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영화제 통역 베테랑 김고운·배경복·이지현·장택수 통역가를 만나다
2017-05-17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30분 세계, 가장 필요한 건 센스
배경복, 장택수, 이지현, 김고운(왼쪽부터).

하루 평균 관객과의 대화(GV)가 무려 24회였다고 한다. 얼마 전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말이다. 전년 대비 20%가 더 늘어난 수치다. 황금연휴가 계속됐고, 게스트가 많았고, 관객과 스킨십을 더 제공하고자 하는 영화제의 뜻이 더해진 결과다. 한회 30분. 게스트와 관객이 상영영화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라이브 토크인 GV 행사는 영화제를 생생하게 만드는 활력소다. GV 시작 전 상영관 앞에는 게스트뿐 아니라 행사 진행 모더레이터, 영화제 프로그램팀, 그리고 전세계에서 온 게스트와 관객의 ‘입’이 되어줄 통역가들이 함께한다. 모더레이터로, 또 <씨네21> 데일리를 만들면서 이들 통역가들은 이제 영화제에 가면 언제나 함께 일정을 나누는 동료이자 스탭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영화제 전문통역가’라는 직업은 없지만 일년 내내 그 ‘일’이 생활과 커리어의 한 부분이 된 사람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네명의 통역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늘 다른 이들의 말을 전하던 그들에게서, 그들의 말을 들어보았다.

이지현 이화여대 국제학부 졸업. 2005년부터 영화제 통역을 시작, 올해 13년째다.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BS국제다큐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 인천다큐멘터리포트 등에 참여. 상사 주재원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홍콩 출생, 한국, 상하이, 대만 등으로 거주지를 옮기며 ‘역마살’ 낀 삶을 살았다고. 어릴 때 H.O.T를 ‘핫’으로 읽어 한국 친구들에게 놀림당하며 ‘무늬만 한국인’인 삶을 살았다. 대학 때 기업체 임직원 자녀 대상 영어캠프에 참여, 그때 같이 일한 분이 인연이 되어 부천국제영화제 일을 시작했다. 영화제 일을 하면서 한국어도 함께 늘었다고.

-전쟁 같은 영화제 일과를 보면 통역가들이 그 자리에 항상 함께한다. 그 탓에 일정 동안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을 텐데. 보통 영화제에서 하루에 얼마나 통역을 하나.

=배경복_ 내일 GV 6개에 인터뷰 일정도 잡혀 있다. 내일은 정말 하루종일 달려야 한다.

=김고운_ 하루에 8편까지 해봤다. GV 6개, 인터뷰 2개. 어떤 날은 인터뷰 통역만 내리 6개를 한 적도 있다.

=이지현_ 인터뷰만 하면 그래도 수월한 편이다. 이동 없이 한자리에서 하니까. 그런데 GV는 동선이 바뀌니 다들 메뚜기처럼 뛰어다닌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센텀시티 상영관에서 하면 엘리베이터 타는 게 전쟁이다. 엘리베이터가 늦게 오면 피가 마른다. 그땐 몇층이든 에스컬레이터로 돌진하는 거지. (웃음)

=장택수_ 그래도 요즘 부산국제영화제는 해운대에서 주로 하니 괜찮다. 예전에 남포동에서 많이 할 때는 해운대를 오가며 택시 타고 가다가 늦어서 낭패를 겪기도 하고, 별일이 다 있었다.

김고운_ 정말 급할 때는 영어를 하는 프로그래머가 대타로 가기도한다. 그렇게 일정 많은 날은 ‘수잔’을 ‘세라’라고 잘못 말하기도 하고. (웃음) 그래서 영화제에서 좀 여유를 챙기라고 기간 중에 하루정도는 GV 하나만 주곤 했다. 요즘은 휴일도 많고, 영화제 기간도 길어지고, GV도 늘면서 그런 날이 없어졌지만 말이다. (웃음)

장택수_ GV뿐 아니라 세미나나 포럼을 하는 날도 있다. GV보다 시간도 길고 준비할 자료도 많으니 정말이지 그날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모더레이터로 참여하고, 영화제 데일리 작업도 하면서 지금 네분은 매해 국제영화제들에서 늘 마주치는 영화제 ‘고정’ 얼굴이 되었다. 영화제 통역 경력은 어느정도인가. 영화제 말고 다른 통역 일도 병행하고 있는 걸로 안다.

배경복_ 국내 영화제에 전부 한번씩은 발을 담근 것 같다. (웃음) 대학 때 한·일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 프로젝트 통역, 번역을 시작으로 애니메이션쪽 통역 일을 하면서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로 영화제와 인연이 닿았다. 전주국제영화제도 7~8년이나 됐다. 원래 <아이리스> 같은 드라마 해외 촬영 때 현지에서 어레인지를 하는 드라마 코디네이터 일을 했다. 일반 회의 통역도 하고, 필명으로 일본어 학습 교재 시리즈도 냈다. 아무래도 내가 쓴 교재는 영화 관련 예문이 많은데, 예문을 보니 그때그때 통역할 때 상황이 읽히더라. (웃음)

이지현_ 2005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시작으로, 올해로 영화제 통역 13년차다. 대학교 2학년 때 시작했는데, 부천에서 만난 분이 부산국제영화제로 이직해서 다시 불러주면서 부산도 하고 이후 영화제 통역 일을 쭉 하고 있다. 충무로국제영화제는 가든파티통역으로 갔다가 GV 일정이 펑크나서 대타로 하기도 하고. 통역대학원 나온 전공자가 아니라서 매번 GV 시간이 바로 면접이나 마찬가지였다.

김고운_ 면접은 모든 통역의 운명이지 싶다. (웃음) 난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이었다. 이듬해 전주국제영화제 때 오고 그때부터 지금껏 영화제 일을 했다. 한해 연락 오는 영화제가 20개 정도이고 그중 15개 영화제까지 참여해봤다. 원래 기업, 방송통역을 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 <씨네21>도 구독했었고, 대학생 때는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라이브 플래쉬>(1997)를 보겠다고 밤새워 표 끊은 기억도 난다. 줄 안 서고 표 구하고 뭔가 다르게 영화제에 올 수 있는 방법이 없나 했더니 지현씨가 교통비도 주고, 영화도 볼 수 있고, 숙박도 해결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 그땐 영화제 통역이 프로그래머가 골라주는 영화만 보는지 몰랐다. (웃음)

장택수_ 나는 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선배 소개로 2004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통역을 하면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서울환경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로 이어졌다. 일반 국제회의, 세미나 통역도 하고 있고 영화제는 1년에 대략 6개 정도 참여한다. 영화가 좋아서 하는 것도 있고, 같이하는 분들과 인연이 생겨 그게 좋아서 하는 이유도 크다. ‘올해는 영화제가 언제 열리나, 나를 불러주려나’ 하면서 그 어떤 보장도 없지만, 일단 연초가 되면 달력에 1년 영화제 스케줄을 체크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웃음)

김고운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졸업. 신문사 스포츠 사업팀 근무, 이후 프리랜서 통역가로 기업, 방송국, 정부 기관, 법정 등에서 활동해왔다. 영화제 통역은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부터.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EBS국제다큐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인천다큐멘터리포트 등에 참여. 대학 때 미국의 한 인턴십에 참여했다가 영어에 매진. 인턴 활동 5개월간 입안에 모래주머니까지 넣고 독하게 발음 연습을 했다. 이후 스코틀랜드 서머캠프 요트 가르치기, 아일랜드 뉴스 통역,2002 한·일월드컵 코디네이터 등 영어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다녔다고.

영화와 무대가 주는 자극의 힘으로

-영화제 통역은 에이전시나 협회 같은 것이 없나? 함께 활동하면 그런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을까.

김고운_ 영화제 통역은 통역가들이 하는 일 중 보수가 가장 적은 분야다. 영화제마다 금액이 상이하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에이전시가 떼갈 수 있는 금액 자체가 안 된다.(웃음)

배경복_ 기본적으로 이 일도 통역 일이지만 통역의 일반적 보수와는 조금 다르다. 일본 게스트들은 수가 적어서 하루에 한건 정도만 할 때도 있다. 그러면 영화제에 와서 버는 금액보다 쓰는 금액이 더 많다. (웃음) 그런데도 영화가 좋아서 오게 된다. 이 일이 돈을 많이 준다고 더 열심히 하고, 돈을 적게 준다고 안 하고 그렇게는 안 된다. 똑같이 준비하고 일한다.

김고운_ 그래서 우리 중에 100% 영화제 일만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럴 수 없는 구조다.

장택수_ 한편으로는 영화제 일을 하다보면 이 일을 계기로 관련한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영화 제작사와도 연계돼 일하게 되고 또 미술관 일도 하게 되고 그러더라.

-비용적인 부분을 상쇄할 만큼 영화제 통역이 주는 매력이 있을 것 같다.

김고운_ 처음 영화제에 갔더니 열흘 동안 통역 24개를 배정해주더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허우샤오시엔 감독, 배우 줄리엣 비노쉬 등의 게스트와 야외무대, GV, 인터뷰를 하는데, 끝나고 “나 대학원 들어간 기분이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아찔하더라. 그때 놓친 말들이 정말 많았을 거다.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3부작이 뭔지도 몰랐고, 촬영감독을 카메라맨이라고 통역하고 그랬다. ‘망쳤구나’하면서도 무대에 올라가서 해내는 내가 뿌듯하더라. 이 일을 하기 전 몇년간은 긴장 없이 살다가 야외무대 올라갔을 때는 전율이 왔다. 영화제 일에 푹 빠지게 됐다.

장택수_ 처음엔 나도 영화용어들을 몰라서 낯 뜨거웠다. 영화 워크숍 통역을 하는데, 그땐 트리트먼트가 헤어 외에 영화와 무슨 상관인가 했다. (웃음) 그처럼 나도 영화제 일을 하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됐다. 또 영화제에 정말 감사한 이유가, 그야말로 평범한 일반관객으로 살아왔는데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들을 보면서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시각, 세상에 대한 관심이 확장됐다. 영화제가 내게 준 변화다.

배경복_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원래 은행에서 일했고 관련 학문을 공부했고, 그래서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영화제 와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더라. 영화제에서 마스터클래스 같은 섹션 통역을 하면서 굉장한 희열을 느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배우보다 감독에 초점이 맞춰져서 더 보람이 크더라. 또 여기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있으니 더 오게 된다.

이지현_ 안전한 환경에서 살다가 영화제를 통해 정말 다양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올해도 영화제에서 <노무현입니다> <파란나비효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공부가 많이 됐다. 또 내가 일을 하면 나에게 고마워하는 관객 분들이 있고, 그래서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낀다. 그러다보니 이 일에 중독될 수 밖에 없다.

김고운_ 결국 프로그래머가 골라주니 내가 뭘 볼지 모른다는 게 이 일의 매력이더라. (웃음) 몰랐던 영화를 보면서 받게 되는 자극이 엄청나다. 내가 골라 봤으면 그런 기분은 못 느꼈을 것 같다. 한해 100편, 많게는 200여편의 영화제 상영작을 본다. 하도 보다보니 요즘은 할리우드영화 보면 너무 딱딱 떨어지는 게 되레 신선하게 다가오더라. (웃음) 상업영화가 이제 어색하다.

배경복_ 이 일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상업영화, 개봉영화만 봤다면 지금은 다큐멘터리도 찾아보는 등 다양한 영화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지현 통역 일과 상관없이 우리끼리 <스포트라이트>(2015)를 보러 극장에 간 적이 있다. 영화 보고 나서 영화제 GV 하듯이 감독의 의도를 분석하고 토론을 했다. 영화제를 하도 다녀서 이제는 버릇이 됐다. (웃음)

김고운_ 유대감도 든다. 통역은 각개 프리랜서로 일하다보니 매번 만나는 이들이 다르다. 그런데 영화제는 늘 보는 사람들을 만나니 동지 같은 느낌이다.

장택수_ 통역가들의 반창회랄까. 일년에 몇번은 영화제마다 보니까. 그전에 잘 지냈는지 생사확인하고. (웃음)

-영화제 통역은 워낙 즉석에서 이루어지는 ‘라이브’ 아닌가. 처음 만난 게스트와 관객을 잇는 역할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인 만큼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을 것 같다.

김고운_ 줄리엣 비노쉬와 일정 7개를 함께하는데 처음엔 좀 어색했다. 그런데 세 번째 쯤 줄리엣 비노쉬가 대담 끝나고 나한테 잘했다고 말해주더라. 어떻게 알고 그 말을 하나 했더니 이분이 무용했던 사람이라 리듬에 예민하다더라. 한국말을 못하니까 영어 관객이 언제, 몇번 반응하는지 세어봤는데 그게 싱크가 맞았다고. (웃음) 반대로 게스트나 그 팀 모두가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관객이 ‘통역이 마음대로 축약하고, 영화를 이해한 것 같지도 않다’고 의견을 올리기도 한다. 항상 반성하고 겸손하게 된다. 못했다는 소리 들어도 너무 기죽지 말고 잘했다 소리 들어도 아싸 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심지어 같은 영화를 세번 해도 어떤 때는 반응이 좋고, 또 어떤 때는 싸 할 때가 있다.

장택수_ 첫 번째 GV 반응이 유쾌했다고 들어서 그런 느낌을 가지고 갔는데, 두 번째에서는 진지하고 깊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관객마다, GV마다 다른 감정을 가지고 갈 수 있다. 영화제마다 차이도 있다. 가령 부천과 전주도 확연히 다르다. 이번 전주상영작 중 심야상영으로 튼 호러영화 <죽음의 게임>이 대표적이다. 부천에서라면 무대 올라가기 전에 나를 록스타처럼 업시키고 간다. 그런데 전주에서 보니 관객 반응이 완전히 다르더라. 질린 분도 계시고,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야 했나’ 같은 질문도 나왔다.

이지현_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일을 하지만 난 공포영화나 고어, 슬래셔 이런 영화를 정말 못 본다. <악마를 보았다>(2010)도 듣기만 하고 안 봤는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무삭제판을 상영했다. 극장에서 정말 눈물, 콧물 흘리면서 보고 나서 반쯤 울면서 “영어 통역 필요하십니까” 했다. 보통은 외국인이 많지 않아 따로 구석에 외국인들만 작게 모여서 ‘위스퍼링’ 통역을 하는데, 그날은 외국인이 너무 많아 무대에 올라가 덜덜덜 떨면서 순차통역을 했다. (웃음)

장택수_ 한국영화는 거의 위스퍼링을 하는데, 소수의 관객일 때는 괜찮은데 외국인 관객이 많으면 두세줄씩 모아놓고도 위스퍼링을 해야 한다. 우리에겐 너무 시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김고운_ <밀정>(2016) 때는 외국인 관객이 다섯줄이나 됐는데 위스퍼링을 했다. 통역을 하다보면 그들에게 잘 들려야 하니 목소리가 커지고, 다른 한국 관객은 그게 또 시끄럽다고 항의하고. (웃음)

장택수_ 외국 관객을 무대 앞으로 모으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지현_ 우릴 너무 내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감독, 배우 등 게스트를 다들 앞에서 더 가까이 보고 싶은데 외국인 관객을 앞으로 모으면 한국 관객은 본인 자리가 뺏기는 기분이 들 거다. 또 그렇게 모은 외국인 중에서 바닥에서는 듣기 싫다며 나가는 경우도 있다.

장택수_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닙니다’라고 관객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김고운_ 이건 정말 영어 통역의 비애다. 리시버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 싶다.

장택수_ 이제는 한국 거주 외국인이 많아졌다. 외국인 관객도 많아졌고, 그중엔 한국말을 아는 관객도 많다.

김고운_ 위스퍼링을 하면 무대에 안 나가고 앉아서 하니 편하긴 하다. 그런데 기술적으로는 한국영화를 보고 외국인에게 통역하는게 쉽지가 않다. 가령 이번 영화제에서 <미스 프레지던트> 같은 영화를 할 때, ‘박사모’라고 하면 끝나는 걸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의 모임’같이 그 컨텍스트를 말해야 한다. 역사가 바탕이 되는 영화는 그런 어려움이 많다. ‘가미카제’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에 설명해야 하니 그만큼 어렵다.

장택수 한동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 졸업. 영어 국제회의 통역사.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국제영화제, EBS국제다큐영화제 등에서 10년간 영화제 통역으로 활동 중. 원래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영어 공부로 방향을 선회했다. 해외가 아닌 순수 국내파. 카투사에서 영어를 쓴 게 처음이고 이후 통역대학원에 가서 전문 훈련을 받았다. 영화제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무대 앞에 나와서 설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하다보니 이제는 또 다른, 대범한 자신을 발견해나간다고.

“기억에 남지 않는 통역이 잘한 통역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통역가의 위치, 역할을 통역가 스스로 규정하고 만들어왔다.

배경복_ 관계자 빼고 관객이 서너명밖에 없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데 정말 불안하더라. 다행히 모더레이터와 감독님이 상세히 설명해주셔서 영화 내용이 어려워도 즐거운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그럴 때 공동책임을 느낀다.

이지현_ 반대로 너무 마니아, 팬층이 많이 와서 분위기가 정리가 안되기도 한다. 통역은 다른 모든 분들의 말이 끝나야 그때 시작하는 거니까 분위기가 잘못 흘러가도 개입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영화제에서 배지를 받아서 일하면서 점점 반은 스탭의 마음으로 일하게 된다. 모더레이터가 처음 참여하면 내가 오히려 진행병이 생기는 거지. (웃음) 질문 많이 안 받으면 항의 들어오겠다 걱정도 되고. 적어도 게스트 심기는 건드리지 말자 하게 된다.

배경복_ 관객이 너무 독하게 질문하거나 작품이 너무 식상하다고 하면 잘 풀어서 이야기한다. 통역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나 이런 고민도 점점 늘고,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통역이지만 불필요한 걸 어디까지 전해야 하나 싶어진다. 앵무새가 되지 말자 한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정교한 통역은 못하는 것 같다.

김고운_ 난 순차로 다 이야기한다. 말은 몰라도 분위기는 알 테니 말해주는 게 맞다 싶다. 그래서 가끔 모더레이터나 프로그래머에게 그런 이야기까지 왜 다 전하냐고 하는 말도 들었다. 영어, 일어 문화권 차이도 있고 통역 각자의 스타일도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장택수_ 현장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니 GV 30~35분 끝나고 나면 피로가 확 밀려온다. 관객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그제야 이야기를 정리하려 하다보니 질문이 너무 길어지는 경우도 많다.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에 대해선 순간적으로 판단해야겠다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진다. 중요한 건 통역가는 무대 앞에 나가지 않아야 하고 드러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통역가는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다’라고 항상 주입한다.

김고운_ 정말 통역은 공기와 같아야 한다. 너무 못해도 안 되고 너무 드라마틱해도 안 된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래서 통역이 기억에 남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잘한 통역이다.

이지현_ 의상도 조심해야 한다. 처음에는 어른스럽게 입으려고 했는데, 들어가보니 그게 오히려 눈에 띄더라. 평소에 패턴 있는 옷을 즐겨입는데 이제는 그런 옷은 입지 않는다.

장택수_ 우리끼린 옷 입은 걸로 아는 거지. 영화제 통역 처음 하는 사람인지 해본 사람인지. (웃음)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게 아니라 본인이 판단해야 한다.

김고운_ 보통 동시통역하면 정장으로 쫙 빼입고 가니, 처음 오면 여기도 그러고 온다. 일본 감독은 조리 신고 들어오는데, 나는 혼자 정장 입고 들어가면 어색하다.

배경복_ 나도 처음엔 꽤 갖춰 입었는데, 나중에 사진으로 보니 정말 튀더라. (웃음) 예의는 지키는 선에서 어디까지 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청바지는 엔지라는 등 같은 내 안의 기준이 생겼다. 두세 종류를 가지고 와서 다음날 어떤 감독과 하느냐에 따라 분위기를 맞추려 노력하는 편이다.

-영화제 통역 일을 하면서 느끼는 특수함,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다.

이지현_ 영화제 게스트들은 할 말은 많고 시간은 짧다. 그럴 때 관객이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한명이 질문을 독식하면 정말 어렵다. 게스트뿐 아니라 관객 역할도 있으니 다른 관객도 배려해주면 좋은데. 시간이 다 돼가면 정말이지 미친 듯이 통역 랩을 한다. 그러면서 한국말이 많이 늘긴 했다. (웃음)

장택수_ 영어는 아시아 영어도 있고, 남미 영어도 있고, 중국 영어도 있다. 다 다르다. 특히 마스터클래스는 정말 어렵다. 아무리 준비하고 숙제하고 가도 어려운 것 같다. 하나하나 하면서 공부하고 배우게 된다.

배경복_ 확실히 영화제 통역은 30분이라는 시간의 중압감이 상당하다. 나는 공연무대 통역도 하는데 긴장감은 덜한 것 같다. 도쿄 돔 공연을 하는데, 시아준수씨가 일어를 하니 내가 오히려 일이 없었다. 비가 오니까 관객이 나를 배려해서 우산도 씌워주시더라. (웃음)

김고운_ 방송 통역을 하면 연예인들이 있어도 떨리지 않는다. 제작진, 방청객도 촬영에 맞춰서 임해주는 데다 팬들이 PD, 통역 도시락도 챙겨준다. 영화제는 긴장도 되고, 또 미리 자료가 없는 경우도 많아 늘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다.

장택수_ 영화제 통역은 정말 그때그때 해결해야 할 일이다. 준비가 많이 필요한 게스트도 당일에 알려주면 바로바로 해야 한다. 영화제 기간 동안 하루하루를 이렇게 산다. 하루살이처럼. (웃음)

김고운_ 하루살이가 아니라 반나절살이 정도라고 하자. (웃음) 초반 몇년은 영화제에 24시간 파티 피플처럼 놀아야 한다고 마음먹고 왔다. 하고나서 보니 이 일이 상당한 공부를 필요로 하는 일이더라. 점점 제대로 된 통역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전엔 영화 보고 통역하고, 숙소 가서 잤다면 이제는 해외 매체 인터뷰, 리뷰, 데일리 다 찾아서 챙겨본다. 이전엔 영화 끝나면 시작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영화관 들어가기 전에 하는 일이 됐다.

장택수_ 감독이나 영화와 관련된 나만의 자료를 준비한다. 게스트와 관련한 인터뷰 자료를 찾고, 통역가들끼리 서로 GV 했던 걸 공유도 한다. 체력 안배도 중요하다. 자료를 다 찾아가면서 봐야 하니 극장에서 더러는 영화를 다 보지 않고 영화를 미리 받아서 보고 들어간다.

배경복_ 특히 전주국제영화제는 일본영화 마니아들이 많아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다 찾아보고 온다. 전작을 다 검색하지만 물론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는 현장에서 관객 눈 보면서 한다. 일본, 한국 제목이 다르니 급할 땐 관객에게 ‘미안한데’ 하고 한국 제목을 물어보기도 한다. 일을 하면서 절대적인 순발력이 떨어지면 스스로 그만두자 했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건 그런 능구렁이 정신으로 버티는 것 같다.

배경복 일본 도요대학 경영학부 상학과 졸업. 2006년부터 영화제 통역을 시작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충무로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순천만세계동물 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충무로뮤지컬영화제 등에서 일했다. 대학교육은 필요없다는 생각에 고교 졸업 후 은행에 취직해 일했는데, 학력 차별을 느꼈고, 그길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본 유학에 올랐다.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일본에서 인연이 닿아 영화제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순발력과 유연함, 전문화된 실력 필요해

-이제는 영화제 통역 일이 경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제 통역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이 있다면 어떤 건가.

배경복_ 오래 일하면서 이제는 관객이랑 함께 술도 마신다. 관객 중에 일본영화 마니아들이 많고, 그렇게 알게 되어 연락도 주고받는다. 관객이 ‘배경복 선생님 오시면 그냥 들어요’ 해주기도 한다. 감독이나 매니저들과도 서울 오거나 또 내가 일본 가거나 하면 연락하기도 하고. 다들 순수하고 기분 좋은 만남이다. 그 만남을 통해 느끼는 바가 많다. 7~8년 전에 전주에서 <화장실의 피에타>를 연출한 마쓰나가 다이시 감독이 기억난다. 친구가 성전환수술을 했고, 그에 착안해 성소수자에게 포커스를 맞춘 영화였다. 왜 영화를 하냐는 관객 질문에, 감독이 영화가 사람을 살린다는 대답을 하더라. 창작이 가진 힘이 있구나, 그게 정말 숭고하구나 싶었다.

김고운_ 이 일을 하면서 직업병이 있다면 늘 남의 말을 전하다보니 내 의견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질문하면 그게 스트레스가 되더라. 그러다가 2012년에 <닉>이라는 네덜란드영화를 봤는데, 셰프가 송로버섯을 찾아다니는 이야기였다. 영화 속 셰프가 나 같아서 많이 울었다. 사실 통역을 한다고 감독, 배우와 친해질 일은 없는데, 통역하고 나서 그날 그 감독이랑 계속 마주쳤고 감독, 촬영감독 셋이서 그날 아침 7시까지 밤새워 술을 마셨다. 감독이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라면집한다고 오라고 했는데, 몇년 후에 출장갔다가 약속도 없이 들러서 만났다. 들어보니 영화제 스탭들에게도 다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한다더라. (웃음)

장택수_ 이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영화의 취향이 변해가고 있다는 걸 많이 느낀다. 한번은 <아이 엠 러브>(2009) 기자회견을 하는데 틸다 스윈튼을 처음 봤다. 통역부스 안에서 보는데 압도당했다. 영화제 일을 하면서 가장 강렬한 순간이 그때였다. 이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만든 영화는 다 찾아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행사를 같이하고 난 뒤에 관심을 가지고 다 찾아보고, 그렇게 요시다 슈이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등의 세계를 알게 됐다. 통역을 하다가도 영화의 감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티파니 슝 감독의 <나비의 눈물>(개봉 제목 <어폴로지>)이라는 위안부 소재 영화의 GV에 위안부로 생활했던 할머니가 무대에 올라오셨다. 모더레이터와 관객과 함께 울컥했던 기억도 난다.

이지현_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서도 통역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GV처럼 관객 통역이 아닌 비즈니스 미팅을 하게 됐다. 하루 종일 갇혀서 통역을 하니 고되다 싶었는데, 그때 통역한 영화가 완성되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해녀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물숨>은 그렇게 만나서,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는데 뿌듯하더라. GV로 배정이 안 되었는데도 티켓 사서 보고 감독님께 인사드리니 그때 고마웠다고 하시더라. 영화제 일이 제작과정의 마지막에 터지는 축포라면, 이렇게 디벨로프에서부터 참여하는 일에도 앞으로 함께하고 싶다. 지금은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제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있는데 기회가 오면 해보고 싶다.

김고운_ 해외에 통역하러 가서 각 나라 통역가들을 보면 외국은 50~60대, 70대도 활동하는데, 그중 항상 내가 가장 어리더라. 통역은 나이 들면 더 베테랑이 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법정 통역이나 영화제 통역은 경험과 노련함이 더 빛을 발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은 수명이 짧다.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더 열심히 해야지 싶다.

-여러분이 꾸준히 해온 덕분에 영화제 통역가를 꿈꾸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조언을 한다면.

장택수_ 영화제 통역한테 가장 필요한 건 센스다. 눈치. 영화제에 가면 아주 점잖은 게스트들이 모이는 파티 통역부터 어린이 관객 앞에서 통역하는 일까지 다양한 자리를 마주한다. 각종 돌발 상황이 많이 일어나는데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이지현_ 센스는 정말 필수다. 영화제에서는 정말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일례로 게스트가 바뀌는 돌발 상황이 많다. 감독들이 “영화를 함께한 OO, OO도 나오세요”라고 즉석에서 하는 거다. 그럼 나는 이름을 모르니 그 자리에서 묻고 그걸 바로 파악해야 한다. 영화제 통역은 정말 잘해야 본전이다. 당황하더라도 당황한 표를 안 내는 것도 필요하다. 또 ‘30분 통역입니다’ 해도 관객이 따라와서 물으면 통역해야 한다. 이게 다 초과 일이 되는데, 크레딧 더 받는 게 아니라 이런 것들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마음을 비우고 와야 한다.

배경복_ 말만 잘한다고 통역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언어를 잘해도 무대 앞에 서는 건 좀 다른 일인 것 같다. 말한 것처럼 센스, 눈치가 있어야 한다. 다양한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놓고, 모더레이터가 하는 이야기, 관객이 하는 이야기를 바로 들으면서 그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다양한 지식을 연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결국 영화제 통역은 30분 세계니까.

김고운_ 영화제 통역은 굉장히 다른 세계다. 일반적인 통역의 룰이 아니라 영화제라는 특수한 곳이 돌아가는 생리를 알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리고 감독이나 배우 이름, 영화용어가 틀리지 않게끔 영화공부도 꾸준히 해야 한다. 영화인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게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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