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현실에 발붙인 SF영화 <라이프>의 매력 탐구
2017-04-05
글 : 장영엽 (편집장)

인정할 건 인정하자. 2017년의 영화 관람 예정 목록을 작성하는 SF 팬들에게, 가장 간절하게 관람하고 싶은 영화는 아마도 <에이리언: 커버넌트>(5월 개봉예정)였을 것이다. 모두가 리들리 스콧의 복귀를 기다리는 이 시점에,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4월 5일 개봉하는 다니엘 에스피노사의 신작 SF <라이프>다. 북미에서 지난 3월 개봉한 이 영화는 영미권 매체의 호평으로 주목을 받더니 급기야 올해 상반기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 10위 안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됐다(인터넷 평점 사이트 메타크리틱 선정). 인류 역사상 최초로 화성의 살아 있는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게 된 여섯 우주인의 사투를 다룬 이 영화는 어떤 이유로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나. <라이프>의 무중력 공간을 유영하며 이 작품의 매력을 한층 깊이 들여다보았다.

미지의 존재는 위험하다. 스티븐 호킹이 경고하고 리들리 스콧이 <에이리언>(1979)으로 외계 생명체와 인류의 끔찍한 만남을 가감없이 펼쳐 보인 이래,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SF 장르 영화의 어떤 클리셰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봐왔다고 해도 미지와의 접속을 시도하는 영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없지만 그들에겐 있을지도 모르는 무엇, 그 1%의 가능성은 늘 감수해야 할 위험보다 달콤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국제우주정거장을 거점으로 화성을 탐사하는 여섯 우주인을 조명하는 <라이프> 역시 수많은 SF영화들이 유산으로 남긴, 미지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의 감정을 함께 안고 출발하는 영화다. 다만 미지의 존재를 바라보는 다니엘 에스피노사의 시선은 낭만적인 스필버그의 그것보다(물론 일부 영화에 해당한다) 리들리 스콧의 비정하고도 잔혹한 필치에 더 가까워 보인다.

러시아와 영국, 미국과 캐나다, 일본. 세계 각국에서 선발된 국제우주정거장(이하 ISS)의 여섯 대원들은 화성 탐사의 일환인 ‘필그림7’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대원들은 임무 도중 외계 생명체가 담긴 샘플을 채취한다. 생물학자인 휴(앨리욘 버케어)는 고군분투 끝에 동면한 생명체를 깨우는 데 성공하고, 여섯 대원들은 인류 최초로 살아 있는 외계 생명체와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지구인들이 ‘켈빈’이라 명명한 이 생명체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다. 켈빈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휴가 실험실에 들어간 날,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움직이지 않던 켈빈은 대원들의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 인큐베이터를 탈출하고, 휴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대원들이 탑승한 우주선은 순식간에 살육의 장으로 변한다.

지극히 납득 가능한 상상력을 무기로 삼다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화성탐사로버 큐리오시티가 외계 생명체를 발견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라이프>는 현실의 사건으로부터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지난 2009년 나사는 네 번째 화성탐사로버 큐리오시티를 발사했고, 2012년 화성의 분화구에 착륙한 큐리오시티는 지금까지 화성의 표면 탐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만약 이 임무 중 외계 생명체가 발견되었고 인류의 기술로 생명체가 성장하기 시작한다면, 이 미지의 존재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이들은 어떤 일들을 경험할 것인가. “100년 뒤에나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라 아주 사실적인 SF영화를 만들고 싶었”(프로듀서 데이나 골드버그)던 <라이프>의 제작진은 우주생물학자와 우주약물전문가, 천체물리학자 등의 조언을 구해 영화의 리얼리티를 구현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래, 20세기 사람들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 그게 <에이리언>이 나오던 당시 사람들이 짐작하고 보길 원했던 미래의 영화였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100년 뒤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당장 20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조차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지금 시대의 젊은 세대에 가장 두려운 건 내일일 것이다. 이 영화는 수백년 뒤가 아니라 바로 내일 일어날 수도 있는 일에 대한 얘기다.” 다니엘 에스피노사는 현실에 발붙인 SF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라이프>는 미래에 대한 놀라운 비전을 펼쳐 보인다기보다 지극히 납득 가능한 상상력을 무기로 삼는 영화다. 이건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자마자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고 싶은 우주정비사, 지구에 있는 임신한 아내와 페이스타임을 즐기는 파일럿이 겪을 법한 이야기다. 혹은 화성의 표면 어딘가에 실제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에이리언> 시리즈를 디자인한 H. R. 기거 스타일의 근사한 외계인을 상상했다면, 화성 생명체인 <라이프>의 켈빈은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일지 모른다. 현미경으로 보아야 겨우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을 정도의 단세포 유기체였던 켈빈은 성장을 거듭한 뒤에도 아메바나 연체동물 같은 느낌의 외양을 유지한다. 흥미로운 점은 화성의 조건 속에서 동면을 취하던 이 외계 생명체가 지구의 생존값을 입력하자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생물학자 휴의 모델이 된 영국의 유전학자 애덤 러더퍼드는 켈빈의 모습을 영화의 제작진과 함께 구상하며 “20억년 전 지구에 살다가 운석의 충격에 의해 방출된, 그래서 지구 출신이지만 수백만년 혹은 수십억년 동안 지구로 돌아가지 못한” 존재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한다. 세포가 분화되지 않기에 신체의 어떤 조직이든 눈이 될 수 있고, 근육이 될 수 있으며, 신경세포가 될 수 있는 켈빈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외양을 지녔지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적응력과 지능으로 <라이프>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차단과 폐쇄의 행위가 선사하는 긴장과 서스펜스

미지의 외계 생명체가 지구인과 비슷한 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설정은 이 영화에 장르적 재미를 더한다. 그런 외계 생명체가 난폭해졌을 때, 그를 멈춰세울 수 있는 방법이 지구인의 생존 조건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켈빈이 호흡할 수 있는 산소를 끊고, 그를 우주로 내보내려는 대원들의 노력은 곧 그들의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도전이자 모험이기도 하다. 상대를 죽이려면, 자신의 목숨도 걸어야 하는 상황, 그렇게 영화 속 외계 생명체 켈빈과 대원들의 목숨(life)은 서로 위태롭게 연결되어 있다. 우주선을 뚫을 정도로 강력했던 <에이리언> 시리즈 속 외계인들의 산성 혈액을 생각해본다면, <라이프>가 미지의 존재로 공포와 두려움을 자극하는 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공포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간적인 공포에 가까워 보인다. 산소가 사라지고, 외계 생명체에게 양분을 빼앗기며 ISS 대원들은 한명씩 목숨을 잃어간다. 여기에 다니엘 에스피노사는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사적인 두려움의 요소를 첨가했다. “<라이프>를 만들 당시 나에게는 두 가지 유형의 두려움이 있었다. 하나는 폐소공포증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처음으로 내가 아버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내 나약함이 아이에게 질병처럼 영향을 미칠 생각을 하니 그 자체로도 너무나 공포스럽더라. 나는 나 자신의 우려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을 법한 두려움을 <라이프>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라이프>는 보는 이의 숨통을 죄여오는 닫힌 공간의 공포를 선사하는 영화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우주선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 작품은 모든 것이 정교한 구획으로 나뉘어 있는 우주선의 폐쇄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무서운 속도로 일행을 추격하는 켈빈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재빠르게 문을 열거나 닫아야 한다. 이러한 차단과 폐쇄의 행위가 선사하는 긴장과 서스펜스가 이 영화엔 상당하다.

<라이프>를 보며 <에이리언>과 더불어 생각나는 영화는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다. 이 영화가 유려하게 구현한 무중력의 상태를 <라이프>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발에 땅을 디딘 인물들을 보여주지 않는 이 영화에서 무중력 상태를 가장 명징하게 인식하게 되는 순간은 켈빈에 의해 누군가가 살해당하는 순간이다. <라이프>가 보여주는 죽음은 참을 수 없이 고요하고 믿을 수 없이 정적이다. 누군가의 자지러지는 비명이나 눈뜨고 보기 힘든 처참한 풍경은 이 영화에 없다. 외계 생명체의 촉수가 누군가의 목구멍을 관통하고, 그로 인해 고체 방울의 피가 천천히 흩뿌려지는 장면을 결코 서두름 없이 보여주는 다니엘 에스피노사의 연출 방식은 무중력 상태에서의 죽음의 방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에이리언>과 <그래비티> 사이, 그 어딘가

호들갑스러운 죽음이 없듯이, 호들갑스러운 인물들도 없다. 라이언 레이놀즈, 레베카 퍼거슨, 제이크 질렌홀 등이 분한 국제우주정거장의 여섯 인물들은 지적이고 순발력이 넘치며 전 지구적 사명감을 가진, 전형적인 과학자/우주인의 모습이다. 다만 개개인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발견한 이 잔혹한 외계 생명체를 지구에 데려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영웅적인 비장함이 가득한데, 그건 <라이프>가 누아르적인 정서를 지니길 바랐던 다니엘 에스피노사의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 물론 비장한 정서가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북미 개봉 뒤 화제가 됐던 이 영화의 충격적인 결말은 <환상특급>(1983),<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90)처럼 서프라이즈 엔딩으로 이 작품을 마무리하길 바랐던 감독이 장전해놓은 마지막 ‘한방’이다. 이 작품으로 단숨에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주목하는 신성으로 떠오른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은 재벌 3세와 마피아의 대결을 다룬 <이지 머니>(2010)로 자국 스웨덴에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를 누르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2012년 덴젤 워싱턴, 라이언 레이놀즈와 함께한 첩보영화 <세이프 하우스>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에스피노사는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서 어떻게 펼쳐야 할지 잘 아는 장르의 스페셜리스트”(<LA타임스>)라는 평을 받고 있다.

<에이리언>과 <그래비티>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할 법한 영화 <라이프>는 새롭지는 않지만 공간과 이야기, 인물과 장르적 장치를 효율적이고 영리하게 배치한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이 작품을 두고 미국 영화평론가 케네스 튜란은 “우리가 이미 먹어봤던 음식이 멋지게 세팅되어 있다”고 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맛있는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라이프>는 기꺼이 숟가락을 들고 싶은, 잘 차린 SF 한첩 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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