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쓰레기랑 결혼할 줄 알았어.” 배우 김영애를 <변호인>(2013) 개봉 당시 인터뷰한 적 있다. 지금은 천만 영화로 기억되는 <변호인>이 막 600만 관객을 돌파한 시점이었다. 마침 그때가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큰 인기를 끌던 때였는데, 거의 매회 빠지지 않고 보신다고 해 놀란 기억이 있다. 드라마에서 나정(고아라)이 칠봉(유연석)이 아닌 쓰레기(정우)와 잘될 줄 알았지만 “나는 쓰레기와 칠봉이를 반반씩 섞어놓은 남자가 좋아요”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응사뿐만 아니라 당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최고 유행어였던 개그맨 김준호의 ‘자나~ 자나~’도 (나중에는 좀 피곤할 정도로-_-;) 꽤 난사하셨던 기억이 있다. 소속사에서 관리를 잘해주냐고 여쭤봤더니 “잘 케어해주잔나”, 인터뷰가 길어져서 힘드시진 않냐고 했더니 “괜찮잔나, 끄떡없잔나” 그런 식이셨다. 어쨌건 평소 좋아하던 배우를 직접 만났을 때, 환상이 깨지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호감으로 변하게 되는 몇 안 되는 인터뷰 중 하나였다.
지난 창간 22주년 기념 1100호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여성 캐릭터’ 설문에서 흥미로운 소수 의견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무릎을 탁 쳤던 리스트는 바로 공포영화 <깊은 밤 갑자기>(1981)에 출연한 김영애 선생을 포함시켰던 허지웅 평론가의 답변이었다. 나 또한 그 영화에서 김영애가 장식하는 마지막 장면은, 좀 많이 과장을 보태서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1983)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왕십리>(1976), <설국>(1977), <깃발 없는 기수>(1979) 등에 출연하며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 트로이카를 위협하는 배우로 성장할 것 같았던 그녀는 “20대의 나는 너무 외골수에 내성적이라 당시 거친 ‘영화판’과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며 사실상 영화계를 떠났다. 그러다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던 시절 연출부였던 곽지균 감독님이 방송국에 무려 3번이나 찾아와 어쩔 수 없이 출연했다”는 <겨울 나그네>(1986)에서 기존 TV드라마 이미지와 사뭇 다른 클럽 포주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판에 곽지균 감독님처럼 점잖고 괜찮은 남자들만 많았어도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그의 이른 죽음에 안타까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와 TV드라마를 오가며 최근에는 <카트>(2014),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2015), <판도라>(2016) 등으로 활발하게 극장가를 누볐다.
인터뷰 당시 쓰지 못한 내용 중에는 ‘한국의 메릴 스트립처럼 되시는 모습을 그려본다’는 내 얘기에 대한 답이었다. 실제 메릴 스트립(1949년생)보다 두살 어린 1951년생으로 연배도 비슷할뿐더러 TV드라마 <로열 패밀리>(2011)의 그룹 회장 공순호나 <메디컬 탑팀>(2013)의 카리스마 넘치는 병원 부원장 신혜수를 연기할 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메릴 스트립을 많이 떠올리셨다고 했다. 사실 그런 얘기를 몇몇 인터뷰에서 하신 적도 있지만, 하필 그때가 <변호인>에 출연하며 처음 ‘악플’이라는 것을 겪은 뒤라 “그런 비교가 나갔다간 큰일 날 것 같다”며 “다음에 작품이 더 좋게 많이 쌓였을 때 꼭 그렇게 써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랬으니 그로부터 2년 뒤 <어바웃 리키>(2015)의 메릴 스트립을 봤을 때의 기분이란… 결국 쓰지 못한 말을 곱씹으며,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던, 가수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멋지게 부르셨던 10분짜리 단편 <실연의 달콤함>(2013)을 찾아보시길 권한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