굿즈의 세계로
2017-03-24
글 : 주성철

이번호 특집은 ‘영화 굿즈’의 세계다. 점심시간만 되면 사무실에서 사라져 수돗물로 주린 배를 채우며 남은 돈으로 블루레이와 각종 굿즈를 사모으고 있는 <씨네21>의 거지왕 김춘삼 김현수 기자가 생애 최초의 영화 굿즈로 <우뢰매>(1986) 엽서 세트를 떠올렸던 것처럼, 나 또한 기억을 더듬어보니 특정 영화보다 영화 월간지 <로드쇼>와 <스크린>이 나눠줬던 각종 영화 포스터와 스타 브로마이드가 떠오른다. 부록 때문에 몇권 더 사기도 했었으니까. 그리고 생각해보니 직접 굿즈를 제작하기도 했던 것 같다. 매달 잡지를 두권씩 사서 한권은 보관하고 다른 한권은 마음대로 찢어 스크랩을 하거나 코팅해서 책받침을 만드는데 썼다. 소피 마르소나 피비 케이츠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홍콩 스타들의 얼굴과 영화 스틸로 책받침을 만들어, 차마 팔지는 못하고 친구들에게 선물로 나눠줬다. 돌이켜보면 왜 다 버렸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픈 옛 소장품들이다. 굿즈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때였으니, 그냥 각자 알아서 원하는 걸 만들어 썼던 것 같다.

역시 영화 굿즈는 아니지만, 당시 중·고교 홍콩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아카데미과학사에서 일대일 크기로 만들었던 BB탄 총기 완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실물과 똑같았던)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베레타 M92F, 스미스&웨슨 M645, 레밍턴 870 등을 늘 소지하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등교 시간에 지각하여 선도부 선생에게 걸렸을 때 소지품 검사라도 할라치면 가방에서 총기류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생각해보니 아기자기한 굿즈가 아니라 그냥 무기였다. 그런 추억에 젖어 옛 <로드쇼>를 뒤적이고 있자니, 장국영이 광고 모델이었던 ‘투유’ 초콜릿 광고가 나온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로 시선을 돌려보니 안타깝게도 지난 3월3일 세상을 떴던 토미 페이지가, 오리온의 투유에 대항하기 위해 해태에서 출시했던 ‘아모르’ 초콜릿 광고 모델로 서 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초콜릿을 장국영은 손에 들고 있고 토미 페이지는 입에 물고 있다. 오래전 잡지 광고 페이지에서 마주 보고 있던 두 사람 모두 우울증에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니, 장국영의 14주기 기일을 앞두고 괜히 마음이 심란하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이맘때쯤이면 어쩔 수 없다. 아무튼 굿즈 특집을 준비하느라 한주 내내 사무실과 스튜디오를 오가며 열일했던 김현수, 이화정, 장영엽 기자에게 장국영 10주기 당시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출간 기념 투유 초콜릿 굿즈를 선물해야겠다(유통기한이 너무 지나서 먹고 죽을 수도 있다).

한편, 올해 <씨네21> 신입/경력 정규직 기자 공채 모집 서류 접수는 3월31일(금)로 마감한다. 많은 문의 메일에 답장을 드리고 있는데,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등 서류 양식 외에도 마음이 너무 앞서나간 나머지 향후 면접 요령과 기자로서의 자질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도 많다. 물론 응답할 수 있는 부분 외에는 일절 답을 드리고 있지 않지만, 분명하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글 잘 쓰는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고, 우리의 시선은 보다 후자에 쏠린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취재와 섭외를 포함하여 분쟁조정과 사태수습을 위해 전화기를 붙들고 있거나 사람을 만나야 하는 시간이 글 쓰는 시간만큼 들어도 즐거울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만의 오롯한 글쓰기나 영화인과의 만남이 주는 낭만(?)의 시간은 당신이 기대하는 수준의 10분의 1도 채 안 될 것이다. 아무튼 최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이마의 혹이 계속 커지고 있어 당장 주말에 제거수술을 받을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이며 급마무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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