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젊음보다 짜릿한 도전, <정글쥬스>의 손창민
2002-04-10
글 : 위정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지금 뭇 여성들이 ‘정우성’이라는 이름을 핑크빛 한숨으로 입술에 올리듯, 한때 ‘손창민’도 그런 이름이었다. 지금도 그 이름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여성들에게는 잔물결 같은 설렘을 일으키는 단어다. <고교생 일기>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등 TV하이틴물에서 당시 사춘기 소녀들의 여린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던 꽃미남. 누구는 아직도 TV드라마 <빙점>에서의 손창민을 잊을 수 없다 했고, 누구는 <겨울나그네>의 민우로 간직하고 있다 했다.

현대적인 외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멜로드라마는 그의 ‘전공’이었다. 그가 맡은 역할 중엔 재벌2세나 속물적인 의사, 변호사 등의 역할이 유난히 많았다. <불새>에서 재벌2세 민섭으로 등장한 뒤 4년이 지나도록 스크린에서 보이지 않았던 손창민의 이름이 <정글쥬스>에 올라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더 반가웠던 것은 그 ‘어울리지 않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청량리를 배경으로 양아치들이 마약을 갖고 튀는 영화에 등장한다…. 멜로드라마가 아닌 영화, 게다가 조폭? <정글쥬스>에서 손창민의 변신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햇빛에 그을린 꺼먼 얼굴, 밀어버리다시피한 짧은 머리, 그 사이로 허옇게 드러나는 선명한 흉터자국, 입술을 올리고 웃을 때 드러나는 누런 금니, 팔에는 문신까지 펄떡인다.

왜 <정글쥬스>였을까, 왜 민철이었을까. “이제 삼십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 전공이라고 언제까지나 멜로드라마 주인공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아이돌 스타에서 연기자로 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제안이 들어왔어요. 예전 같았으면 그런 배역 하지도 않았겠지만, 제안도 들어오지 않았을걸요.” 4년여 만에 돌아온 영화판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현장에 오랜만에 돌아오니까 사람이 확 바뀌었더라고요. <정글쥬스> 현장에서 제가 제일 연장자더라고요.” 선탠을 80번 하며 얼굴을 검게 태우고, 금니를 끼우고, 한번 붙일 때마다 몇 시간씩 말려야 하는 문신을 하면서도 색다른 역할이 주는 긴장의 쾌감을 누렸고, 젊은 후배들과 함께 어울린 현장은 즐거웠다.

실패의 경험은 귀중한 교훈이었다. <불새> 이전 몇편의 영화가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지 않았다면 그가 <정글쥬스>에 출연했을까? 때로는 남자들의 의리로, 때로는 경제적인 이유로 출연을 결정했지만, 실패하고 나서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TV쪽에선 <추억> <애드버킷> <장미와 콩나물> <국희> 등 굵직한 드라마에서 계속 주연급 배역을 맡았지만, 독한 마음 먹고 2년 동안 캐스팅 제안을 거절한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정글쥬스>에 전념한다는, 그래서 ‘아이돌의 이미지를 벗고 연기자가 된다’는 목표에 집중하기 위해. 그리고 ‘갓난아이가 물건을 가지려 욕심부리는 것 같은 단순함’을 지닌 조폭 민철은 손창민 연기 안으로 오롯이 녹아들었다.

“남자 30대 후반, 좋은 나이 아닌가요? 20대는 혈기가 지배하는 시절이잖아요. <정글쥬스>에서 장혁 보세요.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패기로 연기하잖아요. 하지만 30대가 되면 반짝이는 눈을 넘어서는 여유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한 가지. “제가 멜로드라마 주인공을 하던 시절 저를 보러 왔던 관객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싶어요. 함께 나이들어가는 동년배들에게 느끼는 동질감 같은. 그들이 10년 전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손창민을 본다고 해보세요. 신선도가 떨어지잖아요. 그런 실망을 안겨주고 싶진 않아요.” 그렇게 연기자 손창민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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