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의 빛은 여간 작업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고, 밤 장면이 많은 데다가 실내든 로케이션이든 쉬어갈 수 있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그가 직조해낸 빛은 새벽, 아침, 낮, 석양, 밤 등 시간의 흐름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빛을 사용한 것도 그의 원칙이었다. 안기부 실장인 규남(장혁) 같은 권력자에게는 밝은 빛을 준 반면, 성진(손현주) 같은 보통사람에게는 하이라이트가 센 빛을 주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정해지 조명감독이 즐겨 사용한 조명은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텅스텐과 HMI(데이라이트)이고, 30구 같은 텅스텐 라이트를 투입한 낮 신이 몇 있다. 그의 세심한 조명 덕분에 <보통사람>의 룩은 시대극 특유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보통사람>뿐만 아니라 <원라인>과 <해빙> 또한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원라인>은 “콘트라스트의 변화를 통해 인물이 겪는 상황을 표현”해냈다. 세트 촬영 하나 없이 모두 로케이션 촬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도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모든 공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인 까닭에 창 밖에 덴캉(카메라가 박진감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세트 벽을 부수고, 복도를 늘리는 작업.-편집자)을 할 수 없어 무척 힘들었다(웃음)”는 게 그의 회상. <해빙>은 빛과 어둠의 끊임없는 대비를 통해 “그림자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작품이다.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세 작품은 지난 3월 연달아 개봉했다. “촬영감독이 모두 달라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람 복은 있나보다. (웃음)”
그는 <찌라시: 위험한 소문>으로 조명감독에 입봉하기 전에 신경만 조명감독의 조수 생활을 오래 했다(기자가 그와 함께 일한 촬영현장이 신경만 조명감독이 조명을 맡은 <사랑>(감독 곽경택, 2007)이었다). 그의 다음 영화는 최근 촬영이 끝난 <미쓰백>(감독 이지원·출연 한지민, 이희준). “명암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게 도전”이었고, “삼파장 전구, 형광등 등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조명을 투입했고 한지민씨가 와일드하게 나와야 하는 까닭에 톱 라이트를 많이 썼다”고 하니 영화가 개봉하면 이 점을 유심히 보면 되겠다. 황기석 촬영감독과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의 빛을 좋아한다는 그에게 이상적인 조명은 단순하다. “배우와 카메라가 제약 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조명”이다. 또 조명감독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풀숏을 통해 좋은 화면을 구현해내는 것이다.”
조명부 퍼스트 정호남
직접 겪어본 정해지 조명감독은 인성이 참 착하다. 그게 박홍열(<찌라시: 위험한 소문> <간신>), 엄혜정(<해빙>), 김성철(<보통사람>), 강국현(<원라인>) 등 동료 촬영감독이 그를 찾는 이유다. 그에게 10년 넘게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조명부 퍼스트 정호남씨는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실현”시켜주는 동료이자 “현장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동생”이다. “언제까지 함께 작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영화 2017 <보통사람> 2017 <해빙> 2016 <원라인> 2014 <그녀의 전설> 2014 <간신> 2013 <찌라시: 위험한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