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왕의 전설은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샘이다. 서구 판타지 문학의 근간을 이룬다고 봐도 좋은 아서왕 이야기는 6세기 켈트족의 영웅담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여러 차례 각색을 거쳐 중세를 상징하는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성검 엑스칼리버와 마법사 멀린의 신비, 랜슬롯, 퍼시발, 트리스탄 등 원탁의 기사들의 무용담, 기네비어 왕비를 중심으로 한 로맨스 등 다채로운 면모를 품고 있는 전설인 만큼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됐다. 가이 리치 감독의 <킹 아서: 제왕의 검>에 앞서 아서왕의 전설을 다룬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 감독 테리 길리엄, 테리 존스
아서왕의 전설을 변주한 영화 중 가장 멀리 나간 영화를 꼽는다면 <몬티 파이튼의 성배>를 빼놓을 수 없다. 텔레비전 쇼에서 인기를 얻은 코미디 집단 몬티 파이튼팀은 급기야 성배의 전설까지 건드렸다. 시작부터 끝까지 예측을 불허하는 코미디는 금기를 넘나들며 정치, 사회를 풍자해나간다. 신화적인 영웅들이 거침없이 망가지는 모습은 묘한 쾌감을 안긴다. 그 유명한 만렙토끼와의 대결은 명불허전.
<엑스칼리버>(1981) 감독 존 부어먼
원작과 기본에 충실한 정석. 손꼽히는 비주얼리스트 중 하나인 존 부어먼의 손끝에서 탄생한 만큼 아서왕의 여정을 어떻게 우아하고 화려하게 보여줄 건지에 집중했다. 역동적인 전투 장면보다는 신화 속 여정의 한순간 한순간을 사진으로 옮기듯 미술과 연출에 공을 들인, 문자 그대로 전설의 재현이라 할 만하다.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은 주인공,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들이 대서사시에 나올 법한 대사들을 읊조리는 걸 듣노라면 조금 오글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다보면 이 허세와 과장이 신화와 전설의 아우라로 채워져 가는 걸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CG가 없던 시절이기에 구현할 수 있었던 스펙터클이 있다. 존 부어먼의 큰딸(호수의 정령 역)과 둘째딸(이그레인 역), 아들(어린 모드레드 역)까지 총출동했다.
<카멜롯의 전설>(1995) 감독 제리 주커
로맨스의 끝판왕. 숀 코너리가 아서왕으로 출연하고 리처드 기어가 자유기사 랜슬롯, 줄리아 오몬드가 기네비어 왕비 역을 맡았다. 아서왕보다는 랜슬롯과 기네비어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춰 각색했다. 아서왕의 전설과 모험을 기대한 이라면 다소 당황할 만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변주와 확장이 가능할 정도로 풍성한 캐릭터를 자랑하는 게 아서왕의 전설이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꽃미남 리처드 기어의 리즈 시절을 확인할 수 있다.
<킹 아더>(2004) 감독 안톤 후쿠아
신화가 아닌 사실적인 전투에 방점을 찍은 영화. 로마제국이 떠난 5세기 브리튼섬을 배경으로 앵글로색슨족의 침략에 맞서 켈트족의 영웅으로 우뚝 선 아서왕의 이야기를 담았다. 물론 사실감을 강조한다고 했지만 정확히는 시대를 달리했을 뿐 어디까지나 팩션이다.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을 맡은 만큼 색슨족과의 대규모 결투와 검과 검이 부딪치는 사실적인 액션이 포인트. 사실을 강조한 탓에 역사왜곡 논란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