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평생 같은 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시인의 역동성을 닮은 전기영화 <네루다>
2017-05-24
글 : 장영엽 (편집장)

<재키>의 감독 파블로 라라인의 신작. 라라인이 <재키>를 통해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선보였듯, 그의 또 다른 전기영화 <네루다> 역시 칠레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 인상적인 영화다. 1948년, 칠레 국민에게 사랑받는 시인이자 상원의원이었던 네루다(루이스 그네코)는 곤살레스 비델라 대통령을 격렬하게 비판하는 의회 연설을 한다. 정권을 잡자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하고, 공산당과 체결한 협약을 파기한 대통령의 처사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네루다는 국가원수를 모독했다는 죄로 도망자가 되어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다.

전기영화로서 <네루다>가 흥미로워지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영화는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도망자인 파블로 네루다가 아닌, 그런 그를 추적해야만하는 비밀경찰 오스카(영화를 위해 라라인이 창조해낸 가상의 인물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한다)를 등장시켜 시인과 그의 추격전을 비중 있게 조명한다. 잡히지 않을수록, 네루다는 점점 더 대중적인 관심과 영웅으로서의 신화적 이미지를 얻게 되고 그를 쫓는 오스카마저 경찰로서 자신이 지켜야 하는 신념과 네루다라는 예술가에 대한 매혹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영화는 네루다 역시 이상적인 모습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그의 면모는 위인의 명암을 드러내는 영화적 장치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이 두 인물을 통해 예술과 정치, 규율에 대한 다각도의 질문을 던지는 <네루다>는 평생 같은 곳에 머무르지 않았던 시인의 역동성을 닮은 전기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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