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다감한 남편과 밝고 건강하게 커가는 여섯 아이들. 완벽했던 발렌틴(오드리 토투)의 일상이 뒤틀리기 시작한 건, 일곱 번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나면서부터다. 이후 몇 차례의 탄생과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발렌틴은 깨닫는다. “주위 사람들이 떠나가는 걸 지켜보며 무력하게 늙어가리라.” 아들 앙리(제레미 레니에)는 어릴 적부터 함께 커온 마틸드(멜라니 로랑)와 결혼을 결심하며 발렌틴의 곁을 떠나겠다고 한다.
영화는 출산과 죽음, 만남과 이별을 테마로 어느 프랑스 귀족 가문의 연대기를 담는다. 한 여인과 그의 며느리, 그리고 며느리의 절친한 친구까지, 세명의 여인이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생계 문제를 비롯한 생활의 필연적인 고민과 갈등이 사라진 공간에서 인물들은 사랑과 우정 같은 가치에만 골몰한다. 인물들은 손짓과 눈길로 섬세하게 감정을 전하고, 형제와 부모의 은근하고 꾸준한 눈길 속에서 아이들은 단단하게 커간다.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반복되는 삶의 풍경들은 인생의 필연적인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다.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실감에도 삶의 의지는 자연스레 차오르고, 영원할 것만 같은 행복도 일순간 달아나버린다. 쉬지 않고 흐르는 클래식 음악, 유려한 카메라워킹과 정교하게 설계된 조명으로 빚어낸 장면은 마치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만을 그려내는 듯 아름답다. 한 인물의 죽음 후엔 찬란했던 과거의 한때를 담은 플래시백이 이어지며 풍부한 감상을 이끈다. <그린 파파야 향기>(1993), <씨클로>(1995)를 연출한 트란 안 훙 감독의 작품이며, 프랑스 작가 알리스 페르네의 소설이 원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