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나라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미하일 고미아쉬빌리)이 있다. 독재자인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지금까지 많은 국민들을 죽여왔고, 자신의 자리를 하나뿐인 어린 손자(다치 오르벨라쉬빌리)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어느 날 혁명이 일어나면서 대통령의 편안했던 일상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분노한 국민들이 대통령의 목에 현상금까지 걸자 대통령과 손자는 결국 변장을 한 채 도망다니는 신세에 놓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도주 생활 중 대통령은 자신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영화 그 자체만을 가지고 한편의 영화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다시 말해 그 영화가 만들어진 사회적 배경이나 감독이 처한 상황을 짚어보는 게 중요할 때가 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2014년 작품 <어느 독재자>가 바로 그런 영화다. 마흐말바프는 <가베>(1996), <칸다하르>(2001) 등으로 잘 알려진 이란의 영화감독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와 글을 통해 이란 사회의 어두운 현실, 특히 종교-정치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자연스럽게 그는 이란 권력층의 반감을 샀고 결국 가족들과 함께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지금도 외국에서 살해 협박을 받는 등 큰 고초를 겪고 있다.
사실 <어느 독재자>의 주제 자체는 그리 새롭지 않다. 이 영화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반성을 해야 하며, 의미 없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부하기까지 한 단순한 주제다.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 역시 특별하지 않다. 때로는 감독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상황이나 대사 때문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며, 현실의 어두움을 강조하기 위해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작위적인 상황을 설정하여 자연스러운 몰입을 막기도 한다. 하지만 암울한 현실을 소재로 택한 다음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결말에 도달하기까지 마흐말바프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쳤을지 생각하면 상투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조금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비록 이 영화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지만, 누군가를 비난하며 날선 분노를 드러내는 대신 남은 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 감독의 결단에 대해서는 존중의 의사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