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죠. 6살짜리 머리로도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긴 했지만, E.T.가 살아 있고 영혼이 있는 것처럼 대하면서 점심을 가져다주곤 했어요. 추울 것 같으면 이불도 덮어주고, 어른들이 E.T.를 함부로 다룰 땐 정말 화가 났죠. 헨리(엘리엇 역)도 친오빠라고 믿었고요. 새삼스럽지만 기왕 <E.T.>의 재개봉과 함께 기억의 타임머신을 가동시켜보자면, 2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면 그랬다는 말이에요. 스티븐이 그랬대요. “거티를 위해 많은 6살짜리들을 봤지만, 드루가 걸어 들어온 순간 그때까지의 기억은 싹 지워졌다”고. 곱슬거리는 블론드 머리의 7살짜리가 좀 사랑스럽긴 했나요?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하지 말고, 그 캐릭터가 돼라는 스티븐의 조언은 지난 20년간 제게 힘이 돼줬어요. 제 대부이기도 하지만, 저한테는 진짜 아버지 못지않은 사람이죠.
사실 좀 일렀죠. <멋진 인생> 같은 고전영화의 명배우였던 할아버지 존을 비롯해서 저까지 4대에 걸친 연기자 집안이니, 배리모어란 이름이 부담스러웠던 만큼 덕도 본 셈이에요. 태어난 지 11개월 만에 TV 광고로 데뷔했거든요. 거기다 고작 두번째 영화인 <E.T.>로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요. 일찌감치 알을 깨고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나비가 되는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이 업계가 잔인한 구석이 있어요. 특히 자꾸 변해가는 어린 배우들에게요. 그 압박감은 아마 셜리 템플만 알 걸요? 물론 술과 마약보다는 더 ‘건강한’ 도피처를 찾았어야 했겠지만요. 제가 15살 때 썼던 <길 잃은 소녀>를 읽는 사람을 보면, 지금은 “제 가방에 스콧 피츠제럴드 책이 있는데 그걸 드릴게요”, 그러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요. 하지만 저에게는 확실히 치유의 과정이었고, 누군가에게 혼자만 그런 어둠 속을 헤매는 게 아니라는 위로를 줄 수 있다면 다행이죠.
한때 언론에서 제 별칭이 “미국이 사랑하는 탕아”였던 것 기억해요? <E.T.>로 얻은 걸 파괴하느냐, 더 나아가느냐는 저한테 달려 있었죠. 전 둘 다 했고요. <E.T.>가 없었다면 지금 제가 있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운도 있겠지만, 재능과 두꺼운 얼굴도 필요한 것 같아요. 한동안 전 앉아서 전화가 울리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너무 두려웠거든요. 좀처럼 울리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대신, 기회를 주는 영화를 찾아나섰죠. <포이즌 아이비> <건 크레이지> <보이즈 온 더 사이드> <배트맨 포에버> 등등 가리지 않고 한 것도, 아직 연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어요. 플라워필름을 만들고, 나 <미녀 삼총사>로 제작에 나선 것도 영화를 계속 하고 싶어서죠. 일곱살과 스물일곱살, 참 긴 시간이에요. 이제는 쾌활하고 잘 웃는 얼굴이라고들 하지만, 어두움도, 밝음도 다 제 자신인 거죠. 올해는 로맨틱코미디 <듀플렉스>와 조지 클루니가 연출하는 <위험한 마음의 고백>, 여전사가 될 <바바렐라> <미녀삼총사2>까지 영화가 4편이나 되네요. 다행이에요. 영화로 지나온 만큼 많은 시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무비라인>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