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믿음을 믿음
2017-04-20
글 : 노덕 (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 마이자 (일러스트레이션)

새로운 작업실로 이사하면서 필요한 것이 끝없이 생겨났다. 커다란 창문 앞에 책상을 들여놓았고 책상 앞을 떠나지 않으려고 허리가 편하다는 의자를 배치했다. 집중력을 높일 조명도 잊지 않았다. 그래, 이제 작업만 시작하면 되는데. 커피머신 하나만 있으면 완벽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검색에 들어갔다. 창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공기가 맑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작업실 근처엔 4차선 도로가 있다. 그 때문인지 집 안엔 먼지가 자주 쌓이는데 덕분에 커다란 창문을 여는 데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창‘문’이 아닌 일광용 창으로 전락한 유리를 통해 밖을 보다보면 이 먼지들의 주범이 과연 저 쌩쌩 달리는 차들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곤 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그 실체적 회색빛 공기는 너무 묵직하게 다가와 혹시 바다 건너 대륙에서 생겨난 아이들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까지 든다. 때문에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연다는 것이 용기를 넘어 무모함과는 다른 무식에 가까운 행위처럼 느껴진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유난을 떤다고 속으로 비웃었던 것 같은데…. 난 방진마스크 구입처를 알아보고 있었다. 외출이 고민될 때는 미세먼지 알림앱을 연다. ‘보통’ 혹은 ‘좋음’으로 나오는 앱을 그닥 믿지도 않으면서. 얼마 전 뉴스에서 백령도발 미세먼지 수치 전송과정에 오류가 나서 그동안 잘못된 데이터가 알려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본래의 것보다 1/10 수준으로 발표된 것이었다는 충격적 소식이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럼 그렇지’라는 체념이 들려왔다. 발로 땅을 밟는 것처럼 머리 위에 하늘이란 기본으로 당연히 주어지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 당연한 권리를 빼앗긴 기분이란 분노보다 무기력에 가까운 것이었다. 누군가는 “평생 살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민을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익명의 글이었다. 봄소풍은 더이상 반갑지 않은 말이 되었다. 이렇게 미세먼지가 많은데 봄소풍을 추진한다는 유치원의 가정통신문에 부모들이 속앓이를 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밖을 나서지 못한다면 감옥 안과 무엇이 다를까.

각자의 감옥에 갇힌 우리를 보며 영화 <미스트>(2007)가 생각났다. 어느 날 갑자기 몰려온 안개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마트 안에 고립된다. 그들에게는 마트 밖, 그러니까 짙은 안개로 뒤덮인 외부는 공포, 그 자체다. 안개 속에 꼬리 달린 괴물이 있다지만 보이질 않으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 보이지 않는 막연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공포심을 건드리는 원초적 설정인지. 그에 대한 확신은 <미스트>의 엔딩 장면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나는 커피머신에서 방향을 선회해 공기청정기를 알아보기로 한다. 한동안 이 감옥 안에서, 이 공포 속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공기 청정기에 미약하게 의지해보기로 한 것이다. 내겐 그 기능에 대한 믿음 역시 한참 부족하지만 믿음 자체가 주는 위안의 힘을 알기에 커피머신보다는 내 집중력에 도움을 주리라는 믿음이다. 그러고보니 <미스트>에 왜 종교에 의지하는 캐릭터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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