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빵집에서 인터뷰를 하게 됐다. 알고 보니 ‘빵돌이’ 권혁수의 단골 빵집이었다. 최근 권혁수는 <원나잇 푸드트립-먹방레이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며 ‘야무지게 먹는다’는 게 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잘 먹고, 많이 먹고, 쉼 없이 먹는 그야말로 ‘먹는 존재’다. 어쩐지 오늘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미세먼지는 가시지 않았지만 볕도 좋고 실내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야외 테라스로 자리를 잡았다. “하늘이 허락한 테라스!”라며 권혁수는 오랜만의 휴일을 만끽한다. 물론 인터뷰는 빵을 먹으면서 진행됐다. <SNL코리아> 시즌2를 시작으로 시즌9까지 출연한 권혁수를 단박에 알린 건 ‘더빙극장’이라는 코너.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속 나문희의 눈물겨운 외침 ‘호박고구마!’를 완벽하게 따라하며 예능인의 끼를 발산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권혁수를 예능인으로만 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연기를 전공했고 평생 연기하며 살겠다는 배우이기도 하다. “다 잘하고 싶고, 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욕심쟁이인가보다! 움하하하.” 권혁수, 그는 여전히 허기지다. 예능도, 연기도 모두 소화 가능하니 채워갈 일만 남았다는 듯이. 배포만큼은 이미 충분한 것 같다.
-<원나잇 푸드트립-먹방레이스> <나 혼자 산다> 출연으로 잘 먹는 권혁수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했다.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 <원나잇 푸드트립-먹방레이스>는 시간만 맞으면 무조건 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걸로 유럽도 처음 가봤다. <나 혼자 산다> 덕분에 집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었다. 지난해 9월에 소속사에 들어가고 올해 처음 독립하기까지 바쁘게 지내다보니 집에선 잠만 잤다.
-지금 자신이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즐거이 말하며 계속 먹는데 정말로 행복해 보이더라.
=자기 합리화를 할 생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케이크를 잘라먹는 이유를 모른다. 다 먹을 걸 왜 굳이 자르지? 내가 그만큼 맛있게 먹어서일까. 보는 사람들도 기분이 좋아지나보다. 아, 근데 요즘 계속 먹어서 한달에 1kg씩 찌는 것 같다. 한때 100kg도 넘게 나갔는데…. 역시 평생 다이어트다!
-오늘은 뭘 좀 먹고 나왔나.
=<나 혼자 산다>에서 먹은 저염식 샌드위치와 초코 시리얼. 하루 세끼 나눠서 먹어야 하는데 먹다보면 한끼에 다 먹는다. 난 배가 고파서 자다가도 일어나 먹고, 먹다 잠들기도 한다. 아, 빵이라도 시켜둘 걸 그랬나보다. 잠깐만! (빵을 골라와서 빵을 먹으며 인터뷰를 이어갔다.-편집자)
-<씨네21>의 인터뷰 제안을 받고, ‘내가 이걸 해도 되나’ 싶었다고.
=영화로 빨리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에 족발집 배달원으로 아주 잠깐 등장한 게 다다. 영화를 정말 하고 싶다.
-대학 동기인 배우 조복래의 소개로 장진 감독의 생일파티에 갔다가 감독의 눈에 띄어 <SNL코리아> 시즌2(2012)에 합류한 걸로 안다.
=파티에 뒤늦게 합류해 내 딴에는 분위기를 맞춰보겠다고 파티장에 네발로 기어들어갔다. 그 자리에 계신 장진 감독님, 예지원, 정웅인 선배님이 나를 충격적으로 기억하셨던 것 같다. 그때가 서울예대 연극과 3학년 재학 중이었는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귀하잖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 안에 있는 걸 보여드리고도 싶었고. 그렇게 데뷔를 해서 병풍 배역부터 차근차근 마스터해 지금까지 왔다. 배역의 크기만을 생각했다면 견디지 못했을거다. 매회가 연습이라 생각한다.
-방송에서 본 권혁수는 긴장하는 기색 하나 없이 여유가 넘친다. 얄미울 정도로.
=아마 배가 부른 상태였을 거다. 움하하하. 내겐 먹는 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또 하는 일이 웃음 많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니 굳이 ‘즐겁게 임하자’고 하지 않아도 즐겁다. 그래도 생방송인 <SNL코리아>는 여전히 긴장된다. 신동엽, 유세윤 선배들과 달리 난 애드리브는 꿈도 못 꾼다.
-<SNL코리아> 시즌7의 ‘더빙극장’에서 며느리에 대한 설움이 폭발해버리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나문희를 따라해 ‘인생연기’를 선보였다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돼줬다. 실제로 <거침없이 하이킥!>이 방영되던 땐 군대에 있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이번에 준비하면서 챙겨보니 시트콤이 되게 재밌더라. 우리가 겪을 법한 일들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잖나. 그 당시엔 없던 말이지만, ‘사이다’ 같은 장면이 많다. 나문희 선생님의 ‘호박고구마’도 그렇다. 가족끼리 감정이 쌓여가던 중에 말도 안 되는 말, ‘호박고구마’로 감정을 표출하니. 극중 문희가 얼마나 기가 눌렸으면 그랬겠나 싶어서 안타까움을 얼굴에 한껏!
-‘더빙극장’을 통해 <개구리 왕눈이> <들장미소녀 캔디> <웨딩피치> <올림포스 가디언> 등의 대사를 더빙하고 인물의 표정과 동작을 완벽히 소화했다. 관찰력과 표현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 놀리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친구의 꼬투리를 잡아서 한 학기 내내 놀리곤 했다. 하다 하다 만화 캐릭터까지 놀리게 될 줄이야! 그러면서 나도 사람들에게 놀림 받고. (웃음) 지금은 ‘더빙극장’의 본질이 많이 흐려진 것 같아 아쉽다. 애초에는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등의 명장면에 대한 오마주로, 연기자의 이해와 재미를 더해 패러디를 하자는 거였다. 요즘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건데. 그 나름의 보람도 있다. <피구왕 통키> 땐 방청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따라 부르더라. 그런 경험이 흔하진 않잖나.
-준비와 연습 시간이 꽤 들 것 같은데.
=<웨딩피치>는 2~3일 전에, <피구왕 통키>는 녹화 전날 원고를 받았다. 잘 모르는 캐릭터는 최대한 빨리 조사해서 살펴보고 아이디어를 낸다. 만화이다보니 사람의 몸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동작도 많다. 내가 몸을 잘 쓰는 편이 못 돼 만화의 ‘익사이팅함’을 표현하기 어렵다. 또 생각보다 만화 캐릭터의 표정이 많지 않다. <웨딩피치>를 할 때 제작진이, “굉장히 ‘퓨어한’ 느낌으로 해주세요~”, “뭔가 앙큼하게 해주세요~”라고 한다. ‘그게 뭐지?’ 싶지만 일단 현장의 감으로 막 한다. 촬영장을 보게 된다면 정말 재밌을 거다. 겉으로는 드레스에 앞치마를 하고 있지만 사이즈 문제로 뒤는 잠그지도 못한 ‘오픈 드레스’다. 내가 지금 껍데기로만 연기하는 건가? 여러분은 지금 전형적인 거죽 연기를 보고 계신 거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이후 드라마 <운빨로맨스> <미씽 나인>에 출연했고 5월 방송예정인 <써클: 이어진 두 세계>에도 등장한다. 배우로도 꾸준히 활동 중이지만 아직은 예능인 권혁수가 더 익숙하다.
=내 욕심이면 욕심인데 연기도 하고 방송도 하고 개그도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이름을 좀더 알려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 드라마로 더 많이 인사를 드리려 한다. 예능으로 굳어진 ‘웃기는’ 이미지가 부담이 되지 않느냐고 묻곤 하는데 재밌는 이미지로 내가 최고가 되면 된다. 오히려 내 나이대에 굳건한 이미지 하나를 갖고 있다는 건 장점이 아닐까. 콘텐츠도, 채널도 다양해져서 재밌는 이미지라고 불리한 건 없어 보인다.
-배우로서의 포부는 뭔가.
=‘믿보권’(믿고 보는 권혁수)이 돼야지. <운빨로맨스> 때 황정음 선배를 보며 깜짝 놀랐다. 왈가닥 이미지로만 생각했는데 대단히 꼼꼼히 준비하더라. 멋져 보였다. 괜히 ‘믿보황’(믿고 보는 황정음)이 아니더라.
-학창 시절부터 록음악, 특히 김경호의 광팬이었다. <듀엣 가요제>에서 김경호와 <사랑했지만>을 함께 부르며 소원 성취를 했다.
=그렇게 떨리는 무대는 난생처음이었다. 무대 뒤에 심장을 놓고 온 기분이었다. 김경호 선배와 한 무대에 서다니. 경호 선배가 가끔씩 응원 문자도 보내주신다. 노래 잘하는 분들은 다 좋다.
-유세윤과 함께 김경호에 대한 헌정 의미로 <금지된 경호>를 불렀다. 음반 제의도 꽤 받지 않았나.
=없진 않았다. 하지만 해도 될지 스스로 의심이 간다. 그저 재밌는 이슈가 있어서 음악을 하기에는 까부는 것으로밖에 안 보일 것 같다. 내가 피처링을 해서 가수의 본질을 흐리진 않을지. 음악을 배울 기회가 돼 해도 괜찮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게 되면 그때 도전을 이어가겠다.
-나문희 선배가 출연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나가고 싶다고 말한 뒤에 카메오 출연을 했다. 평소 ‘말하는 대로 실현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올해는 뭘 하고 싶다고 말하겠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고, 조금씩 인정받고, 내 역할이 많아지길 바란다. <SNL코리아>에서 드라마로, 또 영화로 하나씩. 도전해서 깨지면 깨지는 거고. 깨진 만큼 얻겠지. 평생 연기하는 게 목표니까 나의 도전은 계속된다.
권혁수의 모든 것
권혁수에게 호박고구마란? 권혁수의 인생빵은? 권혁수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곡은? 권혁수의 노래가 듣고 싶다면? 권혁수에게 궁금한 이 모든 것을 영상으로 담았다. 4월 13일부터 유튜브와 페이스북 <씨네21>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올해 <SNL코리아>에서 권혁수는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할 것 같다.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좀더 꺼내고 싶다. ‘더빙극장’도 놓치지 말아야겠지만 좀더 와일드한 모습으로. 신학기니까 대학물을 해보면 어떨까. 학생 역을 소화하려고 피부도 탱탱하게 유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