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노무현
2017-05-19
글 : 주성철

“송변 집 천장에 숨어 살던 쥐새끼, 꼭 보러 오세요.” <변호인>(2013) 개봉 당시 20자평을 저렇게 남겼다가 무수히 많은 이메일을 받았다. 여기서 ‘송변’은 ‘송 변호사’의 줄임말로 영화에서 실제 과거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기한 송강호가 노무현 대신 송우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쥐새끼’는 알다시피 4대강 대통령의 다른 말이다. 물론 일베임을 증거하는 원색적인 욕설의 항의 메일보다는 ‘통쾌하다’, ‘<씨네21>에 친노 기자분이 계셔서 반갑습니다’라는 요지의 응원의 이메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당황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친노’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 자신에게 궁금한 것도 하나 있다. 당시 내가 왜 저런 20자평을 남겼나, 하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엄밀하게 말해 영화에 대한 평이라고 할 수도 없고, 나 또한 원래 저런 식의 20자평을 쓰던 사람도 아니어서, 당시 동료 기자들도 ‘왜 그랬어요?’라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의 충격은 어떤 경계도 넘어서는 초월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변호인>을 보고 나온 날,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빙의하여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저렇게 썼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든 생각은,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어떤 ‘타이밍’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울면서 저장하기 시작했고, 봉하장터(bongha.net)에서 그와 오리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무농약 현미만 사다 먹고 있다(다른 제품들도 강추!).

전인환 감독의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도 울면서 봤지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이자 5월 25일 개봉예정인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도 울면서 봤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에서 지지율 2%의 꼴찌 후보 노무현이 대선 후보 1위가 되기까지 오직 그 역전의 드라마만 그린 <노무현입니다>는, 전기영화라기보다 스티브 잡스의 3번의 프레젠테이션 무대에만 집중한 대니 보일의 <스티브 잡스>(2015)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해내고 있기에 감회가 더 남다른 것 같다. 아무튼 다음호에서는 김성훈 기자를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분석해볼 예정이다.

한편, 이번호 특집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다. 별책 부록인 영화제 티켓 카탈로그와 함께 특집 기사도 꼼꼼히 챙겨 읽으시길 권한다. <원더우먼> 표지에다 앙꼬 작가의 ‘내 인생의 영화’ <꽃섬>, 그리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대 프로그램 디렉터와 공동집행위원장을 지낸 김소영 감독의 신작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인터뷰까지, 마치 완벽한 콘티라도 짠 것처럼 여성영화 특집을 꾸리게 됐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맞아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편치만은 않다. 당장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에 대한 지난 1105호 듀나 평론가의 글이 <씨네21> 페이스북에 게시되자마자 줄줄이 달리는 댓글 수준을 보고 있으니 답답하고 씁쓸하다(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검색해보지 마시길). 그저 정확하게 얘기해주고 싶다. 당신과 나의 생각이 다른 게 아니라 당신이 그냥 수준 이하라고.

끝으로, 이번호부터 <아이즈>에서 일하던 임수연 기자가 새로 합류했다. 저 멀리 하워드 혹스부터 지금의 <에이리언: 커버넌트>까지 좋아하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며, 현재 <씨네21> 내에서 유일한 이과 출신 기자이기도 하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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